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개벽과 평화운동
글. 김태우 유엔 세계평화의 날 한국조직위원회 사무차장·한강교당

1948년 12월 10일,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잔혹함을 경험한 인류사회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반성과 성찰의 의지를 담은 세계인권선언문을 국제연합(UN)을 통해 세계에 공포하였다. 선언문은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 인권을 인정한 최초의 역사적 사례로서, 국제사회가 합의를 통해 이루어낸 세계사적인 대업이자 ‘세계평화’의 토대를 마련해 준 인류사회의 위업이었다.
세계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선언문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는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하다는 철학적 토대를 세계에 확립시켰다는 데 있다. 이러한 사상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인종차별을 반대하지만, 선언문 이전의 인류사회에서는 그러하지 못했다. 근세 철학의 아버지이자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연합의 이념을 제시한 <영구평화론>의 저자 임마누엘 칸트 조차도 인종차별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

올해는 세계인권선언문이 선포된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동안 인류사회의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으로 인해, 선언문은 국제관습법으로서 세계인들의 보편적인 규범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쾌거에도 불구하고, 세계도처에서는 여전히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어 세계평화를 향한 인류사회의 고뇌는 여느 때보다 깊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인류사회가 지금까지 평화의 실마리를 풀어내지 못한 근원적인 이유는 평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평화는 본래 우리의 인식범위를 초월하는 고차원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솔직히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또한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인류가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세계평화’의 시대는 없었다.
우리는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작가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차원과 인식에 대한 설명에서 평화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저차원 존재가 고차원 존재를 완벽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차원의 벽을 넘어서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인식과 인지의 한계 때문에 온전한 이해는 어렵다고 하였다. 마치 불경의 군맹무상(群盲撫象) 고사와 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오감을 통해 평화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깨달음을 통해 차원의 벽을 넘어 마음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인류는 이미 사랑이라는 관념을 통해 이러한 고차원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사랑은 평화처럼 오감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 존재를 마음으로 인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의 이해를 마음으로 할 수 있다.
20세기의 최고 지성인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평화는 힘이 아닌 오직 ‘이해’로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해는 서로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바, 이해의 과정은 서로의 신뢰를 굳건하게 하여 평화를 향한 진정한 대화(Sincere Dialogue)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신과 편견, 아집과 곡해 때문에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한 이해보다 힘의 논리에 의한 협상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금까지 논의된 이야기들을 요약하면, 평화의 세상은 실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류사회 간의 믿음이 필요하고, 동시에 불신과 편견, 아집과 곡해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양자 모두의 마음이 깨어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정신의 각성과 올바른 마음의 사용을 위해 정신개벽이 평화운동에서 필요한 이유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물질문명의 발전에 비해 정신문명의 발전은 아직 유아기의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인류사회는 이제야 비로소 인류를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려 하고 있으며, 힘의 논리에 의한 평화보다 이해를 통한 평화가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이란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이 여느 시대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평화활동가 조디 윌리엄스는 2010년 TED 강연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현실적인 비전으로서 ‘참여와 행동’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참여’의 의미는 국제사회가 함께하는 평화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행동’의 의미는 진정성을 담은 평화운동의 전개를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가 소속된 유엔 세계평화의 날 한국조직위원회에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인간성 회복과 성찰을 목표로 하는 ‘어웨이크닝 휴머니티(Awakening Humanity)’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정신개벽을 통한 평화운동의 전개, 이것이 단체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새롭게 추구하는 평화운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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