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대통령
글. 박성근

나는 일 년에 두 번 돈암교당에서 ‘어린이들의 대통령’이 된다. 바로 ‘갑마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언저리에 갑마트 행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교당에 오고 싶을 때가 된다. 갑마트가 열릴 때쯤은 나도 아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상품들을 찾느라 여기저기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 아이들이 법회에 오면 인사 후 가장 먼저 하는 의식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통에 갑카드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세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갑카드 개수가 많아지니 세는 시간도 점점 늘어난다.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의 갑카드를 슬쩍 세어보고는 자신이 현재 일등임을 자랑하기도 한다.

12월 24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갑마트가 열리는 날이다. 독경 소리가 쩌렁쩌렁하니 귀가 아플 정도다. 너무 과도하게 흥이 들어간 탓에 분위기가 다소 산만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들의 그 기분을 존중하기로 했다.
단하는 시작과 동시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찍어놓은 상품을 갑카드와 교환한다. 갑마트에서 가장 비싼 상품이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상품을 사려니 갑카드가 부족하다. 그러자 어린이회장인 유원이가 단하에게 부족한 만큼의 갑카드를 내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유원이에게 물었다. “유원아, 왜 단하에게 갑카드 줬어? 안주면 네가 더 많이 살 수 있잖아?” 그러자 유원이는 “동생이 저걸 너무 사고 싶어 하길래 줬어요~.”라고 말한다. ‘요녀석 봐라~.’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 세아는 조용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상품들을 사고 있다. 역시나 결정을 쿨하게 빨리빨리 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유원이는 뭘 살까 계속 고민 중이다. 나는 유원이를 향해 “갑마트 마감 오 분 전~.”을 외쳤다. 이후 자신의 것을 어느 정도 장만했다고 생각한 유원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나눠줄 과자를 사기 시작했다. “교무님 이거랑 저거는 학교 친구들 나눠주려고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갑마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하준이가 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아직 많은 상품이 남아 있었다. 하준이는 자신의 갑카드를 보더니 계속해서 “이상하다. 왜 이렇게 갑카드가 많지? 출석을 많이 안 했는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전날 아이들의 갑카드를 세어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하준이 갑카드가 너무 적어서 몰래 넣어둔 참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했는지, 하준이에게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라며 인심을 팍팍 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갑마트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더불어 나의 대통령 임기도 끝이 났다. 아이들은 오늘 기분이 좋았는지 스스로 단톡방을 만들고 나를 초대해 주었다. ‘와~! 초대라니.’ 기쁨도 잠시, 이 초대의 의미는 내년에 열릴 갑마트에서 자신이 가지고 싶은 상품들을 아주아주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위해서란다. 하하. 갑마트도 맞춤형 쇼핑 시대를 거스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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