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정성 담긴, 수제 쌀엿
입안에서 바사삭 녹는 달콤함
취재 이현경 기자

  소복한 눈 이불을 덮은 순창군 동계면 서호마을.
마을 근처 오수천에도 살얼음이 얼었다. 장용주 씨는 어제 기계로 초벌 작업한 엿을 확인 중이다. 오늘은 바로 장 씨네 엿을 만드는 날.
직접 만든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든 후 형님댁 솥에 장작불 피워가며 엿물을 9~10시간 고이 고아낸 게 벌써 작년 봄·가을의 이야기. 추운 겨울이 되어야 엿이 굳어서 끊어지기에, 12월 중순 넘어 시작한 일은 하루도 쉬지 않고 오늘로 26일째다.

  작업장에 하나둘 모인 마을 사람은 장 씨까지 모두 일곱 명. 올해는 아프신 두 할머니를 대신해 이순자 씨와 베트남 청년 토 경따이 씨가 자리를 대신했다. 엿은 혼자 만들 수 없는 일이기에, 다섯 명이 자신의 엿을 하루씩 번갈아 만든다. 장 씨는 유난히 뜨거운 햇빛을 보며, ‘아무래도 오늘은 더욱 신경 쓸 일이 많겠네.’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꼼꼼한 자신의 기준에 부합할 엿을 만들기 위해 ‘더욱 힘을 쓰고 정신을 써야겠다.’는 태도로 마음을 다잡는다.

  “으?, 으?” 힘을 불어넣는 입소리가 첫 번째 방에서 들리면, 방 안은 이미 수증기로 가득한 상태. 네 사람이 둘씩 마주 앉아 엿을 늘이자, 한 덩어리였던 엿이 길게 늘어지더니, 영어 대문자 엔(N) 모양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긴 가래엿이 탄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두 사람 손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엿에 공기가 잘 들어가게 하는 것. 장 씨의 기술이 최고로 발휘된다.
  이후, 엿은 두 개의 방 사이를 잇는 벽에 뚫린 구멍을 통과하게 된다. 바로 옆방으로 엿이 들어간다는 걸 알리기 위해 원삼순 씨는 가끔 “똑, 똑, 똑.” 노크를 통해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두 번째 방에 앉아있던 이순임 씨가 일어나 “엿이 옵니다.”라고 말하며 긴 엿가락을 쭉 끌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엿이 왔네. 왔어.” 그 끝에 앉아있는 한옥순 씨와 김점남 씨가 엿의 도착을 반긴다. 한기에 굳은 엿을 “뚝. 뚝.” 일정한 크기로 끊어내 모양이 좋은 것을 따로 선별한다. 이제야 비로소 일 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탄생한 엿이 동그란 공기구멍과 곧은 모양을 자랑하며 편히 눕는다.
  이렇게 오전 작업이 끝나자 장 씨의 표정이 한결 환해진다. ‘자칫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엿의 표면이 까슬까슬해지진 않을지.’ ‘너무 무른 상태의 엿 덩어리를 더욱 굳혀야 하는 건 아닌지.’, 엿을 늘이는 가운데 제대로 풀리지 않아 톡톡 불거져 나온 부분을 살피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다. 20여 년 넘는 경력에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이건만, 매번 엿을 만들 때는 처음과 같은 설렘과 두근거림을 숨길 수 없다.

  이윽고 가득 쌓인 엿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상자에 조심스레 엿을 담을 때면 “콩가루 좀 주셔요.” “엿을 여기로 밀어줘요!” 서로 건네는 말들이 장터에 와있는 것 마냥 구성진 이야기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든다.
  쿨한 성격과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할머니들 덕분에, 뽀얀 자태에 분 바른 듯 콩가루를 묻힌 엿에는 좋은 기운이 듬뿍 담겨있다. 토 경따이 씨가 분홍색 보자기로 싸서 예쁘게 리본을 묶어내면 드디어 한 차례의 작업이 끝난다.

  “나는 외로울 시간이 없네, 심심할 틈이 없네~.” 축하하듯 즉석에서 작사·작곡한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엿은 시원한 보관 장소로 이동한다.
  이때 장 씨의 휴대폰으로 주문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장 씨네 엿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고 전화했을까.” 누군가가 건네는 말에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장 씨는 ‘따로 홍보를 안 했는데도, 많이들 찾아주시네.’ 참으로 신기한 생각이 들면서도, 엿에 들인 정성이 맛으로 나타나면서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크다.

  오늘이 있기까지 더 좋은 엿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순간순간의 정성을 다해온 장용주 씨. 다가올 명절, 효자 효녀로 소문난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을 기다리며,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소원을 정성스레 빌어본다.
접하기 쉬운 단맛이 아닌, 자연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만들어낸 은은한 단맛의 엿은, 이제 장 씨에게 지난날과 더불어 오늘과 내일의 시간까지 달콤하게 할 묘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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