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은행잎 우수수… 까마득한 추억 옆에 다가서다
취재. 노태형 편집장

1.
그런 기억 있으시죠.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우수수 흩어져 내리는 노란 은행잎. 그 모습이 눈부셔 한동안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낙엽 비를 흠뻑 맞습니다. 계절이 떨어져 내리면 그리움도 떨어져 내리고, 또 종잡을 수 없는 많은 생각들도 흩어져 내립니다. 누구나 거쳐 온 학창시절 그 어느 길목에서, 말이죠.
땅바닥이 온통 노랗게 물들 때쯤이면 빗질 소리가 서걱서걱 마음 쓸고 가는데, 이유 없는 슬픔이 저녁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웁니다. 가랑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 한 줌 사선으로 흘러내리면 그리움은 더욱 까마득해집니다. 어느 누군가는 빗질 사이로 달려가 그 노란 은행잎 차곡차곡 주워 담아 책장 사이사이 끼워 놓았을 겁니다.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 마음의 책장 속에 아련히 쌓여있겠죠.

2.
오래된 나무랍니다.
무려 공룡시대인 쥐라기 이전부터 지구상에 터전을 잡았다 하니…. 우리는 그런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릅니다. 1억8천만 년 전에 나타나, 몇 번의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죠. 켜켜이 쌓인 세월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 거죠.
그러기에 1천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를 만나는 일도 어렵지가 않습니다. 100세를 사는 인간이 열 번을 반복해서 태어나야 가능한 세월이죠. 그래서 더 신령스럽습니다. 은행나무는 그 오랜 세월을 담고 서 있습니다.

3.
10년… 20년… 30년….
천년 속의 찰나 같은 시간이 흐르고, 떠나간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예전의 장소에서 추억을 더듬죠. ‘누군가를 그리워했다거나, 누군가를 사랑했다거나, 아니면 지워버렸던 기억을 다시 되살리고 싶다거나….’
삶의 객지를 떠돌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아집니다. 아름다운 추억만큼 좋은 위로는 없죠. 키 큰 은행나무 한 그루, 예전처럼 그 자리에 서서 반겨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그 오랜 세월, 그렇게 상처 난 영혼을 지켜주기 위해 서 있었나 봅니다.
노란 은행잎 하나 주워 마음의 책장 사이에 다시 끼워 넣습니다. 추억이 아름다우면 삶도 아름답다죠. 찢어진 추억도 잘 기워내면 위로가 되는 법입니다. 

4.
홍천 은행나무숲, 외진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입니다.
주인은 30년 전, 부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리천 자락 풍광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행나무 2000 주를 심은  것이 어느새 숲이 된 거죠. 아마, 은행나무처럼 오래오래 부인을 지키며 추억을 포개어 살려고 했나 봅니다. 
먼 길 달려온 사람들 모두가 추억을 담아가려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닙니다. 상처가 많거나 위로가 되거나…. 사실, 산다는 건 추억을 많이 담아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선업(善業)을 많이 저장하는 거죠.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 천년의 미소를 담고 섰습니다. 추억이 있는 삶은 아름다운 거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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