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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자가 직접 잡아주신 손 2018년08월호

성자가 직접
잡아주신 손

김대관 원로교무
취재. 장지해 편집장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길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손녀에게 “쟈(쟤)는 크면 전무출신 시켜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할아버지가 전무출신 감으로 점찍어(?) 놓았다는 것이 소문 난 덕분에 원불교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쟈가 가여?(쟤가 걔야?)”라는 말을 꼭 듣곤 했다.
다른 길은 생각도 않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집안이나 이웃 모두 네가 전무출신 하리라고 생각하고 키웠지만, 혹 다른 생각이 있으면 이야기 해 주거라.” 발심이라고 따로 굳힐 것도 없이, 할아버지의 점지에 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길이어서일까? 어머니의 나긋한 질문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고 말하는 김대관 원로교무(종사)다.
초기 교단의 기반을 마련한 구인선진 중 팔산 김광선 종사의 손녀이자, 2차 방언공사의 책임을 도맡았던 형산 김홍철 종사의 딸인 그. 초기 교단에서부터 꼬박 100년 동안 3대(5남매 중 4인)가 전무출신을 이어오고 있는 집안이라는 것은, 전무출신으로서의 삶에 ‘혈심혈성’을 다 바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다.


● 건강은 어떠신가요?
“현장에서 근무할 땐 지금보다 더 약하고 말랐었는데, 그때보다 오히려 괜찮은 편이에요. 기본적인 일과는 똑같지만 다른 것은 비교적 자유로우니 허송세월이 안 되도록 스스로 챙겨서 더 공부를 하고 있지요.”
옆자리에 동석한 열다섯 살 차이 동생 김정심 원로교무의 손을 꼭 잡으며 “막내가 퇴임하도록까지 살고 있다.”며 웃는 김 원로교무. 찌는 듯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만남의 시간을 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자, “이게 다 우리가 같이 할 일.”이라는 말로 긴장을 녹여주고, 건강을 잘 챙기라며 ‘우리의 건강이 교단의 건강’이라고 당부한다.

● 올해는 1차 방언공사를 시작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조부님인 팔산 선진의 일화는 참 인상적입니다.
“100여 년 전에 삽과 괭이 외에는 아무런 도구 없이 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드는 그 공사를 우리 구인선진께서 하신 것인데, 소태산 대종사님을 믿는 그 신심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보장이나 확신이 없는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팔산님은 소태산 대종사님보다 12살이나 더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대종사께서 대각하신 후부터는 철저히 스승으로 받드셨어요. 구인선진들의 이런 신성(信誠)이 우리 창건사의 기본 정신이에요.”

소태산 대종사보다 12살이나 많은 데다 영광 지역 유지 중의 유지였던 팔산 선진. 한 지역에서 살며 형제의 의를 맺은 뒤로 대종사 구도 시절부터 경제적 받침을 도맡다가, 대종사 대각 후에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제자 되기를 서원했다. 1차 방언공사 때는 정신·육신·물질 삼방면으로 가진 것을 온통 내놓기도 했다. 덕분에 가정적으로는 철저히 가난했을 터. 하지만 김 원로교무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한마디 불평 없이 그 뜻을 따라주었다. 그야말로 교단의 역사에 온 가족의 신성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물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무너져 내리는 언답을 지키고자 부엌문까지 떼다 바치는 것은 물론, ‘내 몸으로 막겠다.’며 직접 몸을 던진 팔산 선진의 일화는 신성을 증명하는 이야기로 자주 회자된다.

● 아버지인 형산 선진은 2차 방언공사를 총 지휘·담당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방언공사와는 남다른 인연의 가정인 듯합니다.
“형산 선진께서 2차 방언공사를 하실 때 저는 지방에 근무했는데, 시간이 나면 자주 와서 뵈려고 했어요. 너무 애쓰시니까 힘이 되어드리고 싶더라고요. 당시는 국가에서 간척지 공사를 장려할 때라 1차 방언공사에 비하면 공사비 보조를 조금 받을 수 있긴 했어도, 교단 형편으로는 여의치 않고 많이 어려웠죠. 그럴 때 당신도 어른이니까 하소연할 곳은 없고… 정산 종사님을 많이 찾아가셨다고 해요.”

하지만 정작 조실에 찾아간 형산 선진은 편찮아 누워 있는 정산 종사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차마 하소연하지 못하는 형산 선진이나 그 심정을 헤아리는 정산 종사나, 서로 구구절절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통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정산 종사께서 그러셨대요. ‘다 아니까 어서 가라. 형산이 안가면 내가 가야 한다.’ 그만큼, 그 공사는 어떻게든 두 분이 해내셔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계셨던 거죠. 그러니 한 말씀도 못하고 다시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고…. 두 대에 걸쳐서 팔산·형산 두 부자가 방언공사와 숙연이 있는 것 같아요.”

●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전무출신인 게 부담되진 않으셨나요?
“부담보다도, 두 어른 다 표준적인 전무출신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행여 누가 되지 않을까가 가장 걱정이었어요. 부족할 수는 있죠. 선진들처럼 혈인을 나툴 만큼 하늘에 사무치는 정성에는 못 미칠 수 있어도, 누가 되면 안 되잖아요. 부족은 할망정, 누가 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원불교학과 입학 후 어느 날에는 문득 ‘나의 자력서원과 자력신심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철들기 전부터 당연히 전무출신의 길을 가리라고 여기며 자라왔지만, 막상 스스로의 서원을 확인해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매일 거르지 않고 시작한 대종사성탑 앞에서의 기도. ‘자연스럽게 흘러온 서원이 내 스스로의 서원이 되게 해 달라.’는 간단한 소원을 빌다가 일심이 된 것 같으면 돌아오기를 며칠이나 했을까. 어느 날에는 기운과 자신이 하나 되는 듯 뭉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스스로의 시험을 거친 후에는 ‘아, 이제 됐다.’ 싶어 안도했다는 김 원로교무. 평생 기도를 하고 살지만, 그러한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며 ‘마음이 하나로 묶여질 때까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소태산 대종사를 직접 뵌 적도 있나요?
“대종사님은 제가 열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땐 익산에 주로 계실 때라 자주 뵙질 못했어요. 딱 한 번 기억나는 모습은 인력거를 타고 영광에서 영산으로 들어오실 때였던 것 같아요. 장산리에서 선진포로 넘어오는 길에 급경사가 있는데, 거기는 인력거에서 내려서 걸어야 했거든요. 인력거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데 체구가 얼마나 크시던지…. 남녀 교도들이 길 양옆으로 쭉 늘어서서는 대종사님께 절을 하더라고요. 철들어서 직접 뵈옵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기억나진 않지만 영산이 고향인 김 원로교무와 그의 언니(故 김대심 대봉도)는 어머니 등에 업혀있던 시절부터 대종사를 친견했다. 어머니께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소태산 대종사는 업힌 아이들의 손을 꼭 잡으며 “고생한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 짧은 말 속에는 ‘나 때문에 너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 나와서 생활을 하니,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구인 선진의 후손으로 그 시대와 그 공간, 그 시간 안에서 성자가 손을 직접 잡아주었으니, 얼마나 큰 영광이며 큰 복이자, 희귀한 일이냐며 환하게 웃는 김 원로교무다.

● 평소 표준삼는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나는 평소에 생각하기를, ‘두 사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데는 삿될 사(邪)자 사심(邪心)이 가장 큰 적이고, 공중의 일을 할 땐 사사로울 사(私)자 사심(私心)이 가장 큰 적이지요. 이 두 사심에 지배당하면 공부도 망치고 전무출신 정신도 망각하게 돼요. 공부를 할 땐 사심 없이 해야 진짜 대종사님 수제자가 될 수 있어요. 사심(邪心)이 들면, 비록 작은 지혜는 있을지 몰라도 대원정각이라는 큰 그릇은 이룰 수 없어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사람마다 능한 분야와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설사 일의 성과를 크게 못 낼 수도 있지만, 정-말 순일한 공심으로만 했다면 그 사람은 절대 진리적으로 죄를 짓지 않아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심(私心)을 가지면 오히려 큰 죄를 짓죠. 우리는 능력의 유무보다도 ‘얼마나 순일한 공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진짜 전무출신과 진짜 공심이 가려져요. 공부와 사업에서 이 두 사심이 가장 큰 마군이에요.”

● 법인성사 100년을 맞이한 후진들에게 당부와 부탁 말씀을 전해주세요.
“가장 먼저 소태산 대종사님이 어떤 성자인가를 철저히 알아야 해요. 엊그제까지 아무개, 아무개, 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당신들이 죽어야 새 회상이 서겠다.’는 대종사님 말씀에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하잖아요. 구인선진들의 그러한 신성이나 서원도 더 말할 것 없이 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한 대종사님의 위력이 무얼까 생각해보세요. 하늘에서 법계인증 받아 세워진 회상이니, 혈인은 다시 필요치 않아요. 그저 10분의 1이든지 100분의 1이든지 각자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면 돼요. ‘원불교를 위해서는 사리사욕을 넘어 생명도 바칠 수 있는’ 정신이 전무출신 정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 주면 좋겠어요.”

● 언제 가장 행복하신가요?
“평소 생각하는 3대 행복이 있어요. 하나는 이 회상을 만난 것이고, 둘은 팔산 조부님과 그 뒤를 이은 형산 아버님 자녀로 태어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자신이 전무출신을 서원한 것, 이 세 가지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에요. 아무리 이 회상을 만났더라도, 전무출신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도, 정작 내가 하지 않으면 주인공이 될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3대를 쭉 이어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