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의 단원인장구
글. 김광원

 요즘은 뜻만 있으면 소통이 참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시대다. 주위의 이런저런 사람들이 네이버 밴드로 엮여 있어 멀리서라도 얼마든지 소식을 전하고 안부도 물으며 살아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한 친구가 동영상 하나를 밴드에 올렸다.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1037~1101)의 ‘수조가두’를 노래로 부른 것인데 곡이며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알고 보니 ‘첨밀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대만 가수 등려군(鄧麗君, 1953~1995)이 소동파의 작품을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라는 제목으로 하여 부른 노래다.
화면에 흘러나오는 한글 가사 내용을 보니 범상치 않고, ‘역시 대문장가 소동파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가사 내용이 잘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인터넷을 통해 원문을 접하였고, 몇몇 글을 참고하여 한글 번역을 좀 다듬어 보았다. 부족하나마 다음과 같은 번역문이 만들어졌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 잔을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보아도 / 천상 궁궐에서는 오늘 밤이 / 어떤 해인지도 알지 못한다네. / 나는 바람 타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지만 / 달나라 궁전이 높고 높아 / 추위를 견딜 수 없을까봐 두렵다네. / 일어나 춤을 추고 맑은 그림자를 즐기나니 / 달로 간들 어찌 인간세상만 하리오. / 달은 붉은 누각을 돌고 비단 창문에 내려와 / 잠 못 이루는 나를 비추고 / 무슨 원망이 있을 것도 아닌데 / 달은 어이 이별할 때 둥글어지는가. / 사람에게는 슬픔, 기쁨, 이별, 만남이 있고 / 달은 흐림, 맑음, 차고, 이지러짐이 있는 법 / 자고로 온전하기는 어려운 일이어니 /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 천리 밖에서라도 달빛 감상 함께하길 바라네.

 이 글은 소동파가 1076년 밀주 지사로 있을 때 추석을 맞이하여 7년 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밝은 달 아래 좋은 술을 마시며 흥겹게 즐기다가 새벽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달나라 궁전이 높고 높아 / 추위를 견딜 수 없을까봐 두렵네.’라는 내용을 보면, 달은 경외감을 갖게 하는 격조 높은 대상이면서도 한편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소동파의 심리가 읽힌다.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 궁궐의 세계와 거리를 두려는 소동파의 심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궁궐보다는 인간적 정리가 통하는 낮은 세계가 훨씬 즐겁다는 것이다.

 이 시의 후반부에는 달빛 아래 동생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이 자연스레 그려지고 있다. 특히 ‘달은 어이 이별할 때 둥글어지는가.’라는 내용에서는 멀리 떨어져 그리워하는 사람의 애잔한 심리와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의 대비적 심상을 통해 간절한 그리움의 정서를 절묘하게 그려내었다. 그런데 이 시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진정한 이유는 그 다음에 있다. 화자는 ‘사람에게는 슬픔, 기쁨, 이별, 만남이 있고 / 달은 흐림, 맑음, 차고, 이지러짐이 있는 법.’이라 하며 온 천하 운행의 이치를 제시하면서 우리 인간은 이 이치에 온전히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진솔하고 소박한 표현이다.

 이런 내용을 전제로 한 이후에, 화자는 최종적으로 그리운 동생을 향하여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 천리 밖에서라도 달빛 감상 함께하길 바라네.’라고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인간적이고 겸손하며 넉넉한 심사인가. 앞에서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온전히 알기는 어려운 일이라 하였으나, 사실 끝 2행의 내용은 자연의 이치를 온전히 깨달은 자의 여유 있는 마음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온전히 알 수 없다고 겸손히 낮추면서도 깨달은 자의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역설의 이치가 이 시에는 담겨 있다.

 천 년 전의 소동파 시가 다시 깨어나 중국인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양홍지(1958~2004)라는 작곡가와 ‘등려군’이라는 가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등려군은 1969년 16세에 데뷔한 이후 대만 최고의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고, 홍콩,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열광적 인기를 누렸으나, 안타깝게도 42세의 나이에 천식의 발작으로 숨을 거두었다.

 인터넷 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단원인장구’ ‘첨밀밀’ 등 등려군의 노래는 얼마든지 쉽게 들을 수 있고, 다운받을 수 있다. 잔잔하고 애수어린 그러면서도 은은한 열정과 높은 호소력을 지닌 그의 노래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올 가을은 다소 설레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영화 ‘첨밀밀’까지 찾아서 본다면 내 마음은 한참 젊어지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단원인장구’를 밴드에 올려준 친구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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