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생·대,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역동적 교단

글. 이환욱 사회학 박사

 10년 가까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 온 후배가 내게 찾아와 투자를 요청했다.
 “제가 가진 돈은 일찌감치 다 집어넣었고, 재력 있는 지인들한테도 이미 한두 번씩은 손을 벌린 적이 있어서 더 이상 부탁할 곳이 없네요.” 그러고는 말릴 틈도 없이 자기 사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나는 간간히 맞장구를 치면서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고객이 찾지 않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에 관심을 가질 투자자는 없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생각을 전했다. “사회적 기업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곤 해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나 기부로 운영되는 자선기관은 아니잖아. 그렇다면 목적의 순수성과 상관없이 적정 수준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문을 닫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물론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지원책을 논의하면서 슬쩍 던져본 뼈있는 농담이었다.

 모든 조직의 제1 목표는 ‘생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꿔 말하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확보’다. 원기 100년대의 들머리에서 다시 불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라는 화두를 거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수십 년간 정체 상태인 교화현실도 뼈아프지만 사실 더 큰 걱정은 전망의 부재에 있다. 과거의 실패는 지침이 되고, 현재의 실패는 경험이 된다. 그러나 미래의 실패에 대한 예감은 희망의 소멸로 귀결될 뿐이다. 요컨대 사회적 기업이든 교단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대응 전략을 가동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내·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이런 조언을 하고나면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다. 미증유의 대격변(pandemonium) 시기에 어떤 종단, 정부, 기업, 학자가 자신 있게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단 말인가. 혼란스러운 전환기에 단 하나의 걱정을 꼽으라면 변화에 적응하는 에너지 즉, ‘역동성’의 상실일 것이다.

 새 회상을 창립하며 조선불교의 혁신을 천명했던 소태산의 담대함을 기억하자. 혁신은 누구에게 떠밀려서 하는 피동적 행위가 아니다. 절박함을 참지 못해 터져 나오는 필사의 몸부림이다. 또한 혁신은 기존의 틀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하게 밖으로 눈을 돌려 대안을 모색하는 정신적 기예(技藝)이다. 이제 혁신의 대상은 낙후된 ‘조선불교’에서 박제화 된 ‘종교’ 자체로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과연 우리는 ‘신생의 창조력으로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후발의 미숙함을 핑계 삼아 기성 체제로 편입하려는 것인가.’ 돌이켜 볼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라는 열쇳말을 통해 오늘날 교단의 혁신 방향을 찾아보자.

① 시대화: 겸용(兼容)의 닻을 내려 부유하는 마음들을 결속하자.
겸용이란 넓은 도량과 깊은 통찰로 상생 혹은 종합을 생성하는 덕성을 뜻한다. 빈곤과 속박을 자초한 관념문화와 소외와 야만 상태에 빠져 버린 물신문화. 이 극단을 넘어서 바야흐로 정신과 물질을 아우르는 이상적 문명이 움트고 있다. 이는 ‘병행과 병진’이 삶의 원리가 되는 융복합사회의 토양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종교가 정신의 파수꾼 역할에서 벗어나 자연-기술-인간이 어우러지는 개합(開合)의 논리를 제안할 순 없을까? 종교와 사회의 공간적·심리적 경계를 허물고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선(善)의 씨앗을 뿌려보면 어떨까? 출가-재가, 총부-지방의 역할과 책임을 개방하고 자율 증식하는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하면서 혼종(hybrid)과 횡단(crossover)의 시대정신을 포용하는 교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② 생활화: 결실 있는 종교 생활로 교법의 실용성을 확인하자.
합리와 실질을 숭상하는 우리 공부법은 생활 속에서 차근차근 다져가는 방식을 권한다. 그런데도 교법과 생활의 직통길보다 우회로를 찾는 데 몰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미 스승님께서 번다한 경서와 수행법을 간이하게 정리해 주셨거늘, 다시 외부의 이론과 권위에 기대어 교법을 바라보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마음을 내어 자꾸 찾아보고 실행하고 문답해야 한다. 혹자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우리 일기법이 너무 복잡하다고 불평한다. 일산교당에서는 ‘한 줄 일기 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소태산 마음학교’의 도움을 받아 예쁘게 디자인한 한 달짜리 일기장을 배포하고, 이동할 때도 쓸 수 있도록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그리고 법회 때는 감사릴레이 시간을 고정 배치해 매주 감사 생활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있다. 많은 교도님들이 동참해 서로 북돋우며 마음공부의 열매를 맺고 있다. 변화된 환경과 의식에 맞춰 생활과 교법을 잇는 시도를 자꾸 해보자. 그러면 익숙해진다.
③ 대중화: 일방적 계몽을 지양하고 감화력을 발휘하자.
소태산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대중과의 접점을 최대한 넓혀 더 많은 이들에게 영원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소태산은 구제의 대상인 대중의 어리석음을 탓하기보다 그들을 헤아리고 존중하며 유익을 주고자 했다. 대중과 마음으로 만나려면 그들이 다가올 수 있도록 매력을 드러내야 한다. 소위 ‘상류층’ 인사들이 사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일리는 있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회사가 힘들면 애들을 자르면 돼.” 이렇게 툭 던지는 말 속에는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사람들의 동조를 얻지 못하고 외로운 ‘맘몬(Mammon)’이 되어간다. 반면 종교는 대자대비의 온후함으로 만물의 의지처가 될 수 있다. 결국 대중화의 성공 여부는 공감과 위로를 통한 감화력에 달려 있다. 나이, 성별, 직업, 지역, 건강, 계층, 인종, 취향 등에 따라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대중은 흔쾌히 교법의 품에 안길 것이다.

 

시대화,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가?
알. 쓸. 신. 마 -알면 알수록 쓸모 많은 신비한 마음공부-

 글. 최성의 원불교청년회 부회장

 글의 제목에서 표절의 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표절이 아니고, 벤치마킹이다.
오래된 책장을 펼치며 글을 시작한다.

 (전략) 오랫동안 청년교화의 흥망을 지켜본 나는 ‘지금은 사람을 발견하고 이야기할 때.’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제는 자기를 드러내기에 목마른 시대다. 특히 청년의 경우 그 갈증은 더 심하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 하나, 청년교화 부활의 핵심이요, 내 삶의 청년교화에 대한 숫자, ‘24, 12, 6, 3, 1’이 ∞로 수렴할 수 있는 길이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할 것이다. 4년 전 <원광>에 기고했던 ‘청년교화에 대한 단상’의 마지막 단락이다. 기고했던 글에 대한 A/S를 할 줄이야…. 지금도 청년교화에 대한 고민은 진행 중이지만, 4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라면 내 소속이 서울교당 청년회에서 서울교당 일반회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원불교 준거 집단이 추가된 것이다. 이왕 A/S 하기로 했으니 확실하게 해보자. 이번에 부탁받은 글의 주제는, ‘원불교 2세기, 시대화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가.’이지만, 필자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두서가 없을 수도 있으니, 맘에 드시지 않는 분들은 이 글의 마지막 단락으로 건너뛰어도 무방할 것이다.

 10대(1986~1988) : 모태신앙으로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비로소 교당 문턱을 넘어섰다. 법회 출석 2개월 만에 학생회장 감투를 썼고,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 오후가 되면 교당으로 향했다, 고3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 덕분일까? 그 어려웠던 대학 입시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20대(1989~1999) : 고3때도 매주 법회에 출석했을 정도니, 대학교 교우회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 서대연(서울교구 대학생 연합회) 첫 모임에서 같은 교우회의 두 선배로 인해 원불교와 영생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누군가는 좋은 직장을 찾아 인생을 설계할 때, 나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여 서대연 지도간사를 병행하였다. 대학생교화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보자는 법연들과의 의기투합. 그때 그 도반들, 지금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30대(2000~2010) : 공부와 사업의 병행을 지속하였다. 마음공부를 구체적으로 접하게 되었으며, 서대연 마음공부 지도자 양성과정을 진행하였다. 1기 수료한 법연들은 현재, 아직도(?!) 서울교구 청년회에서 만날 수 있다. 교화에 대한 이상이 현실과 부딪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도반들은 각개전투 모드로 전환하였다.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40대(2011~현재) : 청년회 열정 모드 2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더니, 마음공부로 정신과 육신을 수련하니,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아울러 재미있게 일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복도 이런 복이 없다. 재미있게 일하는 방법을 깨닫다니…. 물론 이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람과 원불교,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럼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자. 원불교 2세기, 시대화 어떻게-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내 생각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10대부터 지금까지, 나의 중요한 가치는 사람과 원불교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한 것이 있다면 ‘나’라는 사람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의미심장하게 표현하자면 ‘나’를 편안하게 하는 마음을 찾다가 ‘나와 너,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마음을 찾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편안함을 이루는 방법적 가치는 원불교, 마음공부를 이용해서 실천하고 있다. 시대화를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잡힐지 모르겠다.

 원불교 1세기가 지나고, 2세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원의 진리는 변화하지 않는다. 처음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시대화, 어떻게-무엇부터?’ 무시선 무처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나 마음공부, 어디나 선방’ 이것을 말로 하기는 쉽다. 문제는 실행에 대한 방법론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음공부 지도인 양성과정을 새롭게 개설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보다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하나부터 확실하게 잘 한 후에 다음을 이야기하자. 마음공부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바뀌어도, 유행을 타지 않는 히트 상품이니까 말이다.

 좋은 아이템 아끼지 말고, 마르고 닳도록 이용하자는 것, 이게 내 생각이다. 단, 기본은 잊지 말자. 사람과 원불교. 이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글의 제목이 이제 확실하게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알. 쓸. 신. 마 - 알면 알수록 쓸모 많은 신비한 마음공부!’

 

생활화,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가?
일상에서 밥 먹듯이 이 법을 활용해야

글. 김정선 원불교여성회 홍보위원장

 여러 해 전 내가 교당에 열심히 나가지 않을 때 일이다. 일 관계로 한양대 윤덕균 교수님을 만난 일이 있다. 교수님이 원불교 교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도 원불교 교도이나 아직 열심히 교당에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더니, “시루교도구먼~” 하신다. 부모님 따라 가끔 4축 2재에나 참석하는 교도들을 일컬어 ‘시루교도’라고 한다며, ‘우리 교법은 밥 먹듯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법이다. 대종사님의 호가 왜 소태산인 줄 아는가? 소태산(少太山)은 한자적 풀이보다 ‘솥’의 의미가 더 크다. 정산 종사님의 정(鼎)자도 ‘솥 정’자 아닌가? 이는 이 법을 매일 사용하는 솥처럼 일상에서 밥 먹듯이 사용하라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해 주신 일이 있다.

 이후 어찌어찌한 이유로 남편과 함께 열심히 교당에 나가게 되었고, 이후 공부를 할수록 소태산 대종사님의 일원정법의 위대함을, 100년 전 이미 5만 년을 준비하신 이 교법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대종사님께서 기존의 불교와 다양한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불교라는 새 시대 새 종교를 만드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되고, 각각의 편협한 틀을 벗어나 인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고 깨닫고 실행함으로써 이 지구라는 별에서 스스로 낙원세상을 만들고 누리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원불교가 종교사에 미친 가장 큰 혁신

 원불교 교법의 혁신적인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가장 큰 혁신을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는 등상불의 신앙에서 일원상이라는 진리적 신앙으로 그 폭을 원대하게 넓혀 주신 것이요, 두 번째는 불법과 생활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생활중심의 종교로 틀을 짜주신 것이라고 본다.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처음 교법을 만드실 당시부터 우리 원불교의 중요한 화두였고, 창립 2세기를 맞는 이 시점에서도 또다시 혁신을 위한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며, 어느 때라도 또다시 세월이 흘러가면 시대에 맞게 대중과 함께 생활 속에서 어떻게 불법을 실현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은 결국 원불교 신앙과 수행의 지향점이며, 원불교 교도들끼리만 누리는 교리가 아니라 세계로 가지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인류 보편적인 삶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법으로써 의식주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는 삶이야말로 물질과 정신이 함께 발전하는 낙원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토록 강조하셨던 교법의 생활화를 우리는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구체적 실행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100년 전의 그 혁신의 바람은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함께 노력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1. 삼학은 의식주로 연결돼야
 
 한 젊은 교도가 “원불교에 다니면 구체적으로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거지요?” 하고 푸념하듯이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불법의 생활화’를 통해 이루어야 할 첫 번째 목표는 ‘자기’를 세우는 일이다. 정신수양을 통해 일심을 양성하여 마음의 힘을 키우고, 사리연구로 지혜를 밝히고, 작업취사를 통해 실행력으로 절제력과 의지력을 키우는 훈련을 쉼 없이 해야 한다. 조석 심고와 아침 좌선을 매일 함으로써 키워지는 마음의 힘을 스스로 느껴봐야 한다. 해보지 않고서는 이 힘이나 맛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마음의 힘이 키워지면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생기면서 그것을 위한 배움과 노력을 하게 되고, 이것이 의식주의 삶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사요에서 자력양성의 토대가 되고 지자본위를 실천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살다보면 생각대로 일이 잘 안 풀리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경을 경험하더라도 이때 이 공부를 잘 해놓은 사람이라면 그 원인이 어느 세월에선가 자신이 지은 과보임을 인정하고 참회함으로써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 일상의 언어에 교법이 묻어 나와야 
 
 이렇게 스스로 삼학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자력을 양성하게 되고, 이 정보화 시대에 지자본위라는 큰 힘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인간생활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나 혼자만 깨닫고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바로 옆의 가족들과 친구들 이웃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생활시불법은 이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주변의 많은 인연들과의 관계도 자행자지 하지 않고, 질서 있고 정의 있는 생활, 은혜를 알고 보은하는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원불교 2세기를 맞아 생활 속에서 불법을 밥 먹듯이 활용하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나는 교법의 용어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언어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자어가 간단명료하여 표현하기 편리한 면도 있긴 하지만, 한자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본다. 대종사님도 계정혜 삼학을 ‘일심, 알음알이, 실행’이라는 쉬운 말로 풀어주지 않았는가.
3. 유혹이 많은 세상 - 절제력 키우고 간소함을 실천해야 
 
 또한 유혹이 많은 이 현대사회에서 원불교 교도라면 스스로 24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절제하고 자제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실행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동시에 삶의 욕심을 내려놓는 간소화 운동을 스스로 실천해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생활화를 위한 마지막 키워드는 ‘친절’이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넘어 이방인에게, 모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은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내가 원불교에 다닌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원불교 다니시는 분들은 뭔가 달라도 달라요.” “제가 아는 원불교 교도님들은 한결같이 참 훌륭하세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 “당연하지요.”라고 답한다. 대종사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인데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 뭔가 다름을 다른 이들도 알고 따라올 수 있도록 말과 글로 전하고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보편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대중화, 어떻게-무엇부터 할 것인가?
봉공의 대중화

글. 오예원 원불교 중앙봉공회 회장

 원불교 100주년이 지나고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를 맞이한 원불교 봉공회는 이제 교도들만의 울을 넘어 시대정신의 흐름과 함께하며 원불교 정신을 대중 속에 친숙하게 알리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봉공의 대중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 다 함께 고민하면서 실행을 추진해가야 할 때다.

 우리 교사를 상세히 알면 봉공의 역할이 더 의미 있게 드러나고 원불교 창립정신 속에 무아봉공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 원불교 봉공의 교단적 유래를 살펴보자.

1. 대종사께서는 대각 후 저축조합운동과 방언공사를 시작하셨다. 이는 신심의 실천력을 알게 하며 자력양성을 함과 동시에 공익을 위한 봉공사업의 시작이었다.
2. 정산 종사께서는 전쟁 직후 교단이 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전쟁재해동포구호사업을 전국적으로 장기간 펼치셨다. 이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종교의 역할을 다하신 대국가 봉공활동의 시작이었다.
3. 대산 종사께서는 봉공회의 중요성을 재부각시키고 중앙 봉공회 산하에 4대봉공회(출가, 재가, 국가, 세계)의 출범과 아울러 교단의 운영과 역량 확대를 4대 봉공 활성화로 할 것을 기획하셨다.
4. 좌산 상사께서는 원불교 봉공회의 대사회·국가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사회복지법인 원 봉공회를 설립하셨다.
5. 경산 종법사께서는 ‘봉공! 참 아름다워’란 휘호를 내리고 출가, 재가, 국가, 세계 4대봉공의 구체적 활동을 독려하셨다. 비록 설립 과정에서 여러 이견들이 상충하긴 했지만 세계봉공재단을 설립하여 세계를 향한 봉공사업의 활성화를 염원하셨다.

 대종사께서는 교리도에 4대강령의 한 축으로 무아봉공의 교리를 밝혀주셨다. 또한 일상수행의 요법의 마지막을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로 마무리한 것은, 원불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상이 곧 봉공하는 사람임을 밝혀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아봉공’이야 말로 초기 교단의 혼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념인 것이다.

 이처럼 ‘봉공’이라는 말과 봉공활동은 교단 창립 당시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대산 종사 재세 시에 와서야 “봉공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조직과 사람이 없는 종교는 빈껍데기.”라 하여 그 역할을 할 조직을 통한 교단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4대봉공의 큰 틀이 짜여졌다.

 원불교 봉공회가 정식으로 회칙을 만들어 ‘원불교 중앙봉공회’를 출범시켜 활동해온 지난 40년 동안 교단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에 봉공회의 정성과 손길이 미쳤다. 지역과 사회, 국가, 세계에 최선을 다해 전교도가 개미부대처럼 꾸준히 봉공활동을 펼쳐왔음을 우리 출가·재가 교도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오면서 ‘봉공’이란 말은 우리 원불교인들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흔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봉공회에 대한 인식이 큰 틀의 봉공활동이 아닌 개 교당의 작은 틀의 봉공활동으로 축소되는 경향도 보이고, 봉공인력 부족과 고령화로 교단 초기의 봉공정신이 위축되어 가는 안타까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적십자사와 같은 봉공의 대중화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본다.

 첫째, 봉공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대사회적 봉공활동을 추진해나갈 재가는 물론, 젊은 출가자와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사회복지 지원 사업과 아울러 국내외 재해재난 현장 구호 자원 활동, 이웃종교, NGO단체, 자원봉사 단체들과 함께 공동연대활동 및 재난 대응 체계구축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전문 인력, 특히 출가 전문 인력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봉공활동은 원불교 신앙과 마음공부의 참 모습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더욱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 원불교학과를 졸업 한 예비교역자들이 봉공시설이나 취약계층의 현장에서 1년간 실습을 거친다면, 사회의 낮은 곳에서 봉공정신을 몸으로 체득하며 학교를 통해 배울 수 없는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고, 이는 원불교 봉공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바는 물론 일선교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의 자가 건물과 나눔 시설이 시급하다.
 국가·세계적으로 공익 단체들이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나눔, 기부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일반 자원 봉사자를 적극 활용하여 무아봉공을 확대 인식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봉공인의 활동 공간과 인재 양성을 위한 원불교 봉공센터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큰 불효를 했다는 자책감이 들 정도다. 10여 년 전부터 전국교구 봉공회가 건축기금 모금에 열과 성을 다하고는 있지만, 막상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봉공회의 기금들을 사용하느라 정작 자가 건물 구입은 뒷전으로 미뤄왔다. 봉공센터 건립으로 가는 길은 봉공회 자력만으로는 너무도 멀고 힘들다.

 셋째, 교구와 교당의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봉공활동은 교구와 교당의 이런저런 행사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작은 틀로 한정 짓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사회 봉공 활동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하면서 “대사회 국가 봉공활동은 어느 단체에 국한된 일이 아닌, 전교도가 봉공회원”이라고 말씀하신 큰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원불교의 대지역사회, 대국가, 대세계 봉공활동 활성화에 열린 마음으로 협조해 주는 길이 봉공의 대중화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의 말을 떠올려 본다.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면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더욱 사회(대중)와 함께 할 수 있는 원불교 봉공회가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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