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
마음의 보약을
얻자

늙음에 대하여
늙어보니 이제야 노인이 무엇인가를 알 듯 합니다. 뭔가를 하러 갔다가도 금방 잊고 다른 일을 하거나, 몸도 말을 잘 안 듣고 그렇더라고요.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들이 효자 효녀 노릇을 잘 해주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예전에 “야, 그 사람이 불공 잘한다고 그러더냐?”고 물으시기에 “네. 그런답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그럼 그 늙은 스님 한 번 모셔보라고 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 몰랐는데, 노인을 잘 모셔야 참 불공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노인을 모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잘 살다가 노인이 되면서 굳어지고 뻣뻣해지면 그것을 ‘늙음’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몸만 뻣뻣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뻣뻣해집니다. 무슨 결정을 할 때에도 자기가 가진 마음의 습관에 의지해서 그걸 중심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장사를 할 때 사러 온 사람들에게 맞춰야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처럼, 모시고 사는 대상들에게 이런저런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맞춰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관 운영을 할 땐 작은 규칙이라도 규칙대로 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편리를 봐드리는 경우가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수도원에 들어오면 작은 규칙이라도 함께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공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는 사람도, 모시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103. 01. 31 정양기관근무자 접견)


모두의 전성시대
육신 때문에 생기는 욕망, 그리고 전생에 지었던 습(習)이 나를 부처님처럼 변화시킬 수 없게 하는 장애입니다. 이걸 잘 극복해야 합니다.
육신이 있어서 생기는 욕망을 어떻게 정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정제하는 그 과정을 ‘수도 한다.’고 합니다. 새까만 원유가 정제공장에 들어가면 가장 가격이 높고 투명한 비행기유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들도 수도라는 정제를 계속 하면 욕망이 깨끗한 감정으로 변화합니다. 정제를 잘 시켜야 고급 감정을 가진 고급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비심이라는 가장 높은 감정으로 변화가 됩니다. 성자들도 처음에는 욕망 덩어리였을 테지만 고행 끝에 정제가 잘 되어서 누가 만나도 훈훈하고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보약을 먹으면 건강이 좋아지는 것처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좌선, 기도, 심고, 경전봉독이라는 보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육신으로 인해 생기는 욕망은 나타나고,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지요. 그럴 때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키고, 이기고 또 이기면 나중에는 욕망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부처님 경지에 다다르면 그 욕망이 자비심으로 바뀝니다.
지금은 나의 위치나 공부 정도가 별 것 아니더라도 본래적 자아와 습관적 자아를 함께 고쳐나가는 수행정진을 하면 자기 처지를 초월해서 세상일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오래된 책 제목처럼, 전무출신 생활을 통해 각자 각자가 자신만의 전성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의 전성시대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103. 01. 31 예비덕무·도무 접견)


종교의 벽을 부수자
살아가면서 가장 두꺼운 벽이 바로 종교의 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모임들이 그 벽을 부수는 용감한 시도이고, 앞으로 이런 모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같습니다. 천국이니, 극락이니, 낙원이니, 하는 것은 모두 궁극적 목표의 다른 표현입니다. 종교의 가장 높은 존재에 대한 것도 이름을 달리할 뿐이지 내용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본명은 장유석인데 원불교에 와서 ‘응철’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조금 나이가 드니 사람들이 ‘경산’이라고 부릅니다. 경산이나 응철이나 유석이나 다 같은 사람인 것처럼, 궁극적 존재는 작명이 다를 뿐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무렵에는 여호와라고 하셨지만, 만약 여기 와 계셨다면 ‘하늘’이라고 표현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문화의 태생이나 언어에 따라 그 접근 방법이 다를 뿐이니 서로가 바라는 이상세계도 같습니다. 종교들이 서로 같은 점을 많이 발견하면 힘든 마음도 활짝 펴지면서 평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반기문 UN사무총장님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각국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많이 다니다 보면 여러 문제의 가장 아래에 종교적 갈등이 있다고 합니다.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도, 평화를 어긋나게 하는 것도 종교인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불교에서는, 높은 법위자가 되려면 ‘다른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라.’고 가르칩니다. 종교는 같은 원리이고 함께 나아간다는 가르침을 실천해주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103. 01. 22 종교화합모임 레페스심포지엄 접견)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