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받을 줄 모르던 어른
글. 이혜윤 신촌교당

 출근길에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이 있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지켜보시는 분이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싸늘한 표정과 경계하는 듯한 눈빛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서 곧 머쓱해졌다. 두세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인사를 하지 않는 게 좋을까?’ 하며 잠시 경계에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사는 나의 몫, 이를 받고 안 받고는 그 어르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얼마 만에 마침내 어르신이 한마디를 하셨다.

 “왜, 나한테 인사를 하세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으나 평소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우리 동네 어르신이시잖아요. 당연히 인사드려야지요.”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다만 어르신의 경계하시던 눈빛은 풀어진 게 분명했다.

 그 후 얼마가 지난 어느 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잘 갔다 와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세탁소 앞 이층집 테라스에 낯익은 분이 서 계셨다. 인사를 받지 않던 어르신이셨다.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손까지 흔드신다. 나도 활짝 웃으며 평소보다 한 톤 높여 인사드렸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바라보기
글. 허석 교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면서 저녁 메뉴로 나왔던 빵 두 조각과 우유를 먹지 못하고 가져왔다. 공부하다가 배고플 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 온 건데, 먹을 것을 보니 바로 먹고 싶어진다.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니 지금 먹어서 좋을 것도 없거니와, 공부하다가도 이걸 먹고 나면 잠잘 때 속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빵과 우유를 책상 멀리 놓았다.

 ‘자리에 앉아 뭐라도 할까.’ 하는 생각으로 책상으로 향하다 생각해보니, 지금 책상 앞에 앉아봤자 소화한답시고 별 중요하지 않은 인터넷 검색이나 하다 말겠다 싶은 생각과, 지금 서둘러 뭘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에서 나온 것임을 바라보게 되었다.

 문득 평소에 존경하던 스승님 생각이 났다. 스승님은 식사를 마치고 늘 산책을 하셨다. 나도 오늘은 피곤한 상태에서 바로 자리에 앉는 것이 소화에 좋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산책을 가기로 한다.

 산책을 하면서 마음도 추스리고 몸에 긴장된 부분도 체크하며,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캠퍼스 관광을 하고 방에 돌아왔다. 마음을 계속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서인지, 저녁을 먹자마자 방에 들어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담담함과 온전함이 느껴진다.


스승님의 가르침과 우표의 천공
글. 차명섭 안암교당

 수요마음공부방에서 지도 교무님을 모시고 <정전> 강의를 듣다가 마음이 환해졌다. 
 
 아무리 시대가 밝아졌다해도 스승님 덕분에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편하게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저런 인상들이 스쳐가다 문득 ‘스승님의 가르침은 마치 우표의 천공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종이를 일(一)자로 찢을 때 아무 도구나 준비 없이 찢으면 반듯하게 찢기도 어렵고 힘도 더 든다. 그런데 우표는 찢을 선을 따라 천공이 나 있어서 따라 뜯기가 편할 뿐더러 누구나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반듯하게 뜯을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천공이 비뚤게 뚫린 우표는 아무리 주의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비뚤게 찢어질 것이다.

 그와 같이 스승님들께서 미리 하나씩 내놓으신 가르침을 따라서 힘을 들이면, 제 아무리 어려운 진리라도 ‘투두두둑’ 하고 쉽고 바르게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스승님께 신(信)의 맥을 대고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혼의 긴 여정 속에서 마침내 정법 회상을 만났으니 큰 공부 큰 서원을 이 생에 반드시 이루겠노라 다짐한다.


자신을 챙기자
글. 나지영 원광여자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 교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차분히 앉아 과제를 하는데 문득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느껴졌다. 동아리 문집, 학생회 일, 자기소개서 쓰기… 모든 게 하기 싫어진다.

 2학년 말이 되니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시간은 한정적이다. 한 가지씩 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게다가 요즘은 내신에 중요한 교과 수행평가 기간이다. 원래 힘들어도 잘 안 우는 성격인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우는 와중에도 손은 컴퓨터 타자를 치고 있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할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는 나와, 그 일들을 하겠다고 한 과거의 내가 너무 밉다.

 울음을 그치고 멈춰서 돌아보니 예전에 한 예비교무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할만 했구나 하고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동시에 바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학교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해야 할 일과 신경 써야 할 일이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씩씩하게 하나하나씩 해 나가보려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기도 하고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시에 나 자신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기로 했다. 경계 속에서도 나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낀 하루였다.


나를 돕는 마음씨
글. 박도심 신림교당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홍일심 원불교여성회 회장님의 전화다. 오늘 문향재에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일손이 모자란다는 말씀을 하신다.

 순간, ‘오늘 날씨가 무척 추운데….’ 하고서 마음의 핑곗거리를 찾는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막상 그곳에 나가 몸을 움직인다면 마냥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일손이 필요하다니 내가 가서 도와야겠구나.’ 하고서, 선뜻 “네! 오후에 들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약속을 하였다.

 시간이 있으면 나의 복 장만에 투자하자고 평소에 생각했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진급하는 나날이 되도록 사은님 전에 심고도 올리고 있다. 아침마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우며 오늘 하루도 사은님의 은혜 속에서 살자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망아진아현 위공반자성(忘我眞我現 爲公反自成)’이라. 나를 잊은 자리에서 참된 나를 나타내고, 공을 위하는 데서 도리어 자기를 이루나니…. 다시 한번 더 크게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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