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초롱초롱 수놓는 어여쁜 알들
글. 김광원

 날씨가 흐린 늦은 오후, 전주역 뒤쪽을 흐르는 소양천을 걷는다. 이 천은 완주군 소양에서 흘러나와 용진면 입구의 초포다리를 지나고 비비정이 있는 삼례로 흘러가서 만경강이 된다. 한 2년 전쯤 천변을 따라 산책로를 길게 낸 뒤부터 도보로, 자전거로 많은 사람들이 천변 풍경을 즐기며 오고간다.

 한여름 땡볕을 견딘 9월의 산책로는 이제 다소 여유를 찾은 듯 넉넉하고, 편한 마음을 불러온다. 망초, 개망초, 인진쑥, 갈퀴나물, 강아지풀 등 한 점의 빈 공간도 없이 풀들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이러다가도 잠시 후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들 식물들은 또 제 몸 스스로 알고 있는 섭리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오래전 9월 어느 날, 나는 옥수수가 높게 자라고 있는 공터 근처에 서 있었다. 출근길 아침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렇게 날씨도 좋고 햇살도 기분 좋게 내리는데, 옥수수는 왜 저렇게 위쪽부터 말라가고 있지? 생각이 이에 미치면서 ‘아, 그렇구나!’ 내 머릿속에는 퍼뜩 스쳐가는 게 있었다. 바로 한 해 전 타계한 선친이 동시에 떠올랐던 것이다.

 선친을 다른 세상에 보내고 삼우제까지 마치고 온 날 밤, 나는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엄청 밝은 별 하나가 내 눈 앞에 길게 광채를 내며 떨어져 내린 것이다. 생생한 별똥별을 보고 소스라치듯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어두운 밤 속에 홀로 전율감에 싸여 있었다. 그날부터 나에겐 화두 하나가 생겨났다. 이 기이한 체험을 시로써 표현해 보리라.

 그런 일이 있고난 뒤 다음해 9월, 신호등 앞에서 위쪽부터 누렇게 말라가는 옥수수가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만상이 상쾌한 9월, 옥수수가 많은 옥수수 알들을 품고 말라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 만상이 겪을 수밖에 없는 성쇠의 운명적 메시지가 불현듯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익어가는 옥수수 알을 품고 시들어가는 키가 큰 옥수수 이미지와 내 눈 앞에서 별똥별이 길게 흘러내리던 그 기이한 체험이 결합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0개월 동안 품어온 화두가 풀어질 수 있었고, 나의 두 번째 시집의 표제시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가 태어나게 되었다. 졸시에 불과하나 이야기 순서를 핑계 삼아 여기에 수록한다.

하늘은 높아가고 / 고추도 들깨도 무도 배추도 / 들녘은 마냥 푸른데 옥수수는 / 시름시름 시들어간다. /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앓는다. / 꼿꼿이 서서 어둠을 불러들인다. / 벼랑이 되어 / 벼랑 끝에 선다. / 고요히 돌아보면 / 지나가는 구름, / 후두기는 빗소리, 때로 / 천둥소리도 들려온다. / 산비둘기도 꿩도 내려온다. / 아- / 저 어둠의 강 자락에 / 무더기로 무더기로 알들을 쏟으면 / 혹 어느 새끼 하나가 / 여명의 새벽 강을 흘러갈 것인가. / 다시 바람이 분다. / 별 하나 떨어지고 / 떨어지고 별 하나 떨어지고 / 와르르 무너지는 바다- / 은빛 꿈을 안고 꼬리 치며 / 꼬리를 치며 튀어오를 것인가. / 승천할 것인가. / 밤하늘을 초롱초롱 수를 놓는 / 어여쁜 알들… / 옥수수, 아픈 알들아…
(‘옥수수는 알을 낳는다’ 전문)

 후세를 키워내는 아버지들의 아픔과 희생을 추모하며 쓴 시이다. 그렇다고 아버지만은 아니다. 형이든, 어머니든, 선배든, 은사든, 선각자든, 민족의 열사이든, 후생을 위하여 스스로 벼랑이 되고 벼랑 끝에 서서 무너져 내려야만 했던 이 땅의 많은 분들을 기리고, 그들의 숭고한 삶을 닮아가고자 하는 후생의 반성적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류 문화의 역사는 그렇게 하여 흘러내려 왔을 것이다. 강물의 연어 알이든, 지상의 옥수수 알이든 그 무수한 알들 모두가 빛나는 생명체로 성장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분명 와르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도 은빛 꼬리를 치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그런 새끼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아름다울 수 있고 빛나는 것이다. 나는 현재 밤하늘을 초롱초롱 수놓는 그 무수한 별들 속에 들 수 있는가. 과연 어디까지가 빛나는 존재인지 금을 그을 수나 있는 건가. 끝없는 질문 속에 끝없이 갈등만 하다가 이 삶을 마치고 말 것인가. 어느덧 실처럼 가는 비가 내리는 저녁, 소양천의 물은 이제나 저제나 풀잎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 냇물은 얼마 후면 만경강이 되고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흘러가고 나면 언제 또 흘러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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