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 보경 스님
사랑한다면 감수하라
사랑한다면 나눠라
취재. 장지해 편집장

‘송광사’라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사는 법정 스님의 글에 담긴 시선은 뭔가 달랐다.
당시 스무 살, 갓 출가한 어린 행자는 <불일회보>에 연재되는 스님의 글을 챙겨 읽으며 생각했다. ‘스님은 매화가 핀 풍경을 이렇게 보셨네? 오가는 사람을 이렇게 보셨네? 이런 관점의 차이들이 있구나!’ 그렇게 법정 스님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 차이를 유심히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돌이켜보니 그것이야말로 말 없는 가운데 이뤄진 글쓰기 수업이었다.”고 말하는 보경 스님(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 송광사). 수업을 잘 받은 덕분일까. ‘법정 스님의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문승(文僧)’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한 그는, 1년 6개월 전쯤 14년(서울 법련사 주지 12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2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다시 송광사로 돌아왔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크게 달라진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았던 생활. 하지만 어느 추운 겨울날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부터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니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며 깨달은 이야기가 어디 한 둘일까. ‘냥이’와 함께하며 겪고, 느끼고, 얻은 삶의 지혜 여럿은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책에 담겨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로 특히 젊은 층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따뜻한 햇살이 가득 내리쬐던 어느 봄날. 오늘도 스님은 졸졸졸- 따라오는 냥이와 함께 법정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까지 산책을 다녀온 참이다.

● ‘고양이를 키우는 스님’으로 이슈입니다.
“추운 겨울에 찾아온 떠돌이 고양이 한 마리를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우유도 주고 빈 박스로 잘 곳도 만들어 준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죠. 냥이 덕분에 나긋나긋한 마음의 감정을 아낌없이 풀어서 책도 쓰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얻는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보살펴주면 나랑 살 건가?’ 싶어 시작된 냥이와의 동거. 하지만 막상 키우려고 보니 알아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양이의 습성과 사료 종류를 검색해보는 한편, 여러 문학작품에서 간접으로 경험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냥이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한 보경 스님. 그렇게 ‘공부삼아’ 살핀 냥이의 모습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으로 내게 되었다.

● 냥이와 생활하면서 ‘함께’의 의미도 많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고양이와 지내면서 느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사랑하면 감수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한다면 나눠라’죠. 일단 고양이는 털이 많잖아요.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저도 실제로 그게 겁이 났었는데, 점점 그것을 감내하게 됐어요. 강가에 살려면 악어와 친구가 되라는 인도 속담처럼, 뭔가가 좋으면 따라오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냥이와 지내다보니, 점점 공간과 감정을 나누게(공유하게) 돼요. 냥이가 저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만큼 제 영역에 들어오고, 저는 그걸 허용하는 거죠. 사랑하지 않는 사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사실 대부분의 출가자들은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스님이라고 어찌 그러지 않았을까. 하지만 보경 스님은 냥이와 함께 살면서부터 ‘가족’의 의미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누군가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설렘은 물론이고, 일어나고 잠들기 전 굿모닝, 굿나잇 인사를 나누는 것도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는 것. 특히 눈이 많이 쌓인 어느 겨울날에는 몇 시간째 보이지 않는 냥이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한참 후 눈밭에 파묻혀 달려오는 냥이의 양 귀를 손으로 잡아 추위를 녹여주다가는 왈칵,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돌아온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주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쏟아질 뻔도 했다.
 
● 평생 일 만권 독서수행을 서원으로 세우셨다고요.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과거의 사람은 어땠는지, 다른 문화권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지,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더라고요. 또 스물에 출가해서 종교적인 길을 가기로 서원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찌됐던 스스로 내 인생을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남보다 성공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거죠. 가만 보니 사람들이 독서를 잘 안하더라고요. 남이 하지 않는 걸 하면 성공 확률이 많잖아요? 하하.”

성공이라고 표현하지만, ‘내 권한 밖의 일은 이런저런 풍파가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세운 게 독서 1만 권이라는 목표. 7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그는 3천 권을 넘기고는 생각의 자유, 4천 권을 넘기고는 글을 쓰는 자유, 5천 권을 넘기고는 인용의 자유를 얻었다. 아마 조금 더 가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 창작의 자유가 나타나는 경지를 맛보지 않겠냐며 웃어 보인다.
 
● 어떻게 해야 책을 잘 읽을 수 있나요?
“독서에도 단계가 있어요. 맨 처음에는 결국 인간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죠.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걸 접해야 따뜻한 마음과 인격의 그릇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감정과 이야기에 각 문화권이나 시대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 차이가 궁금해지면 ‘저건 어떤 원리에 의해 작용되는 걸까.’를 고민하면서 독서에 불이 붙죠. 어찌됐든 독서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갈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많이 보는 게 중요해요. 만화책으로 채우더라도 일단 양으로 한 삼천 권 정도 해내면 독서에 내공이 생겨요. 그런 후에야 깊이 들어갈 수 있죠.”

사실 보경 스님은 일만 권 독서 서원뿐만 아니라, 에세이집과 불교 교리 해설서도 다수 출간했다. 얼핏, 두 가지는 영역이 전혀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언어와 생각으로 불교를 알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말이 돌아온다.
 
● 안주하고픈 마음은 없으셨는지요.
“하는 것마다 결실이고 이삭인 걸 알면 멈출 수가 없어요. 냥이와의 이야기만 해도 그래요. 고양이가 절에 5년 넘게 있었다는데, 아무도 고양이로 뭔가 해볼 생각을 못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고양이 이야기로 책을 써서 유명세도 타보고(웃음), 제가 마치 고양이들의 성자가 된 것처럼 재미있는 일도 경험하고 있잖아요.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게 다 공부 거리고 수행이에요.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이 가장 심한 아첨꾼’이라는 말이 있는데,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극복하고 적응해가는 정신이 있어야 해요. 핵심은 결국 자기 초극이죠.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게 있는데, ‘이만하면 됐어.’ 하고 멈추면 되겠어요?”

서울 법련사 주지로서 도심포교와 열 권의 책 발간, 그리고 학사·석사·박사 학위까지 다 해내야 했던 14년 서울살이 이야기는, 듣는 이의 고개가 내둘러질 만큼 치열했다. 하지만 정작 보경 스님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오히려 큰 마장이 없었다고 말한다.
 
● 지금 시대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은 뭘까요?
“일찍이 많은 종교학자들이 예견하기를 ‘미래 종교는 명상으로 통일 될 거다.’라고 했어요. 명상은 다시 말하면 자기 반조, 자기 성찰이죠. 그만큼 우리의 인지능력이나 보편적인 지성이 높아져서 전처럼 문제를 밖에서 찾지 않고 내 마음 안에서, 나에게서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예요. 불교에서는 그걸 회광반조(回光返照 : 자기 마음의 빛을 돌이켜보는 것)라고 하는데, 자기 반성 내지는 자기 정화의 능력을 키워가는 것, 그게 앞으로의 종교가 제시해야 할 큰 줄기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게 자기 자신을 아는 거고, 가장 쉬운 게 남에게 충고하는 거라던데, 종교와 종교인이 가장 유의할 점이 바로 충고 같아요. 말로는 못할 일이 없죠. 그걸 벗어나야 해요.”

● 삶의 이정표로 삼고 있는 말씀이 있으면 전해주세요.
“‘삶은 지나간다.’는 말을 항상 되새겨요. 힘든 것도, 기쁜 것도, 모든 순간은 금방 지나가잖아요. 이 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까 더 열심히 시간을 아껴서 살고, 조금이라도 힘이 더 있을 때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윤회’를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몸이 다시 태어나서 살아간들, 인간이 하는 짓은 뻔하잖아요?(웃음) 진정한 윤회는 뒷사람들이 이어 받아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유산을 남기는 거죠. 나의 사상과 내가 살아온 삶이 가치 있고 본받을 만하면 사람들이 계속 이어갈 테니까요.”

●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은혜롭게 살 수 있을까요?
“중세의 루미라는 시인이 쓴 시에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라는 구절이 있어요. ‘길을 찾지 마라.’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고, 그 안에서 푹 익어버리라는 말이에요. 보이차를 파는 곳에 호중일월장(壺中日月長)이라는 말이 있어요. 항아리 속의 세월이 장구(長久)하다는 뜻이지요. 된장을 띄우려는데 콩이 항아리 속에서 튀어나오려 한다면 된장이 안 되잖아요. 차든 콩이든 항아리 안에서 푹 익어야 숙성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은혜롭게 살려면 ‘사랑’ 안에 푹 젖어야 해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야죠. ‘너는 너의 삶을 사랑하느냐? 너의 가족을, 이웃을, 길 위의 생명들을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이 있느냐?’고요. 그렇게 매일 한 번씩만 물으면 삶이 저절로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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