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죽을 먹는 성인은
사람 형태를 지녀도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글. 김정탁


인기지리무신과 옹앙대영은 <덕충부>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신체불구자이다.  두 사람은 앞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두 가공의 인물이다. 인기지리무신(闉跂支離無脤)은 절름발이(闉跂)와 곱사등이(支離)에 언청이(無脤)를 의미하고, 옹앙대영(甕盎大癭)은 목에 항아리동이(甕盎)만한 큰 혹(癭)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인기지리무신이 이런 심한 신체불구자인데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펼치자 위영공은 그가 마음에 들어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로 마음에 들었는지 위영공은 그 후부터 온전한 사람의 목을 보면 오히려 가냘프다고 여길 정도이다. 또 옹앙대영도 크게 못생긴 사람인데 어느 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자 제환공은 그가 마음에 들어 좋아하게 되었다. 제환공도 온전한 사람의 목이 오히려 가냘프게 보였다. 그렇다면 불구자의 신체가 오히려 온전하거나, 또 혹이 늘어진 얼굴이 오히려 잘생긴 얼굴로 보이는 걸까? 물론 그건 아니다. 그보다는 내면의 덕(德)이 뛰어나면 신체불구자라도 그들의 외형 따위는 잊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거다. 


이런 사실은 <제물론>에서 ‘저편과 이편이 함께 짝한다는 피시방생지설(彼是方生之說)’을 통해 이미 설명된 바 있다. 피시방생지설에 따르면 사물은 저편(彼) 아닌 것도 없지만 이편(是) 아닌 것도 없다. 따라서 목에 혹이 달린 사람의 입장에선 혹이 달리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가냘프게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혹이 달리든 달리지 않든 모두 하나로 똑같이 보인다. 이것은 자연에 비추어볼 때 가능한 일이다.
성인도 별다른 이유 없이 세상사를 자연에 비추어 보기에 저편과 이편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위영공과 제환공도 처음에는 이런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 혹이 달린 사람과 혹이 달리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다. 그렇지만 인기지리무신과 옹앙대영의 덕이 너무 훌륭해서 위영공과 제환공에게서는 이런 구분이 사라졌다.


그런데 위영공이나 제환공과 달리, 보통사람들은 정작 잊어선 안 될 내면의 덕은 쉽게 잊는 반면, 잊어야 할 외면의 모습은 쉽게 잊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곱사등이에다 절름발이를 보면 신체불구자라고, 또 목에 항아리만한 큰 혹이 있으면 못생겼다고 고개를 돌린다. 위영공과 제환공은 그나마 인기지리무신과 옹앙대영이 지닌 내면의 덕으로 말미암아 곱사등이와 혹이 달린 이들의 외형을 잊었기에 마음에 들어 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은 사람의 모습만이 아니다. 평소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앎(知), 약속(約), 세속적인 (德), 솜씨(工) 따위도 잊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잊어버리는 게 정말로 잊는 거다. 성인은 정말로 잊어야 하는 것들을 잊고 내면의 덕은 잊지 않는데, 보통사람들은 그 반대이다. 그래서 보통사람은 정말로 잊어야 할 것들은 잊지 않고, 내면의 덕은 쉽게 잊는다.   


성인은 앎, 약속, 세속적인 덕, 솜씨 따위를 어떻게 해서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유유자적한(遊)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성인은 앎을 유용한 거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화근으로 여긴다. 또 약속과 신뢰를 확인하는 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제약하는 아교 칠로 여긴다. 그리고 세속적인 덕을 베푸는 거라 여기지 않고 사람을 모으는 수단쯤으로 여기고, 솜씨를 기술이라 여기지 않고 남에게 물건 파는 재주쯤으로 여긴다. 이처럼 성인은 유유자적한 삶을 살면서 앎, 약속, 세속적인 덕, 솜씨와 자연히 멀어진다. 그래서 성인은 일을 만들지 않아 아는 바를 사용할 일이 없다. 또 약속을 깨뜨리지 않아 아교 칠을 사용할 일이 없다. 또 잃을 게 없어 세속적인 덕을 사용할 일이 없다. 또 자신의 솜씨가 쓰여지길 바라지 않아 남에게 자신을 팔 일이 없다.


그래서 일을 만들지 않는 불모(不謀), 약속을 깨뜨리지 않는 부단(不斷), 잃을 게 없는 무상(無喪), 재주가 쓰여지길 바라지 않는 불화(不貨)야말로 자연의 죽(天鬻)이다. 자연의 죽은 우리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소화되는 자연의 먹을거리를 뜻한다. 이런 자연의 먹을거리는 우리 몸을 도울 뿐이지 몸에서 탈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좋은 먹을거리를 자연에서 이미 받았는데 앎, 약속, 세속적인 덕, 솜씨와 같은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음식을 굳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에서 탈만 만들어낸다. 그 탈이 바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려탄변집(慮嘆變慹)의 생각, 요일계태(姚佚啓態)의 행동1)이 아닐까? 우리는 이런 감정, 태도, 행동에 따라 갖가지 표정(情)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정(情)을 어떻게 해석할까 잠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장자 주석서들은 정을 감정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성인은 사람의 형태(形)를 지니더라도 감정(情)은 없다.”는 식으로 번역한다. 자전을 찾아보면 정(情)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뜻 정’으로서 감정이고, 둘째, ‘본성 정’으로 타고난 성질이고, 셋째, ‘실상 정’으로 참 모습이다. 여기서 ‘본성’과 ‘실상’은 관련이 없고, ‘뜻’ 또는 ‘감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情)을 뜻 또는 감정으로 해석하면 <덕충부>에서 소개되었던 지금까지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왕태, 신도가, 숙산무지, 애태타, 인기지리무신, 옹앙대영과 같은 신체불구자를 소개한 건 이들이 신체불구자임에도 훌륭한 덕의 소유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신체불구라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왕태, 신도가, 숙산무지, 애태타처럼 신체불구인 사람이 더 훌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情)은 감정이 아니라 모습이란 의미로 해석돼야 마땅하다. 정확히 말해 표정의 의미를 담는 모습이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우리의 몸과 얼굴은 모습에 속하는 것이지 감정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 정을 모습으로 해석해야만 외편의 <변무>, <마제>, <거협>, <재유>에 등장하는 성(性)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동아시아 사상에 있어서 성(性)과 정(情)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내면과 외면으로서 서로 연결된다. 즉 외면의 정은 내면의 성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성이 내면의 모습이라면 정은 외면의 모습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을 표정이란 의미를 지닌 모습으로, 성을 타고난 본성으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 물론 감정도 모습의 한 형태이지만 감정으로 해석하면 그 해석의 범위가 매우 제한된다. 외편의 <변무>, <마제>, <거협>, <재유>는 내편의 <덕충부>를 보완하는 내용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도 성과 정의 관계를 통해 덕(德)을 언급한다.    


이제 성인은 불모(不謀), 부단(不斷), 무상(無喪), 불화(不貨)란 자연의 죽을 먹기에 몸에서 탈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희로애락의 감정, 려탄변집의 생각, 요일계태의 행동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처럼 성인은 사람의 형태를 지니더라도 감정, 생각, 행동과 같은 표정 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성인은 사람의 형태를 지니므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표정과 모습이 없어 시비로부터 자유롭다. 성인은 일을 도모하지 않으므로 지식을 사용할 일이 없고,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므로 아교 칠을 사용할 일이 없고, 잃을 게 없으므로 덕을 사용할 일이 없고, 돈벌이를 하지 않으므로 남에게 물건 파는 재주를 사용할 일이 없다. 그래서 그는 큰 앎으로 큰 말을 할 뿐이다. 즉 대지한한(大知閑閑) 대언담담(大言炎炎)2) 을 실천하는 셈이다. 그러니 성인이 행하는 바는 크고 또 클 수밖에 없다.


반면 보통사람들은 사람의 형태를 지니면서 그 표정과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표정과 모습을 드러내므로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보통사람들은 일을 도모하므로 지식을 사용할 일이 생겨나고, 약속을 깨뜨리므로 아교 칠을 사용해야 하고, 잃을 게 많아 세속적인 덕을 동원해야 하고, 돈벌이를 하므로 남에게 물건 파는 재주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작은 앎으로 작은 말을 하기 마련이다. 소지간간(小知閒閒) 소언첨첨(小言詹詹)3)을 실천하는 셈이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이 행하는 바는 작고 또 작기 마련이다. 이처럼 까마득하게 작아 공자처럼 제자를 모아야 하니까 안타까울 뿐이다. Ι교수·성균관대학교 소통학. smilejt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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