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접어
띄우는 배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도자 공방
취재. 이현경 기자 

“난 미술이 제일 싫어요.”
활짝 열린 도자 공방 문 안으로 옹기종기 앉은 꼬맹이들 가운데 한 남자아이가 혼잣말한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하기 싫은데 억지로 따라온 폼이 눈에 띈다.
김민정 도예가가 아이의 말을 받는다.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기 싫으면 놀아. 대신 시작하면 끝내야 해.” 목소리를 키우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그사이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고사리손으로 흙을 만지기 시작한다. 그 친구들을 보며 쭈뼛쭈뼛하던 아이는 “나도 할래요.”라며 태도를 바꾼다. 그런데 컵의 높이를 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 아이가 다시 툴툴거린다.

“역시 나는 못 해. 역시 나는 안 돼. 나는 역시 미술이 싫었어.” “선생님이 시작 전에 뭐라고 했지?” “시작한 거는 끝까지 해야 한다고요.” “나중에 여기다 주스 마시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한 번 해보자.”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이곳. ‘하나요’라는 도자 공방의 이름처럼,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수업이 없는 금요일은 온전히 작업에만 열중하는 날. 공방 한쪽에 자리한 가마실은 아침부터 뜨겁고, 그 안엔 수강생이 만들고 간 작품들이 초벌 중이다. 앞으로 가마는 9~10시간 동안 도자기를 구울 예정이고, 김 씨는 ‘부디 작품이 잘 나오길….’ 바라는 따듯한 마음을 품는다.

고요한 오전 10시. 김 씨가 주문 들어온 접시를 만든다. 테이블 위에 얇은 천을 펼치고, 흙을 손으로 누르고 두드리며 반죽하다가, 밀대로 흙을 밀더니 원으로 잘라낸다. 혹여 티끌 하나라도 있을까 섬세한 손길을 더한다. 이 흙을 손물레 위에 올려 모양을 잡으면 접시 완성! 이렇게 ‘김민정’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곱게 새겨 만든 그릇이 하나, 둘, 셋. 주문 들어온 개수는 둘이건만, ‘혹시 변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여분은 필수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아 도예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일본유학 기간 동안 설치미술을 하며 흙을 이용한 표현예술에 집중했던 그녀. 그렇기에 14년 도예 경력 중 2년간의 공방 운영은 오히려 낯선 일이었다.

공방 한쪽에 걸린 작품 사진 속 ‘종이배’. 그간 ‘마음’을 테마로 작업을 진행해왔던 그녀는, 겉마음과 속마음, 다시 속마음 속의 또 다른 안과, 밝음·어둠이 있는 이면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 어릴 때부터 원불교 울타리 안에서 자라났기에, 일상생활에서 느낀 종교성이 작품으로도 이어진 것이다.
‘흙을 접는다.’는 그녀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흙을 접어 배를 만든다. 그 배 모양은 모터 달린 배가 아닌 종이배. 종이배는 물결과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데, 무언가와 부딪치면 그 무언가가 나에게 오고, 부딪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러면서 생각이 바뀌기도 하는 우리의 마음을 닮았다.

특히, 작품에 대한 설명 없이 진행했던 미국에서의 전시에서, 관람객이 작가에게 작품에 관해 직접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의 지평이 더욱 넓어졌다. 이제 그녀는 도예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방을 토대로,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전시를 할 예정이다.
바람 솔솔 불어오는 오후가 되자 그녀가 물레를 돌린다. 일어서서 온 힘을 다해 흙을 반죽하더니,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푼 후 다시 자리를 잡는다. “흙이 다 준비됐구나.” 흙이 물레 위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혹여 휘둘리거나 부서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물레가 돌아가고, 흙을 올리고, 그 위에 두 손이 닿을 때면, 김 씨는 숨을 참으며 집중한다. 손을 잠깐 떼고 나서야 크게 내뱉는 숨. 이때, “선생님! 내가 만든 컵에 우유 따라 마셨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가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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