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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혈심으로 살면 다 잘 될 거예요 2018년05월호


박청수 원로교무(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혈심으로 살면
다 잘 될 거예요


갓 출가하여 교전공부를 할 때 ‘공도자 숭배’라는 표어를 보며 생각했다. ‘무아봉공을 실천하여 숭배 받는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아마 그 마음이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밑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염원 때문이었을까? 박청수 원로교무는 북인도 히말라야, 캄보디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55개국을 도우며 그야말로 세상의 공도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지금도 1987년, 처음 인도에 갔던 때를 잊지 못한다는 그. 대부분 신발을 신지 않은 그들의 발바닥은 군살이 박혀 이물질이 닿아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고, 종아리는 장작개비처럼 말라 있었다. ‘이 지구촌에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나?’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그. 마치 인도의 가난이 자신에게 딱 달라붙는 것 같았다. 구경만 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할 무렵,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소년들이 학업 때문에 가족과 1만 리나 떨어져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라다크를 도운 성금은 10억여 원이 넘는다.
무지, 빈곤,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지구촌 소외계층을 도우며 한평생을 살아온 박 원로교무는, 퇴임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캄보디아로 600만 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살림은 총부에서 퇴임 원로교무에게 주는 복지금 23만6천 원으로 해결하며 수도자의 청빈한 삶을 살고 있다.
알고 보면 늘 개척이었던 삶. 30대 때 사직교당을 개척하고 시각장애인 교화, 육군사관학교 생도교화 그리고 그 당시 서울에 하나뿐이었던 서울지구 청년교화에 바친 열정은 참으로 대단했다. 종교의 벽을 허물고 천주교시설 성라자로마을 나환자를 31년간 돕던 일도 30대 때 시작한 일이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퇴임하고 올해로 벌써 12년인데 지금도 촌음을 아끼면서 살고 있어요. 퇴임 후에 자서전 <세상 받든 이야기>와 세계기행 <세상 나든 이야기>가 출간되었으니까요. 살아 있는 사람을 칸타타로 그 삶을 기리며 공연한 적은 아직 없었다는데, ‘맑을 청 빼어날 수’ 칸타타도 익산과 서울에서 공연되었죠. 그리고 나의 박물관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동영상이 14개월 만에 출시되었으니, 저로서는 많이 바쁘고 힘들게 큰일을 해낸 셈입니다. 요즘은 나의 다큐영화 <세상 받든 이야기>가 제작되고 있는데, 6월 2일 종로 서울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에요. 그 후 익산, 전주, 광주, 부산 등 지방도시 상영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나 혼자 하려니 많이 외롭습니다.”

● 어떻게 55개국을 도울 생각을 하셨나요?
“처음부터 55개국을 돕겠다는 큰 목표를 세울 수가 있었을까요? 소박한 일들을 쉼 없이 꾸준히 하다 보니 55개국이 된 거죠. 어머니가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을 사람을 위해 일해라.’ 하신 말씀이 나의 발길을 세계 53개국에 닿게 했고, 그렇게 살다보니 세계 55개국에 나의 손길이 미쳤다고 생각해요. 또 정산 종사께서 ‘앞으로는 천하가 한집안 되는 때라 어떤 지도자든지 세계주의로 나아가야 크게 성공하리라.’ 하신 말씀도 항상 명심했습니다. 대산 종사께서 ‘앞으로는 도인도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도 큰 화두였지요.”

세계도처에서 느낀 지구촌 사람들의 고통이 자신에게 전염되었고, 결국 그 연민의 정을 뿌리치지 못해 그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박 원로교무. 대산 종사가 ‘인류의 적은 무지, 빈곤, 질병’이라고 한 법문을 새기며 세계에서 무슨 일인가를 할 때에는 인류의 삼대 적을 퇴치하느라 힘썼던 그다. 덕분에 세계에 아홉 개의 학교를 세우고, 히말라야 설산 라다크에 종합병원과 세계 최빈국 캄보디아에 무료구제병원을 세워 무지와 질병을 퇴치하고자 했다. 캄보디아 무료구제병원의 경우 연인원이 벌써 22만 명에 이른다. 히말라야 설산에는 여섯 컨테이너의 겨울 옷, 전쟁을 치르고 궁핍해진 캄보디아에는 여름 옷 여섯 컨테이너를 보냈다. 몽골 화재민, 북한 수재민, 중앙아시아에서 맨손으로 돌아온 연해주 고려인들에게까지, 제3세계로 떠난 우리 옷은 서른 한 컨테이너에 이른다.

● 스승님들의 말씀이 인생의 큰 지침이 되었네요.
“네. 저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무아봉공, 정산 종사님의 세계주의와 삼동윤리 실천 그리고 대산 종사님의 무지 빈곤 질병 퇴치의 경륜을 봉대하며 일평생을 살았어요. 출가해 총부에서 생활할 때 매일 정산 종사님께 진짓상을 올렸는데, 그때 늘 ‘청수야, 너 오대양 육대주를 외워봐라.’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때 잘 외우지 못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남극주와 북극주만 빼고 나머지 세계를 다 돌아다녔더군요. 또 대산 종사님께서는 중앙대학교를 설립한 당시 유명 여성 인사 임영신을 빗대 ‘너는 우리 교단의 임영신 같은 인물이 되어라.’라며 격려해 주기도 하셨어요.”

그간 나라 안팎의 일을 하는데 소요된 금액은 350억여 원에 이른다. 하지만 박 원로교무는 세계 사업을 하느라 큰돈을 쓴 만큼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 청빈을 지켜야 된다는 소신이 철저하다. 2016년 제20회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할 때 뒤폭에 큰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입었던 20년 된 그의 검정 실크 치마는,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산표본이다.

●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저는 무슨 일을 한 번 할 때는 주소일념, 그 생각뿐이었어요. 나는 나의 생명이 불완전 연소되지 않도록 챙기며 살려고 노력하지요. 아침 시간도, 오전도, 오후도, 이 달도, 다음 달도, 늘 의미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될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건강한 사람은 늘 움직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때 그 때 그곳에서 직감적으로 느낀 것을 모두 나의 일감으로 삼으며 살아왔어요. 저는 우리가 만약 사심만 없으면 법계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모든 일이 성취되도록 위력을 내려주신다고 굳게 믿어요.”

강남교당은 당시 연원교당도 없는 상태에서 태어났다. 그 옛날 박 원로교무가 담임을 맡았던 서울지구 청년회원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탄생한 젊은 부부들이 기초교도가 되었고, 여러 교당 교도들이 “우리 며느리, 우리 딸, 교화시켜주세요.” 하며 보낸 30대 젊은 주부가 초창기 멤버를 이루었다. 화요법회는 여성교도들, 일요 수도법회는 남성교도들이 주축을 이루어 지금의 강남교당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나라 안에서는 시각 장애인 교화와 성라자로마을의 나환자를 돕는 한편, 1988년에는 캄보디아 돕기를 시작했고 1992년부터는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을 도우며 인도 출신 원현장, 원광조 두 명의 외국인 교무를 배출시키기도 한 박 원로교무. 중국, 캄보디아, 인도, 러시아 등에 설립한 해외 교당만도 일곱 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원불교에서는 당연히 이런 일을 하는 거겠지.’ 하며 26년의 세월 동안 그가 염원하는 모든 사업들이 이뤄지도록 합력한 강남교당 교도들이 있어 가능했다. 특히 2012년에 열반한 故 신현대 교도의 경우, 53개국을 동행하며 모든 현장 사진을 남겨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박물관도, 자신이 펴낸 여섯 권의 책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박 원로교무. 분신이자 그림자로 31년 동안 함께 한 큰 힘이었다.

● 내로라할 외부 인사들과의 인연관리법도 궁금합니다.
“우리가 과일을 살 때 누구나 가장 좋은 상품을 사고 싶어 해요. 과일 뿐 아니라 사람의 인격과 인품도 마찬가지예요. 높은 값에 팔릴 수 있는 인격과 인품이 있는가 하면, 하찮은 대접에 섭섭해야 할 처지의 사람도 많지요. 내가 최고의 인격과 인품의 소유자여야 내 곁에 근사한 타력이 모여들어요. 그러기에 자력을 잘 갖추고 꼭 필요한 타력을 활용해야 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 번도 자서전을 펴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제가 국내에서 으뜸가는 출판사라는 열화당 이기웅 사장님과 인연이 된 이야기만 봐도 그래요. 이기웅 사장님에게 ‘어떻게 내 책을 만들어 주셨느냐?’고 물었더니, ‘박 교무님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검증되신 분입니다.’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생각해보면 나는 열화당에 비싸게 팔린 셈이지요. 기왕이면 자기 자신이 비싸게 팔리도록 크게 준비하며 살아볼 일이에요.”

● 모든 일이 원만 성취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자력을 양성하라.’고 하시면서 <정전> 심고와 기도 장에서 ‘자신할 만한 타력을 얻는 사람은 나무뿌리가 땅을 만남과 같다.’고 밝혀주셨어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남의 협력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어요. 누구나 항상 타력의 위력을 힘입고자 갈망하지만, 알고 보면 타력은 자력과 정비례하죠. 자력을 기르고 잘 세우기 위해 먼저 자신에게 공들여야 해요. 그렇게 인격적으로, 또 인품으로 자력을 크게 세우고 나면 타력은 더불어 따라 옵니다.
그러기에 삼대력 얻기에 힘쓰고 나의 청탁이 통하는 타력, 상생선연을 항상 준비해야 해요. 나에게 만약 큰 원력이 있고 나의 청탁이 통하는 많은 타력만 준비되어 있다면 만사여의 아심통(萬事如意 我心通 : 모든 일이 내 마음과 같이 이뤄진다는 뜻)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 원불교가 살려내야 할 정신과 문화를 짚어 주신다면요?
“개교의 동기가 대단히 중요해요.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라고 말씀하셨어요. 스마트폰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스마트폰에 함몰되거나 지배받고 있어요.
사람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흐트러뜨리고 온전한 마음을 잘게 조각내고 있죠. 잘게 쪼개어진 마음을 한 마음으로 수습해서 온전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뭉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 중요해요.
그래서 양심적인 자기가 자기를 지배할 수 있도록, 도덕성 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죠. 종종 상당히 우수한 인물들이 청문회에서 도덕적인 허점 때문에 질타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결국 우리는 궁극적으로 인격을 완성하고 인품이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현대인의 진로를 열어줘야 해요. 지혜로운 사람,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