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길 위의 예수님을 만나는 삶
취재. 장지해 편집장

“여기 오시는 분들(노숙인)에게는 밥만큼이나 사랑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함께 담아주세요.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오후 4시 반, 성남시 안나의집 무료급식소 오픈을 앞두고 김하종(보르도빈첸시오) 신부가 봉사자들에게 당부의 말과 함께 꾸벅 인사를 건넨다. 문밖에는 진작부터 급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가득한 상황. 이곳에서 급식을 이용하는 노숙인은 하루 평균 550여 명이나 된다.
28년 전,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한국 땅에 발을 딛던 그 느낌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말하는 김 신부. 비행기에서 내려 첫 걸음을 떼던 그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나라다. 내 민족이다. 이곳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봉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그 한 생각에서 비롯된 그의 삶은 독거노인, 노숙인, 길 위의 아이들까지, 오로지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살게 했다.
새로운 민족, 새로운 나라, 새로운 생활에 맞춰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직접 지은 한국이름 ‘김하종’.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이 담긴 그의 이름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지금 여기’에서 실현해내겠다는 그의 다짐과 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안나의집 역사가 벌써 20년입니다.
“안나의집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곳이에요. 현재 노숙인과 길 위의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들을 하고 있지요. 30여 명의 노숙인들이 자활을 준비하며 함께 거주하고 있고, 매일 550여 명의 노숙인들이 급식소를 찾아와요. 네 곳의 쉼터에 40여 명의 청소년들이 머물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 이동식 상담소(아·지·트 : 아이들을 지키는 트럭)도 운영하고 있어요.”

안나의집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는 6년 동안 독거노인들을 위한 급식소를 운영했었다. 그러다가 1998년, IMF로 인해 노숙인들이 급격히 증가하자 당시 노숙인들의 숫자가 가장 많다는 성남에서 국내 최초 실내 무료급식소인 안나의집을 시작한 것. 이날 우리와 처음 마주쳤을 때도 김 신부는 주방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도 직접 급식을 준비하느냐고 묻자 “저는 봉사자예요. 그곳을 책임지는 주방장님의 업무분배에 맞춰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한 사람’인 거죠.”라는 말이 돌아온다. ‘저는 봉사자예요.’라는 말의 여운이 오래 맴돈다.

● 이 일들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이렇게 여러 사업이 될 줄 예상하고 했다면, 오히려 시작을 못했을 것 같아요. 하하. 대부분의 사업들은 좋은 아이디어 후에 계획 세우고, 예산 받아서 시작하는데 안나의집은 거꾸로예요.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하나씩 늘려가다 보니 이만큼 이루어진 거죠. 전 그저 매일 ‘오늘 제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끝까지 잘 해내게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해요.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이 순간, 이 사람을 만나서 잘 받아들이도록 도와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는 거죠.”

2018년이 되어 건물 계약 20년이 만료되면 문을 닫고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불쌍한 사람’이 아닌 ‘형제자매’로 만난 이들의 앞날이 걱정됐다. 다시 예수님에게 매달렸다. ‘저를 그동안 도와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도와줄 것을 믿습니다. 당신을 믿기 때문에 하겠습니다.’ 그러자 차곡차곡,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돈과, 땅과,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낮은 이들을 위한 그의 간절한 기도는 기적이 되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 본래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나요?
“사실 저는 난독증(글을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지 못하고 철자를 정확하게 쓰기 힘들어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학습 장애의 한 유형)을 가지고 있어요. 학생 때 고생을 참 많이 했죠. 그래서인지 고통을 겪거나 고생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쉽게 느낄 수 있었고,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고, 공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원망하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돌아보니, ‘난독증’이라는 고통 덕분에 지금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러니 감사하죠.”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신학교에서도 선택과정이 있으면 항상 아시아 공부를 했고, 대학원에서는 동양철학을 전공했죠. 그러다가 당시 한국천주교의 특별한 역사와 김대건 신부의 매력에 끌려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결심을 했어요.”

동양철학을 전공하면서는 특히 ‘불교’ 공부를 주로 했다는 김 신부. 고등학교 때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인도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집을 읽은 후 타고르에게 향하던 관심은 간디를 알게 했고, 간디를 통해 인도와 부처님을 공부하게 했다.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흐름들. 신부인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한다.

● 노숙인뿐만 아니라, 길 위의 청소년들을 위한 일들도 하고 계신데요.
“대한민국 노숙인은 10만 명인데, 대한민국 가출 청소년은 20만 명이에요. 게다가 노숙인 숫자는 늘거나 줄지 않고 대체로 비슷한 수치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길 위의 청소년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죠. 노숙인도 안타깝지만 그들은 어른이라 남이 자신을 괴롭히면 나름의 방법으로 보호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파요.”

밤마다 그가 버스를 몰고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성남의 유명 유흥가. 죄가 많은 모세가 악마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막 땅을 밟자 하느님께서 “너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어라.”라고 말한 의미를, 김 신부는 그곳에서 깨닫는다. 인간으로서 죄를 많이 지을 수도 있는 곳,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 한명 한명을 예수님과 다르지 않게 여기는 것.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네주며 2~3초 잠깐 눈을 맞추며 말을 걸다보면 자연스레 버스로 들어오고,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신부다. 나는 나이가 많다.’는 생각없이 하는 것이다.

●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어른들의 노력이 중요할 것 같아요.
“아이들 대부분은 어른 때문에 상처가 많아요.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죠. 처음부터 ‘저 문제가 있어요. 도와주세요.’ 하고 찾아오는 아이들은 없거든요. 게임하자고 하면 저는 제가 지는 줄 알면서도 같이 해요. 친분을 쌓아야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아지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경계선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안으로 당겨줄 손이 많이 필요해요. 한국사회 어른들이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진심으로 깨달아야 해요.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많아져야 해요.”

매일 아침 안나의집으로 출근하기 전,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쉼터에 들러 한명 한명을 끌어안고 ‘사랑해.’라는 말을 건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친부모가 되어줄 순 없지만,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과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 김 신부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린다.

● 오직 타인을 향한 삶을 살다보면 고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현재 저는 제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요. 예수님 가르침대로 ‘고생하는 사람, 아픈 사람, 소외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느님의 종으로서, ‘어제 잘했으니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매일매일 열심히 일할 뿐이죠.  ‘오늘, 열심히, 겸손하고, 최대로, 성실하게, 사랑으로, 살자.’고 늘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인간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는 일이 아니에요.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알라신이든, 그분들이 우리를 인도해주고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힘듦이 극복돼요.”

●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대학원 때 세미나를 하는데 어떤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여러 권의 책을 하나씩 나눠주셨어요. 책의 표지를 다 뜯은 채로요. 2주 후에 발표를 하는데, 다들 책 내용이 좋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자네는 이슬람교 책을 읽은 것이고, 자네는 불교 책을 읽은 것이고, ….’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첫 장을 빼고 편견이나 차별 없이, 마음을 비운 상태로 보면 어떤 종교의 가르침도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 종교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은데요.
“저에게 예수님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제 생활 안에서 믿으며 직접 그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생활도 할 수 있는 거죠. 성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만 계속 고집할 게 아니라, 정말 척박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내야 해요. 종교가 도덕적이고 멋있고 좋은 이야기에 그치면 안 되고, ‘좋은 생활’ 그 자체가 되어야 해요. 교회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는 모르더라도, 종교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이 성실하고 자비롭게 변화되었다면 그게 진짜 종교의 의미 아닌가요? 생활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과 성자를 보여주는 종교가 되어야 해요.”

●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전해주신다면요?
“행복하게 살려면, 나눔을 실천하세요. 요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내 돈, 내 집, 내 자동차, 내 시간이라고 하면서 모든 핵심을 ‘나’에 둬요. 다른 사람이 옆에 오면 내 돈을 뺏을까봐, 나를 아프게 할까봐 의심하죠.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나누면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고, 비웠기 때문에 빈 손 되어서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 내가 가진 돈, 시간, 탤런트(재능, 장기)를 나눌 수 있으면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요. 한번 해보면 또 하게 돼요. 그걸 체험해야 해요.”  | 성남 안나의집 031)757-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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