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있는 그대로
글. 송혜영

나와 남편은 오랜 연애 끝에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연애 시절부터 ‘예술대 여학생’과 ‘공대 남학생’으로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커플이었다. 성격 역시 정반대에 가깝다. 나는 수다스럽고, 걱정이 많고, 표현하기를 좋아하지만, 남편은 듣는 것을 좋아하고, 걱정보다 계획을 세우고, 표현하기를 쑥스러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맞는 커플이었고, 나는 그런 우리가 꼭 ‘퍼즐 같다.’고 생각했다. 나올 데와 들어갈 데가 전혀 반대라서 꼭 맞는 퍼즐처럼, 우리도 정반대이기 때문에 더 잘 맞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당시 내 생각에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서로 전혀 다르기에 잘 맞는 배우자, 서로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배우자.
결혼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점이 많다. 이를테면, 나는 언제나 물건을 잃어버리지만 남편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에도 함께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다가 남편이 물었다. “휴대폰, 열쇠, 지갑 다 챙겼어?”
나는 “다 있어.”라고 당당히 대답하며 가방을 뒤적거렸는데, 하필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편을 현관에 세워둔 채로 온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난 핸드폰 찾다 인생을 다 허비하겠어!”라고 투덜거렸다. 나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남편은 “아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해~.”라며 위로했지만 한참 찾아 헤맨 휴대전화가 내 뒷주머니에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래… 그럴 수 있겠다.”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듯, 여전히 우리는 다른 점이 많지만 이제 나는 ‘퍼즐 같은 천생연분’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르다고 해서 꼭 상대방을 위해 나를 바꾸고, 희생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 사이에는 그저 내가 물건을 찾는 동안 남편이 현관에서 기다려 주는 정도의 배려면 충분하다. ‘퍼즐처럼 꼭 맞아야 부부!’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에 나는 우리가 ‘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부부’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덜렁거린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꼼꼼해야 하고,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남편이 꼭 찾아줘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남편은 덜렁이인 나를 사랑하고, 나는 꼼꼼한 남편에게 고마워하면 충분하다. 퍼즐처럼 서로 꼭 들어맞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아닐까?
내가 남편을 사랑하게 된 건 그 사람이 나와 정반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니까. 무엇이 나와 같고, 무엇이 나와 다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고, 또 다르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역시 당신밖에 없어!
글. 노민진

아침 6시. 머리맡에서 휴대전화 알람이 진동하며 아침을 알린다.
‘아, 휴일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일어나 남편을 흔들어 깨운다. 주방 불을 켠 후 국을 데우고, 커피 한 잔을 내려 텀블러에 담고, 작은 약통에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담는다. 식탁에 앉으며 이 많은 영양제를 먹다가 목이 막혀 죽겠다는 불평을 내놓는 남편.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출근길을 나서는 모습이 안쓰러워 영양제로나마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봐온 모습 그대로, 여전히 남편은 싹싹하고 성실하다. 내게 슬그머니 말을 걸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서글서글하고 다정한지, ‘남편감으로 딱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결혼한 지 8년째.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두 아이 양육에 쏟아 붓다 보니, ‘단둘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우리의 가장 간절한 첫 번째 소원이다. 퇴근한 남편을 향해 오늘은 아이들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와 행동을 했는지, 반대로 속상하게 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등 아이들 중심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아이들의 곁에 함께 누운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남편의 하루나 육아를 제외한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하고 격려해줄 틈도 없이 밤이 지나 아침이 온다.
이런 날이 계속되는 게 너무 미안해지는 날, 그리고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 걸어준 남편의 전화 목소리가 유난히 무거운 날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린다. 싱싱한 쌈 채소와 달콤하고 매콤한 제육볶음 한 접시를 술 한 잔과 곁들여 내면 남편은 그 음식을 참 복스럽고 맛있게, 열심히 먹는다. “역시 당신이 최고!”라며 슬그머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남편과 술 한 잔을 주고받으며 속상한 일을 털어낸다. 서로 다시 힘을 내보자고 위로하고 격려해본다.
결혼 초반에는 기념일에 이벤트 한번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다. 나도 크고 예쁜 꽃다발과 용돈을 모아 마련한 작은 선물 한번쯤은 받아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가여워하고 위로하며 소박하게 사는 들꽃 같은 삶이 얼마나 평안하고 감사한 것인지 안다.
유난히 살림도 내조도 육아도 지쳐 심통 나는 날에는 언젠가는 올 아름다운 날을 상상해본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건설적으로 설계하며 서로의 손을 나란히 잡고 산책을 하는 것. 서로의 어깨에 기대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는 것. 희끗희끗 흰 머리가 늘고 주름이 파여도 설렘이 가득하던 젊은 날처럼 여전히 사랑을 속삭이는 것. 언젠가 다가올 그 아름다운 날들에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오늘을 살아 갈 힘이 절로 솟는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오늘 저녁 회식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올 남편의 속을 달래 줄 콩나물국을 끓어야겠다. 국 한 그릇을 받아든 남편은 또 말하겠지. 역시 당신 밖에 없다고….


상처와 위로의 공존
글. 이병휘

첫눈에 반한 것도, 열렬히 사랑을 한 것도 아니었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당신이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딸의 혼인을 치르고 싶어 하셨다. 마침 사귀고 있던 사람도 있던지라,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다른 건 볼 것 없이 “부모님 살아계시고, 맞벌이를 하셨던 어머니 대신 할머니 손에 컸으니 그거면 된다.”던 어머니. “내 딸이 고와야 사윗감도 고운 사람으로 고르지….”라던 어머니의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서운하다. 남편을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그가 진국이라며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싶어 결혼을 했고 지금은 15년째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그러나 결혼을 해서 부부로 함께 산다는 건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남편의 잦은 이직으로 늘 불안했다.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겨우 생활이 가능한 정도인데, 그마저도 이직으로 인해 월급날이 달라지니 생활이 늘 불안했다. 남편과 상의하며 가계를 꾸려가야 했는데 혼자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한 것은 화근이 되었다.
계약직으로 일을 하던 남편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갑자기 실직자가 되었다. 구직활동을 하였지만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면서 남편은 나를 원망했다. 자신의 잦은 이직이 가정생활을 불안하게 하는 큰 요인임에도, 규모 있게 생활하지 못했다며 나를 탓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을까? 지금껏 살아남아 있는 내가 승자라는 생각이 들만큼 당시는 너무 힘들었다. 누구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가장 위로받고 싶은 그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으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너무도 절망스러웠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나를 키워주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그는 나를 성장하게 하였다.
15년 차인 지금은, ‘부부는 서로 의지하는 상대가 아닌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안정적으로 준비가 되어있는 부부는 그 과정이 서로를 배려하고 노력하는 형태일 것이고, 성숙함이 부족한 부부는 서로를 상처내고 아프게 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 성숙한 부부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픔이 있는 후자의 모습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상처를 주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성장하게 해 주는 사이가 부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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