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견뎌야
고칠 수 있다

찰나 찰나 비우는 마음
공부가 깊어지면 성리를 활용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 생각 없는 맑은 마음처럼, 한 마음 나오기 이전의 마음. 그것을 아는 게 성리입니다.
불을 붙이기 이전의 초가 있지요. 그런 원형 상태를 본성마음(자성)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불을 켜는 경계를 통해 초의 심지에 불이 붙는 것처럼, 본성마음에 경계가 작용해 생각을 일으킵니다. 생각이 나오기 이전의 마음 상태, 그것을 알면 초견성을 했다고 합니다.
일상에서는 선입견을 버리면 그때가 비워진 상태입니다. 보통 우리는 ‘저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규정을 하고 바라봅니다. 한번 규정한 눈으로 보면 예쁜 사람은 늘 예뻐 보이고, 미운 사람은 늘 미워 보이지요. 그런데 그 선입견을 없애고 보면, 예뻐 보이기만 하던 사람에게도 미운 모습이 있고, 밉기만 하던 사람에게도 예쁜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견(正見)이 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 만물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내 마음은 이렇다.’고 스스로 정해버립니다.
영산성지의 귀영바위 터를 빈빈입정터라고도 합니다. 빈빈은 찰나 찰나, 가끔 가끔이라는 뜻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 같은 대각도인도 한 번에 싹 비운 것이 아니라 빈빈 입정을 하셨다고 하니, 우리도 그렇게 시작하면 됩니다.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쉬지 않고 마음 비우기를 반복하면 그것이 모아져 힘이 커집니다. (103. 04. 12 영산선학대학교 훈증)


적당한 심심함이 보림이다
황혼의 이모작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림공부입니다. 보림생활이 수도인들의 본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림한다는 건, 자성을 깨달아서 그 자성 자리에 늘 안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다에 파도가 쳤다가 가라앉으면 고요해지듯, 사람은 일을 하거나 혹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것이 가라앉으면 그때 마음의 평상심을 얻습니다.
<금강경>에 ‘여래여거(如來如去)’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래는 여여하게 거래한다는 뜻입니다. ‘가도 그 마음이고 와도 그 마음’인 경지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휴휴암좌선문에도 ‘치연작용이나 정체여여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치연하게 작용을 해도 거기에는 늘 여여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자성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동할 때나 정할 때나, 또는 죽고 나는 것이 둘이 아닌 마음을 늘 간직하여 단련하는 것이 수도인에게 가장 크고 귀한 보배가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늘 주변 환경으로부터 역경·순경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계를 통해 얻은 스트레스를 안으로 잘 삭혀 녹여버리면 그것이 도(道)가 됩니다. 번뇌 망상을 녹여내 무아로 나아가게 하는 법력은 보림수도를 통해 여여할 때 나옵니다. 또, 보림수도를 위해서는 적당한 심심함도 필요합니다. 짜고 달고 매운 맛은 번뇌 망상을 만들어내 고락 속에 빠지게 합니다. 약간 심심한 듯한 보림생활이어야 좋습니다. (103. 03. 14 퇴임봉고식 설법)


유념하면 고쳐진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 잘못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고쳐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개심(改心)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마음은 고치면 됩니다. 그걸 못 고치면 문제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화를 버럭 내거나, 이유 없이 거만하거나, 이유 없이 자신이 늘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왜 이유 없이 그런 마음과 행동이 나올까요? 아마 전생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 이번 생까지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무를 분재하려면 모양을 잡기 위해 철사로 묶습니다. 그 아픔을 견뎌내야 예쁜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성격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자유자재로 뻗은 마음과 성격을 바르게 잡으려고 하면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이 들어있어서 고치고자 한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매일 고치고자 유념하면 결국에는 고쳐집니다. 이걸 못하는 사람은 공부인이 아닙니다.
내가 타력생활을 하고 있는지, 공익심 없는 사람인지 등을 일상수행의 요법에 대조하여 돌리는 것으로 개조해 나가면 수월합니다. 개심, 마음개조가 공부의 중요한 요결입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똘감나무에 단감나무를 접붙이면 단감이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쁜 마음에 좋은 마음을 접붙여 놓으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103. 04. 08 약촌교당 법호인 접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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