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욱 야철장·환도장
칼과 철
취재 김아영 기자

  전통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양주시에 위치한 한정욱 장인(나이프(Knife) 갤러리 관장)의 작업장 안. 흙으로 만든 전통 사철제련로에서 붉은 불길이 솟아오른다. 그렇게 소나무 숯이 제련로를 달구길 14시간. 제련로 안은 사철이 펄펄 끓는 불덩이로 변해있다. 심장과 같은 이 불덩이가 검을 만드는 전통강철인 것이다.

  “우리 전통 검은 흙에서부터 시작해요. 해변에서 채취한 사철이 철로 바뀌는 거죠. 전혀 다른 성질이 되는 거예요.” 쇠를 내리는 장인을 칭하는 야철장과 검을 만드는 장인을 칭하는 환도장. 그는 드물게 이 두 가지 명칭을 다 가지고 있는 장인이다. 국내의 야철장이 전통제철 작업방식을 통해 추출한 강철로 검을 제작해야지만 전통 검이라 말할 수 있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검을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그건 백제에서 건너간 전통제철기술이었어요. 일본은 지금도 그때의 전통방식으로 철을 내려 검 장인에게 공급해 주고 있죠.” 전통제철 분야를 지원해 최고의 검을 만드는 일본과 달리, 우리의 뛰어난 제철기술이 사라진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는 그. 전통재료로 만든 ‘진짜 검’을 제작하기 위해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전국의 철생산지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찾은 감포 외 6곳의 해변에서 자석으로 모래를 일일이 훑어 순수한 사철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철을 강철로 만드는 다음 일이 남아있었다.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했지요. 황토와 백토로 제련로를 만들고 소나무 숯을 만드는데 까지는 성공했는데, 1회분의 사철투입량이 얼마인지, 소나무 숯을 얼만큼 넣어 얼마나 온도를 올려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검의 생명인 강하고 부러지지 않는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번 접고 두들겨 붙이는 단조와 접쇠작업이 필요한데, 온도가 맞지 않으면 이 작업을 할 수 없는 쇠가 나왔다. “그런데 재밌게도 재료 안에 해답이 다 있더라고요. ‘불이 참 아름답다.’라는 순간이 적절한 온도였지요.” 쇠와 숯도 마찬가지였다. 장인은 그 안에서 순간과 적절함을 찾을 수 있어야 했다.

  “이후에도 수만 번의 두드림과 물속에서의 담금질을 해 검신을 완성할 수 있지요.” 이런 전통사철제련과 전통도검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특허청에 등록해 2010년 특허를 받은 그. 2011년에는 무령왕릉에서 출토 된 환두대도 복원작업을 맡았다. 고집스레 한길만 걸어온 그이기에, 모든 재료는 대한민국 내에서, 또 모든 제작과정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전통방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제작지침대로 검을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쇠를 내리는 날, 많은 관계자 분들이 오셨어요. 이런 건 처음 봤다면서요.” 오랜 시간 홀로 전통제철과 도검 복원에 힘써온 그의 노력이 인정받는 순간. 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는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해 모든 작업과정을 담은 ‘칼과 철’이란 책을 출간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지금은 아들이 검 제작을 배우고 있지요.” 이를 위해서라도 전통기술과 현대생활용품 접목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그. 올해는 전통 검 제작과정 그대로 주방칼을 만들어 선보였다. 버선코처럼 칼끝이 올라간 한국전통 그대로의 디자인과 맑은 소리를 내는 칼은 국내 셰프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꿈이 있다면 검 장인을 키울 수 있는 학교와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그 외에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 나이프갤러리 02)735-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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