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풀에 담긴 희로애락
김이랑 짚풀공예가
취재. 김아영 기자

“선조들은 이 지푸라기로 옛날 비옷 ‘도롱이’를 만들고, 고된 일로 발굽이 닳은 소를 위해 ‘쇠신’을 만들었죠. 눈병이 났을 때는 허수아비 짚 인형 ‘제웅’을 만들어 액운을 ?았고요. 짚은 생활이었어요.” 하찮은 짚풀이 선조들의 귀한 생활용품이 됐듯, 자신 또한 짚풀을 만난 이후 특별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김이랑 짚풀공예가. 어느덧 길게 늘어진 새끼줄에 그의 지난 이야기가 담긴다.

“좋은 걸 만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잖아요. 제가 짚풀공예를 만나고 그랬어요.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죠.” 30대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짚풀공예를 만난 곳은 복지관이었다. 독거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를 하다가 자활사업단을 통해 배우게 된 짚풀공예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단다. 얼마나 짚풀공예가 좋았던지, 잠잘 때도 눈앞에 짚풀이 아른거릴 정도였다고.
“힘든 줄 몰랐어요. 그렇게 1, 2년 지났을 무렵 이걸 더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더군요. 하지만 문헌에 나온 것도 없고, 12명으로 시작한 자활사업단에는 결국 저 혼자 남았지요.” 그러기에 그 때 만난 짚풀공예 장인 임채지 선생(전남 무형문화재)은 그에게 단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두 번, 서울에서 순천까지 몇 시간을 달려가 배움을 이어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주부였던 그에겐 도전이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스승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지요. 짚풀은 무궁무진한 세상이었어요. 예전에 아기가 모유를 먹고 체하면 볏짚을 삼아서 먹였대요. 아셨어요? 또 짚풀은 가습기 역할을 해서 흐린 날은 습기를 빨아드리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기도 해요.” 특히 스승과 함께 만든 십이지신상, 소, 돼지, 공룡 등의 조형적인 작업은 그에게 더 큰 꿈을 꾸게 했는데….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 짚풀공예를 학문적으로 정립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 서울산업대 전통공예 최고 전문가 과정을 등록한 이유였다.

“전시회와 엑스포,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짚풀이 공예로서 가능성이 크다는 걸 확인했어요. 아이들은 뭘로 만들었는지 신기해하고 어른들은 ‘옛날에는~.’이라며 반가워하죠. 저는 이런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를 살리고 계승하고 싶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짚풀공예를 현대사회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 거칠고 투박한 짚풀공예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표면을 최대한 매끄럽게 하고, 동물 미니어처와 브로치, 가방, 수납기능의 복조리 등을 만들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단다. “지금은 소재와 소재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가죽과 접목해 가방을 만들거나, 천연염색을 결합하기도 해요.”

실제로 그의 작품은 짚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세련된 게 특징. 독일전시에서는 한지를 입힌 멍석 위에 그림을 그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짚풀에 회화를 접목시킨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기쁜 일이 많았지만 그 중 제일은 짚풀공예가 대한민국전통기능전승자회 전통공예 분야에 선정되어, 스승인 임채지 선생님과 제가 기능전수자와 계승자로 선정된 거였어요.” 지금도 스승이 계신 곡성을 찾아 배움을 이어간다는 그. 기능성과 예술성을 갖춘 작품으로 스승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가 배운 걸 전하지 않는 게 가장 나쁘다고 생각해요. 짚풀공예를 알리기 위해 공모전을 열고 다양한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이유죠.” 바람은 그저, 짚풀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거라는 그. 잠시 멈추었던 손이 다시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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