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심에 얽매이면 큰 공심이 망가진다

큰 공심이어야 출가위

 우리는 늘 공심, 공심을 이야기 합니다. 정말로 세상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공익정신이 있고, 공익정신에 의해 살아갑니다.

 사실 원불교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기관이나 교당, 그리고 자신의 일 등 가까운 주변 환경에 대한 공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단을 위한 공심, 교단의 큰 틀에서 바라보는 대공심은 과연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 그 부분을 살펴보아서 ‘작은 공심 때문에 큰 공심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꼭 해야 합니다.

 만약 작은 공심에 얽매여서 교단의 큰 공심이 망가지거나 무너진다면, 그 공심은 원만한 공심이 아닙니다. 작은 공심을 수정하여 대공심으로 바꾸어가야 대인이 될 수 있고 출가위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출가위의 첫 걸음은 ‘나의 집’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작은 공심, 자기 지역을 넘어선 공심을 갖추어야 진정한 출가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교단의 대의에 언제든지 합력 할 수 있는 마음 자세입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은 수많은 악기의 소리가 어디서 잘 나고 잘 안 나는지를 모르지만, 지휘자는 그것을 알고 서로 다른 각각의 소리를 잘 조화시켜 하나의 좋은 음악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도 교단의 지휘자, 총부의 대의와 큰 공심에 우선 합력해야 더 좋은 원불교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102. 11. 04 중앙교의회)


안심이 곧 극락이다

 어려울 때 꼭 도와주는 분들이 생기는 걸 보고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합니다. 그게 모두 알고 보면 지혜로운 분들이 도와주시는 덕분이죠. 원불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만들기 위해서 저희들도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이에 합력해주면서 교도 역할을 열심히 해주시는 분들이 매우 큰 힘이 됩니다.

 어떤 일에 도움도 주고, 역할을 하려고 하면 일단은 자기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를 통해 안심(安心)을 해야 하지요. 우리는 부부 관계, 형제 관계, 동료 관계 등 온통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관계를 잘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감사생활을 통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상대방에게서 은혜를 발견할 줄 알아야 나의 마음이 늘 편안하고 좋아집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안심이 곧 극락과 천국이지, 그 외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혹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나진 않나요? 그 마음을 편안하게, 다시 한 번 평화롭게 만드는 그것이 안심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없어집니다. 누구와도 상생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야 성공을 볼 수 있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원불교에서는 불공(佛供)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 바라는 바를 빌며 공을 들이듯이, 현재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을 들여야 합니다. (102. 10. 20 강태원 교도 부부 접견)


분별하는 마음과 본래 마음을 다 깨달아야

 마음을 잘 읽어야 합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해서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치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잘 읽으면 즉시 본래 마음을 찾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의 상태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세상은 이렇고, 정치는 저렇고, 책을 보니 그렇더라.’ 하는 등 밖으로 빛을 많이 비추며 살아갑니다. 밖으로 나가기 이전의 빛을 내 안으로 비추는 것, 그걸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

 마음을 읽어보셨나요? 읽어보니 그 마음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순간순간 마음을 읽어보면서 본래 마음을 찾고 또 찾으면서 ‘마음이 어떻게 생겼더라.’는 것을 아는 것, 그때를 ‘초견성’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기 이전의 본래 마음만 읽는데 그치면 마음을 절반만 아는 것입니다. 마음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여러 가지 분별심을 내는 자기 분별심의 줄기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기분이 더 나쁘다거나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 뭔가가 있습니다. 인과의 원리에 따라 습관들인 심법과 심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길들여진 자아(습관심)와 길들여지지 않은 자아(본래 마음) 두 가지를 다 잘 알아야 합니다. 분별하는 마음과 본래의 마음을 모두 깨달아야 ‘대원견성’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두 마음을 다 읽어야 마음을 완전히 읽은 사람입니다. (102. 10. 20 합동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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