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 외나무다리에 서서
돌아 돌아 강물이 되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저길 꼭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애.”
“지난번에 갔다 오고선 왜 또 가려고 해.”
“저 강물 봐봐. 어느 강이 저렇게 가슴에 말뚝을 박아 외나무다리를 허락해 주겠어.”
“그러긴 하지. 강이란 게 얼마나 심술궂은데.”
여러 개의 강이 있습니다.
아쉬움 가득 안은 채 차마 발길 옮기지 못하는 이별의 강, 모든 것을 다 삼켜 버리는 분노의 강, 어둠보다 더 짙게 배여 오는 망각의 강, 만남을 영영 끊어버리는 죽음의 강…. 강은 생각보다 고집이 셉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기어이 그르렁 소리로 윽박지르며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죠. 그럴 땐 방안에 꼭꼭 숨어 있는 게 상책입니다.
삼면이 강물에 싸여 물 위에 떠있는 섬이란 뜻의 무섬마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강과 잘 타협해 왔습니다. 마을 뒷산으로는 한나절을 숨차게 올라도 세상과 연결되기 어려우니, 강과 잘 지낼 수밖에요. 강으로 난 외나무다리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죠.


“예전엔 이 다리를 건너면서 엄청 빠졌어요.”
“왜 빠져요?”
“아이들은 흘러가는 강물에 홀려서 빠지고, 어른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빠지고….”
“그래도 깊지 않아 다행이네요.”
“말도 말아요. 얕아도 물살이 셀 땐 감당이 안돼요.”
그렇게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외나무다리 위에서 조심조심하는 법과 서로 양보하는 법을 배운 거겠죠. 바위처럼 강할지라도 그 힘이 영원할 수는 없고, 또 봄 새싹처럼 여릴지라도 함부로 하면 대가는 따릅니다. 그러니 봄 강물처럼 세상살이도 조심조심 흘러야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돌이 지형인 무섬마을은 17세기 중반, 반남 박씨인 박수가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물처럼 흘러온 400여 년의 세월. 산과 강이 내어준 기슭에 초가와 기와집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여러 가옥들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가 꿈꾼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그는 이곳을 도피처로 삼은 걸까, 아니면 그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강을 건넌 걸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과의 단절은 없었다는 것이죠. 바로 강 위로 만든 외나무다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강 위로 물비늘이 꽃잎처럼 반짝이고,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강물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들. 봄날의 강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고요히 흐릅니다.
아직 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