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맞단다
글. 신충선 정토회교당

초등학교 국어 시험문제: ‘내려놓다’를 소리 나는 대로 쓰시오.
답: 툭
채점을 하던 선생님은 당황스러웠다. 학습되기 이전의 순수하고 사실적인 답을 틀렸다고 해야 하나? 현실적인 제도에서 원하는 정답이 아니었다. 오답처리를 하고 답안지의 주인공을 불러 말했다. “너의 답도 맞는 것이지만, 이번 시험에서 원하는 답이 아니어서 틀렸다고 했단다.”
어느 선생님의 일화를 들으면서, 내가 선생님이었던 시절의 깨달음이 생각났다. ‘내가 늘 만나는 여고생들은 모두 같은 나이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이 소녀는 그 시대의 청년이요, 주부요, 어버이요, 세상의 주역을 맡은 주인공이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내가 그저 ‘어린 소녀 한 명’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잘 배울 줄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다. ‘공익심 있는 나’로 돌리는 마음대조 공부를 쉼 없이 하여 늘 사랑과 진실을 전하는 행복한 공부인이 되고 싶었던 나를 돌아본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글. 박은범 궁동교당

얼마 전 여자친구가 일을 시작했다. 온종일 고생했을 여자친구와 저녁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여자친구는 낮에 메시지로 했던 이야기를 또 했다. 나도 요즘 일이 많이 힘들었기에 내 고충도 털어놓으며 대화하고 싶은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계속 자기 이야기만 한다. ‘나도 정말 힘들었는데…, 나도 위로를 받고 싶은데….’
여자친구는 그렇게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나는 일부러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이야기를 대충 들었다. 결국, 여자친구를 격려만 해주곤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자친구는 나의 고충을 매일 들어주고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왔고 그럴 때마다 여자친구는 나를 항상 격려해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내 투정만 부리고 싶어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도 생각이 나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귀가 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태국 여행
글. 손양현 김해교당

태국으로 직장을 옮긴 친정 조카가 몇 해에 걸쳐 “다녀가라.”는 연락을 계속해왔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뤘는데, 올해는 비행기 티켓까지 보내주는 통에 큰 맘 먹고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에 대한 조카의 설명을 들으며 방콕시내에 들어서니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다.
고작 200미터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지만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조바심을 내면서 빨리 빨리를 외쳐대는 문화에 익숙하고, 신호가 바뀌고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1초도 견디지 못하고 경적을 울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나에게 이런 광경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여유와 배려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음공부 한다고, 마음을 여유 있게 넉넉하게 쓰겠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못내 부끄럽기만 하다. “작은 그릇은 곧 넘쳐흐르나 큰 그릇은 항상 여유가 있나니라.”고 하신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말씀을 새기며, 큰 그릇 되는 공부를 마음 키우는 공부로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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