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한길 걸어온 랍빠 장인
강희영 서울시 금손 장인
취재. 김아영 객원기자


‘탱크 빼고 못 만드는 게 없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을지로, 청계천 제조업계. 이곳에서도 유달리 유명한 강희영 장인(영랍빠, 잠실교당)이 영랍빠를 운영해 온 지도 38년이 되었다. 그런 그가 을지로4가 청계천 제조업계의 전설적인 전문가를 뽑아 업적을 기리는 서울시 금손 장인에 선정됐다.

못 만드는 것 없다는 이곳

 ‘랍빠’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단어이지만 을지로 미싱거리의 간판에서는 쉽사리 이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일본말과 영어가 합쳐진 거예요. 원단을 재봉질 할 때 천이 잘 말려 들어가게 하는 재봉틀의 금속 부품을 뜻하죠.” 봉제 공장의 필수 부품으로, 옷과 가방을 만들려면 원단에 맞는 랍빠(표준어 홀더)를 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한 평 반의 자그마한 이곳에서, 그는 수만 수천 종류의 랍빠를 만들며 대한민국 봉제계를 이끌어 왔다.

 “서울시에서 장인으로 선정하겠다고 왔을 때 5번이나 거절했어요. 아직까지 미숙한 거 같아서요.” 80년대부터 이곳에 문을 열고 랍빠를 만든 지도 벌써 38년. 하지만 그 역시 손님을 맞이하는 게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던 적이 있었단다. 원단의 성격과 두께에 따라 수작업으로 금속을 접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손님이 어떤 천을 들고 올지 걱정부터 되었던 것이다. “초창기에 굉장히 어려운 주문 하나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이틀 밤을 새워도 해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 걱정에, 꿈속에서까지도 랍빠를 접었다는 그. 우여곡절 끝에 날짜에 맞춰 나름 고심해 만든 물건을 손님에게 전해주었고, 결국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걱정이 많았는데 ‘물건이 깨끗하게 잘 나왔다.’며 손님께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보람된 순간이었지요.” 기술연마를 위해 매일 밤 11~12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던 그에게 그 말은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했다는데…. 원서를 찾아가며 공부하고, 한 가지 제품으로는 모자라 두세 개를 제작해 손님에게 전해주기를 여러 번. 공단, 실크, 레이온 원단 하나하나에 맞춰서 랍빠를 잘 만든다는 소문이 난 건 이 때 즈음이었다. 전국에 걸쳐 단골이 생기고, 제자도 생겼다.

 “제자가 15년 동안 배우고 독립했어요. 오랜 시간 배웠는데, 독립 후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날 원망할까 싶어서 제가 아는 모든 걸 알려주었지요.” 오히려 그들이 랍빠의 엘리트라며 웃어 보이는 그. “너네들도 사장 소리 들어봐야지.”라며 독립을 먼저 제안한 것도 그였단다. “얼마 전에는 가르쳐 준 것에서 더 개발해놨더라고요. 당연히 기분이 좋지요. 이제 앞으로는 그들이 랍빠 분야를 잘 이끌어 나가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그의 가게 문을 두드린다. 마침 부산의 오랜 단골이 원단을 들고 왔다.

 “물건을 써보고 안 되면 전화주세요. 제가 100% 잘 나올 때까지 만들어 드리니까요.” “사장님 안 계시면 안 돼요. 어디 가지 마세요.” 다정한 대화가 오간다. 
 

행복한 삶이란 더불어!

 기술만큼은 욕심 부리며 끈질기게 노력한 그. 하지만 베푸는 것엔 늘 너그러웠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도, 특허 신청을 내지 않고 누구나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 “함께 잘 살아야지 혼자 벌겠다고 남에게 못되게 하는 건 좋지 않다.”는 그의 깊은 생각이 드러난다. 

 “다 아내에게서 배운 거예요. 아내는 저보다도 제 형제들을 더 잘 챙긴 사람이죠.” 봉사활동을 하며 베풀고 살아온 아내(최삼님, 잠실교당)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 볼까?”란 마음이 생겼다는 그. 아내를 통해 움켜줬던 욕심을 비워낼 수 있었던 것이다. “교당 청년들을 집으로 다 불러서 밥을 해 먹인 적도 많아요. 그러고 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지금도 그때 청년들이 다 ‘아버지, 아버지’ 한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는 그. “이것이 오랫동안 랍빠를 만들고, 주위에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라고도 말한다.

 “일로 자부심도 얻고, 아내를 통해 나눔도 알았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지요. 서울시 금손요? 하하. 쑥스럽지만 한 분야만 해온 보람을 느낍니다.” 을지로4가의 미싱거리. 수많은 변화 속, 변하지 않을 그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 이곳에서 무한한 빛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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