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 뿐인 구두, 수제화 공방
명장의 기술로 최고를 만들다
취재. 이현경 기자 

 ‘또각. 또각. 또각.’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구두 소리가 꽤 일정하다. 이곳, 성수역 1번 출구 앞 수제화 공방에서 명장이 만들어내는 구두 소리로 거리는 번화해진다.

 오전 10시 쯤, 포스터 하나로 수제화 공방임을 알리는 이곳에 수제화 명장 정영수 씨가 출근한다. ‘드르륵.’ 하고 창문을 여니, 때마침 2호선 지하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그럼에도 환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구두에 많이 쓰이는 화학제품 때문이다.

 선반에 진열된 라스트, 둘둘 말린 가죽들, 여러 가지 기계와 작은 도구들까지. 조용할 것 같은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으면 많은 소리가 오간다. 잠깐 빈틈이 생기려는 찰나에 여지없이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이번 주 안으로 구두가 완성될까요?” 설렘 가득한 손님의 질문에 정 씨의 목소리가 웃음과 섞인다. “네, 그럼요.” 쉽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여유롭지만은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정 씨가 누구던가. 대기업 회장님 구두부터 장애인 의료화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명실상부 40여 년 경력의 ‘명장’이 아니던가. 손님은 급기야 사실은 공방 근처라며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뚝.’ 하고 끊긴 전화에 한순간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야 제자가 사 준 앞치마를 입고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건 자신과 구두뿐인 듯, 그가 종이 패턴과 가죽을 맞대더니 이내 ‘쓱, 쓱, 쓱.’ 갑피용 칼로 가죽을 자른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날카로운 소리가 짧게 가로지른다. 자칫 반짝거리는 칼날에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그가 불쑥 일어서더니 전기 열풍기를 집는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가죽의 주름을 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가죽에 테이프를 꾹꾹 눌러 붙인다. 그다음 여분의 가죽을 안쪽으로 접어서 ‘탕, 탕, 탕.’ 낮은 망치질을 한다. 그 사이 시간은 큰 걸음을 지나갔다.
그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작업을 하는 것도 다반사다. 재봉틀 앞에서 손과 다리를 움직이며 리듬을 타듯 가죽과 하나가 되더니 이내 “이야….” 하며 탄식과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온 정성을 쏟아부은 후 찾아오는 잠깐의 쉼표인 것이다.

 이때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손님이 찾아왔다. 그를 보자마자 짧은 인사에 긴 칭찬을 늘어놓는다. “아버지가 평소 구두를 잘 안 신으시는데, 운동화보다 편하다고 좋아하세요. 출장 때도 선생님 구두를 신고 가실 정도라니까요.” 이에 정 명장이 문득 지난 손님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다리 수술만 8번 하신 분의 구두도 제가 맞춰 드렸는걸요. 수술하실 때마다 달라지는 다리 길이에 맞춰 구두를 만들어 드렸는데, 골반이 교정되면서 정말 편하고 좋다고 그러셨죠.”

 그도 그럴 것이 새 구두를 개발할 때마다 생기는 샘플용 구두 한 짝을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들의 불편한 이동을 돕기 위해 차량 운전까지 직접 했던 그이기에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구두에는 멋은 기본이요, 가볍고 편한 착화감을 주는 밑바탕에는 대나무를 조각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한의학 공부를 하고 외국의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한 경력까지 오롯이 함께 자리하기 때문이다.

 손님과 즐거운 대화도 잠시, 오늘 주문한 라스트(신발틀)를 찾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근거리에 위치한 가게에 가니, 그의 오랜 동료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반긴다.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일등이라니까.” 라며 방금 나온 라스트를 그에게 건넨다. 물건을 서로 주고받기가 무섭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만들 새 구두에 대한 회의를 시작한다. 진지한 이야기의 마무리는 역시나 정 명장에 대한 칭찬. “실력으로는 최고라고 인정하죠.” 라고 말하며 그들은 다시 또 새로운 구두를 약속한다.

 밖을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밤이 길어진 계절, 그는 길을 걸으며 수제화 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1970년대 명동 시대를 거쳐 온 구두 장인들은 이제야 사람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앞으로 젊은 기술자의 양성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구두 공장들은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그의 제자들이 방문했다. 배운 지 1년 차 되는 제자는 그의 작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또 다른 제자 박종오 씨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 돌이켜 읊는다. “선생님께서 처음에 ‘질’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죠? 솔질, 붓질, 칼질…. 그리고 정리 정돈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요.” 정 명장은 제자들을 보며 젊은 구두 장인을 길러내고 싶은 소망을 더욱 키운다. ‘정영수 명장 수제화 아카데미’를 통해 길러진 이들이 만든 보물같은 구두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날을 다시금 꿈꾸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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