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님의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
글. 여도언

 “할아버지, 여쭈어 볼 게 있어요. 교무님은 왜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항상 입어요? 요즘은 빛깔 곱고 예쁘면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잖아요. 교무님은 매일 흑백 옷차림을 하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요.” 서안 앞에 앉아 먹을 갈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열한 살 손자가 쪼르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아주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아시아에서 지금의 미국보다 더 넓은 땅을 지배하고 있었단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에서 황하의 중국과 러시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호까지 호령했었지. 당시엔 정치 군사 기술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앞선 나라가 없었단다. 이웃 나라들에게 최고의 위세를 떨치고 있었어. 주변국들이 우리나라의 정치제도와 문화, 기술을 배워가고 또 모방했었지. 힘이 약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오만한 나라가 있으면 우리가 군대를 보내 혼내주었어.

전쟁 없이 이웃들이 합력하는 세계를 원한 거야. 평화를 매우 사랑하는 우리나라였단다. 선조들은 오곡을 풍성하게 하고 과실을 탐스럽게 익게 하는 태양을 숭배했지. 캄캄한 밤을 환하게 밝혀 만물을 키우는 태양이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믿었단다. 하늘의 이치를 널리 펴는 태양을 신으로 받들었어. 선조들의 태양 숭배 의식(儀式)은 세계 각국으로 번져 나갔단다. 선조들은 밤을 몰아내고 아침을 맞도록 태양을 밀어올려 떠오르게 하는 동물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 동물이 하얀 깃털을 가진 학 같은 새야. 사람에게 만물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태양을 선물하는 새라서 성심으로 숭배했어. 하늘의 이치를 품은 성조(聖鳥)이기 때문에 발이 셋이라고 생각했단다.
 
이 새는 태양을 떠받치다가 엄청난 열기에 온몸이 새카맣게 타버렸지. 선조들은 이 검은 새가 태양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런 믿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평소 화려한 옷을 입더라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만은 흰옷이나 검은 옷을 예복(禮服)으로 입었단다. 이 옷에는 하늘의 이치가 담겨 있다고 해야겠지. 최고 선진국인 우리의 예복 색깔이 이러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본받았지. 삼족오(三足烏)가 세계 각국의 유물과 유적에 나타나는 이유란다.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의 종교계 종사자는 흰옷이나 검은 옷을 착용하고 있어. 교무님은 성심 있는 사람에게 하늘이 감응하여 은덕을 내리도록 기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예복을 통해 알 수 있단다.” 

“교무님의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가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네요. 물들이는 기술이 없어서 흰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도 틀렸잖아요.” 열한 살 손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곁에 있던 일곱 살 손녀가 물었다. ”할아버지, 삼족오가 뭐예요?”

“삼족오라는 것은 태양에 살고 있는 다리가 셋인 검은새 혹은 까마귀를 말한단다. 우리 선조들은 삼(三)이란 숫자를 좋아했지. 삼은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지. 우리나라를 처음 연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왕검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우주의 자연이치를 뜻하기도 해. 그래서 삼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완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너희들이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거나 내기 게임을 할 때 세 번을 겨룬 후에 결정하는 것을 즐겨하지. 사람들이 삼을 좋아하는 이유도 선조들의 종교의식이 지금도 우리 유전자에 스며져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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