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막상 현실에서는 약자 한 사람을 돕는 것조차 쉽지 않다.
글. 강명권

 급식 물품을 구하기 위해 이른 새벽 서울역을 지날 때면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할 정도로 날이 차갑다. 일상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바람이 덜 부는 광장 모서리 안쪽에 ‘그들’이 모여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디 그들뿐인가. 계단이나 구석진 곳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분들도 있다. ‘얼마나 추울까…. 술을 먹지 않을 수가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 처리해야 할 과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눈앞에 하얗게 떠다니는 듯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65일 내내 거리에서 맨몸으로 견디는 그들의 고달프고 힘겨운 삶을 늘 지켜보면서도, 인정(人情)에만 그칠 뿐 조금의 실질적인 도움도 줄 수 없음에 머리와 온 가슴으로 안타까움을 외쳐본다.

 우리 ‘은혜고시원’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고시원에서 지내는 한 젊은 노숙인이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가족이 있음에도 노숙 생활을 하다가 고시원에 들어왔다. 그간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많이 당했는지, 대인기피증이 무척 심하다. 밥을 먹을 때도 혼자 서서 먹어야만 하고, 누군가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다가가도 마치 사나운 개를 만난 것처럼 도망을 간다. 다른 방 안일지라도 누가 있으면 그 사람이 나갈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 서 있곤 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고시원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다른 빈방에 세를 줘야 하는데,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문 밖에 서 있는 이 분을 보고는 불쾌감을 표하며 가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다못해 건물주는 “이 분을 다른 곳에 보내든지, 고시원 사업 전체를 정리하든지, 남은 빈방을 다 쓰든지 하라.”고 말했다.

 빈방을 다 쓰는 건 버거운 상태고,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면 45여 명의 고시원 식구들, 그 중 장애인을 비롯해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또 막상 그 분만 내보내려 해도 “여기서 나가면 더 이상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가족들의 말이 떠올라 그조차 결코 수월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어쩌겠나.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보듬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마냥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5년 계약 기간 동안 2년마다 월세를 올릴 수 있는 계약 조항이 있어 지난 번 계약 갱신 때 세를 100만원 인상했던 바 있다. 다시 2년이 다가오고 있다. 건물주와 조금 친해진 덕분에 지난 갱신 때 “당분간은 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방도 나가지 않는데다 특정 층을 임차한 우리가 본인의 입맛과 맞지 않는 노숙인들을 받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건물주의 심정을 이해는 하기에 잘 봐달라고 사정도 하면서, 건물 공간을 잘 사용하는 방안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원(願)을 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약자 한 사람을 돕는 것조차 쉽지 않다. 대종사님께서는 일체중생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겠다고 선언하셨는데, 그 노를 붙잡아 운전해야 할 나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찌됐든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게 나의 일이다. ‘길리언님들 잘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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