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소나무를 이기지 못합니다.
삭풍으로 으르고 차가운 눈으로 눌러도 꿈쩍 않고 버티기를 한 해 두 해 세 해…. 잎을 떨어뜨린 나무들이 잔가지 사이로 휘파람을 내며 두려움에 떨 때, 소나무는 밤새 으르렁 호랑이 소리를 지르며 맞섭니다. 가지 몇 개야 찢어지겠지만 물러서지 않으니 겨울마저 소나무 숲을 피해 달아납니다. 동물의 왕이 호랑이라면 나무의 왕은 단연 소나무죠.

  “할아버지, 왜 소나무가 밤새 울어요?”
  “거친 세상 버티는 게 어디 쉽겠냐.”
  “할아버지, 이젠 소나무 숲에서 폭포 소리가 들려요.”
  “스스로를 포기하는 거지.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거야.”

  해가 뜨면 소나무 숲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거친 것에는 거칠게 대항하지만, 순한 것에는 순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참 든든하죠. 그래서 아마, 옛 선비들은 소나무 언덕 아래 집을 짓고 절개와 지조를 지켜냈던 모양입니다.
  바위도 소나무를 이기지 못합니다.
깎아지른 벼랑에 씨앗 하나가 날아들더니 꿈쩍을 않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물도 부족하고 바람마저 거센 그곳에서 솔은 뿌리부터 내립니다. 조금씩, 조금씩 바위가 틈을 보일 때마다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 자리를 잡죠. 부족한 것은 참으면 되고, 거센 것은 버티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자기 모습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기름진 땅에 자리 잡은 솔씨가 어느새 아름드리 주춧돌이 되어 팔려가도, 겨우 아이 팔뚝만한 몸집으로 십 년 백 년을 버티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천하의 못난 소나무가 그렇게 몇백 년을 버텨 어느새 유아독존의 모습을 가집니다. 
 
  “할아버지, 저 소나무는 얼마나 더 살까요?”
  “아마 죽지 않을 거다.”
  “설마요. 그래도 생명인데.”
  “죽어서도 다시 사는 게 소나무란다.”

  비탈진 땅이면 비탈진 대로, 바람의 언덕이면 바람 부는 대로, 천년 바위 위에서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소나무가 있어 세상은 그렇게 강해지나 봅니다.
  소나무는 겨울이라야 그 기상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구어 자기를 숨길 때, 소나무는 홀로 그 푸르름을 자랑하죠. 거친 세상일수록 그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인간사인들 어디 거칠지 않겠습니까.
  내 땅이 박토라고, 내 땅이 비탈이라고, 내 땅이 물가라고 불평해도 그 땅은 결국 내 자리입니다. 지금 세월이 겨울이라고, 지금 세월이 암흑이라고, 지금 세월이 상처뿐이라고 해도 그 세월마저 결국 스스로 감당해야 할 시간입니다. 
 
  일희일비 일장일단에 속지 마시게요. 어쩜, 당신의 삶이 소나무와 같은지도 모릅니다. 새해에는 더욱 정신 번쩍 차리고 독수리의 부리처럼 매섭게 세상을 내려다보시게요. 파란 솔바람 한 점, 마음에 늘 담고 사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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