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없는 세상
글. 강명권

  12월 14일, 원봉공회 이사회가 있어 익산으로 향했다. 그동안 이사회 준비를 하느라 일주일간 포항지진현장에 가지 못했기에 이사회의를 마치고는 바로 포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11월 16일에 포항에 도착해 17일에 부스를 설치하고 이재민들에게 지원 사업을 한지 한 달이 되었다. 현장 상황과 교단의 상황을 판단하여 이번 주에 철수하기로 하고 포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출발하기 전까지 한숨도 못 자서 휴게소에서 한 시간만 잠을 청하자는 생각으로 운전석에 누웠는데 일어나보니 새벽 3시 30여 분이었다. 흥해교당 교무님에게 저녁에 간다고 연락을 해두었는데 알람소리도 못 듣고 차 속에서 7시간 동안 밤새 잠을 잔 것이다. 급한 마음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출발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15일에 지진이 났을 때도, 바로 내려가지 못했었다. 나는 재해가 났을 때 국내에서는 6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고, 늦어도 12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 이재민 지원 방안을 정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잡고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포항에 지진이 난 날에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 이 상태로 내려가면 오히려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노숙인 급식을 마치고는 8시부터 사무실 공간에서 무조건 잠을 청하였다. 9시 넘어서 공익복지부 효성 교무가 아무래도 포항 상황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연락을 했다. 그래도 몸이 힘들어서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이렇게 한다면 아침에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장비들은 챙기지 못하고 포항으로 향하였다.

  사실 이웃 종교나 단체들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아프다는 핑계로 아침에 출발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 늦게 도착할수록 이재민은 물론 부스 운영과 아울러 봉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몸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재난을 당한 이재민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재민들이 있다는 흥해읍 사무소 뒤쪽의 흥해실내체육관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다. 읍사무소 앞마당 현황부스에서는 포항시와 읍사무소 관계자들과 기자들에게 지진 피해 현황보고를 하고 있었고, 실내체육관에는 600여 명의 이재민들이 긴급 지원된 은박지 위에서 지진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나 한 사람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늦게 달려갈수록, 많은 이재민들은 더 많은 고통을 겪는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해 사람들과 서로 힘을 합쳐 지원을 한다면 한사람이라도 더 빨리 편안해질 수가 있기에, 내 몸 힘든 것은 잠시 내려놓고 살고자 한다. 바람은 늘 재해가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후원 | 우리은행 1005-202-256361 재단법인 원불교   문의 | 원봉공회 02)82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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