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부드러운 위로

고구마를 구울 때 함께 먹고 싶은 사람들을 오롯이 생각하며,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로를 같이 나누고 싶다.

글. 장정아

 가로로 누운 드럼통, 신기한 철제 서랍, 하늘로 뻗은 굴뚝….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거리에 나타나는 풍경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고구마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어릴 적에는 엄마에게 조르면 흰 종이봉투에 든 군고구마를 얻을 수 있곤 했다. 또 지방의 작은 터미널 근처에 살던 어린 시절, 아침 운동을 가셨던 아빠가 가끔 터미널 앞의 장수들에게 군고구마나 군밤 같은 것들을 사오셨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 청소년기에는 군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이 희미하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고 수도권의 도시로 이사를 왔고,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은 변화들을 겪었다. 모든 가족이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아빠는 엄마와 언니와 나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나는 엄마에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망설이게 되었다.

 어느새 엄마는 두 딸이 바라는 것 중에서 가장 저렴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갖고 싶은 것보다는 필요한 것을, 제값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깎아서 사도록 교육을 하고, 조금 먹어도 맛있게 먹기보다는 적은 돈으로 더 많이 먹을 방법을 늘 고민했다. 엄마에게는 군고구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 먹는 군고구마는 비쌌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근처 고물상에서 못 쓸만한 프라이팬을 얻어오고, 시장에서 한 무더기에 몇천 원 밖에 안 하는 고구마를 사 왔다. 왠지 궁상맞아 보여 ‘이런 수고를 하느니 사 먹는 것이 낫지 않겠냐.’라고 엄마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엄마는 TV에서 본 방법이라며 대답을 어물쩍 넘겼다. 하지만, 그때 먹은 군고구마는 정말 맛있었다.

 그 후 엄마는 거의 매년 겨울마다 쓰지 못할 만한 프라이팬에 고구마를 구워줬다. 이따금 구운 감자도 시도했다. 먹성이 좋은 두 딸은 엄마가 구워준 군고구마와 구운 감자들을 빠르게 해치우곤 했다.

 나는 올해 서른한 살이 되었다. 엄마는 작년부터 몸이 좋지 않아 1년째 병원에 계신다. 작년 겨울, 엄마는 군고구마를 굽지 못했고 나 역시도 사 먹지 않았다. 하지만 쌀쌀해지는 날씨를 피부에 느끼니 역시나 군고구마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 타서 바닥이 검어진 프라이팬을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고구마가 익었는지 확인하며 뒤집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정작 마음 놓고 고구마를 먹을 땐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올해는 시장에서 고구마를 사다가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구워보려고 한다. 고구마를 구울 때 함께 먹고 싶은 사람들을 오롯이 생각하며,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로를 같이 나누고 싶다.

 

군고구마 먹어본 적 있냐?

선임은 “어떻게  군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냐.”며 근무 시간 내내
군고구마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글. 장성제


 군고구마하면 호일에 돌돌 싸 모닥불 같은 곳에 집어넣어 먹거나,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장수가 드럼통에서 꺼내주는 따끈따끈한 노랗고 검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한겨울에는 그 뜨끈뜨끈한 군고구마가 정말 맛있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군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무슨 군고구마의 추억이냐? 때는 2016년 매우 추운 겨울, 대한민국 최북단이라는 강원도 고성. 난 이제 막 입대하여 자대로 전입 온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등병이었고, 뒤뚱뒤뚱 걸을 정도로 옷을 껴입고 선임과 야간 근무를 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추위를 어떻게 견뎠는지 정말 대견, 아니 좀 끔찍할 정도다. 너무 춥고 정말 추운데 발에서 자꾸 땀이 나 양말이 젖는 바람에 발가락은 저릿저릿했으며, ‘바람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서럽게 칼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추위에 몸을 덜덜 떨던 날이었다. 이등병이기 때문에 긴장 속에서 주변에 누가 오는지 고개를 돌려가며 나름 열심히 근무를 서고 있었다. ‘얼른 끝나라, 얼른 끝나라….’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뜬금없이 선임이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군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고, 선임은 “어떻게 군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없냐.”며 근무 시간 내내 군고구마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실 군고구마에 대한 얘기만 계속 들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 선임이 어찌나 말을 잘, 아니 그리 맛있게 하는지, 나는 이미 상상 속에서 군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군고구마는 이렇게 추운 날 야외에서 먹어야 하고, 그 뜨끈뜨끈한 것 위에 김치 하나를 올려 먹으면 그게 그렇게 맛있다.”며 말이다.

 그렇게 선임과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군고구마 이야기에 빠졌고, 선임에게 “휴가 나가면 꼭 한 번 먹어보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막상 휴가를 나가면 군고구마의 ‘ㄱ’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날은 다시 추워졌고 나의 옆에는 내 눈치를 보느라 열심히 경계하는 척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는 후임이 생겼다. 쭈뼛쭈뼛 서 있는 후임에게 나는 1년 전으로 돌아가 “군고구마 먹어본 적 있냐?”는 질문을 하였고, 후임의 “맛있느냐.”는 질문에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나는 근무 때마다 후임들에게 군고구마 얘기를 하다가 전역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도 추위에 고생하는 군인 친구들이 안쓰럽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 내가 ‘군고구마’ 이야기로 웃음을 되찾곤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뭔가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있다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생길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그 때를 생각하며 사회에서 열심히 부딪혀가며 살아야겠다. 파이팅!


군고구마 먹고 간 돌배

강아지는 고구마를 게눈 감추듯이 맛있게 싹 비워냈고,
나는 실망감에 울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글. 김민경


 때는 바야흐로 2011년 늦가을이었다. 남편과 연애 중이었던 당시, 그는 충남 청원에 있는 전원주택에 기거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낮엔 햇살이 포근하다 해도 늦가을 시골의 밤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싸늘해서 자연스레 따뜻한 무릎담요와 차 한 잔을 그리워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느 주말, 나는 알루미늄 호일과 호박고구마를 사서 그의 집에 방문했다.  맛있게 익힌 고구마를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까서 호호 불어 주면 그걸 조심스레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낭만적인 상상을 실현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남편은 고구마와 나를 몹시도 반기며 벽난로에 불을 지피더니 호일로 둘러싼 고구마를 난로에 집어넣었다. 그 때까지는 그 모습이 제법 능숙하여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낭만적인 상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윽고 집안에 온통 매캐한 연기가 퍼진 것이다. 괜찮은 거 맞냐고 초조해하며 묻는 내 앞에서 남자친구는 태연자약하게 “괜찮아. 맛있게 잘 되어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할 뿐이었다.

 호흡곤란이 올 지경에 처한 나는 결국 추위를 잊은 채 앞마당과 연결된 넓은 유리문을 열어젖히고 “고구마가 다 익은 것 같으니 얼른 꺼내보자.”고 요구했다. 그 난리 통에서도 화염 속 고구마는 잘만 익었고, 제법 맛있어 보였다.

 목장갑을 끼고 깐 고구마를 접시에 얹어놓고 식히려 놔두었다. 그런데 연기가 빠져 살 만해져 ‘고구마 좀 먹어보자.’ 할 즈음, 황당하게도 열어둔 유리문 쪽에서 웬 누런색 강아지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몸통이 지저분한 강아지는 몹시도 굶주린 듯이 킁킁거리면서 먹을 것을 찾았다. 먹을 거라곤 방금 고생하며 얻은 군고구마뿐이었다. 결국 강아지는 고구마를 게눈 감추듯이 맛있게 싹 비워냈고, 나는 실망감에 울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다시 또 그 연기를 참아가며 군고구마를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사이, 남편은 강아지 몸에 진드기가 붙어있는지 꼼꼼히 확인을 하더니 씻기고 말려주는 자상함까지 보였다. 그쯤 되자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을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인연법 아닌가 싶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에 따라 자연 그대로 돌아간 것 아닐까.’란 생각과, 보시하는 공덕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되었고, 남자친구가 기꺼이 보시하는 마음을 내어 준 것이 자못 기뻤다.

 강아지가 사람을 잘 따르는 걸로 봐서는 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날씨가 춥고 밤이 깊어지는 상황이었기에 일단 하룻밤 재우기로 했다. 우리가 키우거나 임시로 데리고 있어야 할 수도 있으니 ‘돌배’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색깔이 누르스름하고 얼굴 모양이 말 그대로 옛날 돌배 모양이라 딱 어울렸다.

 다음날 아침 전화로 강아지의 소식을 물었더니 그 참, 돌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고 했다. 군고구마만 날름 먹고 사라진 돌배가 다시 얄미워졌다. 그 이후로 군고구마 먹을 생각을 미처 해 본 적이 없었다. 올 겨울에는 길거리에서 파는 군고구마라도 한 번 먹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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