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이 온전한데도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애태타
글. 김정탁

<덕충부>에 등장하는 신체불구자 중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애태타이다.
애태타(哀駘)란 슬픈(哀) 둔한(駘) 낙타()란 의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추한 모습은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그와 함께 지내면 그를 사모해 그 옆을 떠날 줄 모른다. 또 처녀들은 남의 아내가 되느니 그의 첩이 되겠다고 부모를 조르는데 그 숫자만도 십여 명이다. 또 애태타는 자기주장을 좀체 내세우지 않고 가능한 남과 화합을 이루려고 한다.

노나라 애공(哀公)은 호기심이 발동해 애태타를 한 번 불러서 만나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추한 모습은 소문 그대로였다. 그런데 애태타와 사귄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애공은 그의 사람됨에 끌리고, 또 사귄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마침 노나라에 재상 자리가 비어 애공은 애태타에게 국정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애태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사양하는데, 그 사양하는 모습이 적지 아니 범상스러웠다.

그래서 애공은 그에게 국정을 맡기려 한 자신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애태타에게 국정을 맡기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그동안 사귀어 온 것처럼 비추어졌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애태타는 애공에게서 떠나갔다. 그러자 애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만한 사람이 없어진 듯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 후 애공은 공자를 만나 애태타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사신일 때 겪었던 경험담을 통해 애태타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했다.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공자는 우연히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 돼지의 젖을 빠는 걸 보았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새끼 돼지들이 놀라 모두 어미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미가 자기들을 쳐다보지 않고, 또 어미의 모습도 예전 같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새끼 돼지들이 어미를 사랑한 건 어미의 몸이 아니라 그 몸을 움직이게 하는 내면의 모습, 즉 덕(德)을 사랑한 것이다. 이 예를 통해 공자는 애공이 애태타를 사랑한 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덕 때문이란 점을 확인시킨다.

그리고선 애태타가 재상 자리를 왜 사양했는지를 전쟁터에서 죽은 병졸과 형벌로 발목이 베인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싸우다 죽은 병졸의 장례를 치룰 때는 구름무늬로 장식된 운삽(雲翣)을 쓰지 않는다. 병졸의 시신이 크게 훼손되어 관을 쓰지 못하므로 운삽을 쓸 근거가 사라져서이다. 참고로 운삽은 관의 앞뒤에 세우는 부채모양의 제구인데, 관이 없으면 쓸 수가 없다. 또 형벌로 발뒤꿈치가 잘린 사람은 신발을 소중히 할 필요가 없다. 발목이 잘린 사람은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이다.

그러니 몸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사람도 마땅한 바탕과 이유가 있어야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손톱을 짧게 깎거나 귀에 구멍을 뚫는 등의 고통스러운 일을 누구나 면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천자의 비빈쯤 되어야 이런 면제가 가능하다. 또 아무나 일을 면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인이라도 갓 장가를 들어야 노역에서 일 년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애태타처럼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도 이런 배려를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이렇게 보면 애공이 애태타에게 제후국의 재상 자리를 제의한 건 결코 합당한 배려가 아니다. 제후국은 유위지치(有爲之治), 즉 하고자 함이 있는 다스림으로 가능하지만, 덕을 온전히 지닌 사람은 무위지치(無爲之治), 즉 하고자 함이 없는 다스림에만 관심이 있다. 왕(王)이 유위지치로 다스리는 군주라면 제왕(帝王)은 무위지치로 다스리는 군주이다. 그러니 애공은 애초부터 애태타에게 제후국의 국정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것이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애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군주로부터 신망을 받고, 공적을 쌓지 않았는데도 군주와 친해지고, 심지어 군주가 국정을 맡기려 하는데도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군주가 염려할 정도이다. 애태타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자연이 애태타에게 부여한 본 바탕이 온전하고, 또 본 바탕이 온전한데도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이다. 장자는 본 바탕이 온전하다는 걸 재전(才全)으로, 그리고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걸 덕불형(德不形)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본 바탕이 온전할 수 있을까? 사물이나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생명을 꽃피우는 봄의 온화한 기운이 마음속에서 때맞추어 일어나야 본 바탕이 온전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만물과 함께 봄날의 온화함을 유지하도록 놔두어야지 사물과 함께 세상 속으로 매몰되어선 안 된다. 애태타를 가까이 한 사람들이 그를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들은 애태타를 만날 때마다 그에게서 생명을 꽃피우는 봄의 온화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애태타를 만나면 자연이 준 본 바탕을 온전하게 할 수 있어 애태타를 만난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봄날의 온화함과 같다.   

여기서 봄의 온화한 기운이 마음속에서 때맞추어 일어나는 건 <인간세>에서 언급된 바 있는 허실생백(虛室生白), 즉 텅 빈 마음에 눈부신 빛이 생겨나는 것과 짝을 이룰 수 있다. 봄의 온화한 기운이 눈부신 빛에, 또 때맞추어 일어나는 게 생겨남에 각각 해당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봄의 온화한 기운이 때맞추어 일어나는 마음이든 눈부신 빛이 생겨나는 텅 빈 마음이든, 여기에 길상(吉祥), 즉 길한 상서로움이 머물고 또 머문다고 말한다. 그만큼 봄의 온화한 기운이 때맞추어 일어나는 마음과 눈부신 빛이 생겨나는 텅 빈 마음은 상서롭기 그지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물과 마주할 때마다 봄의 온화한 기운이 마음속에서 때맞추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타고난 본성의 조화를 즐기면서 마음을 확 트이게 해 말초적 감각에 빠지지 않으면 가능하다. 그런데 말초적 감각에 빠지지 않는 건 <인간세>에서 언급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으라.”는 것과 짝을 이룬다. 소리로 들으면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마음으로 들으면 자신의 생각과 부합하는 것만 받아들이는데, 이런 식으로 감각작용을 하면 사물과 함께 봄날의 온화함을 결코 유지할 수 없다.
반면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마음이 아닌 기로 들으면 심재(心齋)에 이른다. <인간세>에선 기로 듣는 게 궁극적으로 심재에 이르는 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심재란 마음을 굶기는 작업이다. 몸을 굶기면 신체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굶기면 의식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심재는 감관 및 심관 작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재전(才全), 즉 바탕이 온전한 것도 말초적 감각에 빠지지 않는다는 걸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렇다면 심재와 재전은 표현만 다를 뿐, 감관작용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는 점에선 같다.    

또 애태타는 그의 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즉 덕불형(德不形)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마음에 덕이 가득차면 그건 마치 잔에 물이 가득 찬 것과 같다. 물이 잔에 가득 찬 상태가 최고로 평평한 상태이다. 이 상태에 이르면 안으론 안정되어 있지만 밖으론 흘러넘치지 않는다. 물이 이런 조화를 만날 때 평평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마음도 고요할 때 온화할 수 있다. 애태타의 덕도 안정되면서 흘러넘치지 않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훗날 애공은 공자의 제자인 민자(閔子)와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신은 처음에 법으로 백성의 기강을 잡고, 또 국정이 잘못되어 백성이 죽을까 걱정하는 게  군주가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여겼다. 한마디로 인위에 따른 다스림, 즉 인위지치(人爲之治)를 최고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애태타란 지인(至人)의 말을 듣고선 자신이 나라를 다스릴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가볍게 처신해 나라를 망칠까를 걱정하고 있다. 즉 인위에 입각한 다스림보다 훨씬 나은 게 무위에 입각한 다스림, 즉 무위지치(無爲之治) 임을 비로소 깨닫고 있다. Ι교수·성균관대학교 소통학. smilejt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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