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찬란한 역사의 탄생, 대장간
청명한 쇳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생
취재. 이현경 기자 

 ‘챙―챙―챙!’
 막연히 떠올렸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땀방울이 가득한 이곳. 형제대장간에는 청명한 가을 하늘보다 더 청명한 쇳소리가 가득 울린다.

 제일 먼저 가게 문을 연 박한준 씨가 화덕에 불을 피우고 상자에 담긴 물건들을 내놓는다. 그 사이 류상준·류상남 형제가 시차를 두고 연이어 가게에 도착한다.

 좁은 가게 안에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모여 선 이들이 먼저 손에 쥔 건 쇠가 아닌 떡. 매일 먹는 간단한 아침 식사다. “자 좀 줄래?”라고 말하는 형 류 씨. 무엇보다 오늘 할 일에 대한 생각이 먼저인 것이다. 제법 평화로운 분위기가 낯설어질 때쯤 이들은 말랑한 것을 쥐던 손으로 단단한 쇠를 집어 든다.

 이때, 도로 한쪽에 차가 선다. 산소통을 교체하러 온 거래처 사람이다. 그들이 수줍게 내미는 칼은 이곳에서 오래전에 구입한 것이다. “너무 좋아요. 독일제보다 더 잘 들어요.” 오늘 대장간을 방문한 김에 칼도 함께 갈게 되었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착착착. 대장간의 일은 눈 깜짝할 새 시작된다. 세 사람은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인다. 동생 류 씨가 화덕에 쇠를 담굼질하면 기계 함마 앞에 앉아 있던 형 류 씨는 페달을 밟는다. 함마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자 기차가 달리는 듯, 규칙적인 소리가 크게 반복된다. 함마가 쇠를 때릴 때마다 이들은 쇠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 힘으로 큰 충격을 버텨내야 한다. 세 사람은 그렇게 다시 또 한 사람처럼 모여 쇠에 구멍을 냈다. 이후 모루 위에 쇠를 얹은 후 산소절단기로 열을 가하고, 힘찬 메질을 시작한다. “탕, 탕, 탕, 탕.” 동생이 망치로 때리고 형이 쇠의 위치를 조절하며 쇠를 구부린다. 굵은 쇠를 기계에 고정시킨 후 온몸의 힘으로 꾹 눌러 힘을 줘서 구부려야 한다. “더, 더, 더. 좀 더! 됐어.” 형이 쇠의 구부러진 각도를 본다. 하나하나 각각 만든 제품들이지만 쌍둥이처럼 똑 닮았다.

 곧이어 날카로운 부분을 만들 차례. 이번엔 박 씨가 힘차게 메질을 한다. 그러는 도중 류상준 씨가 다정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뗀다. “뒤에 지지하는 다리가 굽혀지면 망치를 내리칠 때 힘이 없지 않을까?” 자세를 확인한 박 씨가 다시 메질을 한다.

 그러나 대장간이 고요한 순간도 있다. 쇠의 강도를 맞추는 때이다. 너무 강한 쇠는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담금질 전 열풀림(쇠에 열을 가한 후 식히는 것)이 필수다. 한껏 두들겨 맞은 쇠가 하얗다가 어느 정도 까매지면 담금질을 한다. 그러고 나서도 인도 한쪽에서 쇠의 열을 식히는 작업이 계속된다. 인도를 오가는 행인들을 살피며 항상 조심하는 행동은 몸에 밴 습관이다.

 이렇듯 물건마다 작업 과정의 차이는 있으나 세 사람의 정성이 오롯이 담기는 것은 같다. 그렇게 마무리된 제품에는 쾅 하고 ‘형제’라는 선명한 글자가 찍힌다. 지켜보는 사람이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친 오전 작업이 끝났다.

 형제대장간의 ‘형’, 류상준 씨가 예순넷의 나이에 50년 넘는 역사를 몸에 지닌 장인(匠人)이라는 것은 작업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동생 류상남 씨 또한 20년 넘는 경력의 대장장이다. 이 형제를 ‘대장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박한준 씨는 일을 배운 지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든다. 세 사람의 힘과 기술이 더해져 형제대장간의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후를 버틸 체력을 충전하는 점심시간에 손님이 방문한다.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라고 시작된 제품 주문 덕분에 형 류 씨의 오늘 점심이 조금 늦어졌다. 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 옆에서 동생 류 씨가 씽긋 웃으며 말한다. “바쁜 거야 매일 같죠. 아까 일한 건 부산에서 빨리 보내달라고 해서 서둘렀어요. 오늘 또 해야 할 다른 작업이 있어요.”

 형 류 씨는 잠깐 한숨을 돌리는 시간에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한다. 좁은 인도, 그 옆으로 넓은 도로가 보이는 풍경엔 아까는 몰랐던 차 소리가 크게 들린다. 종종 행인들은 바삐 지나가다가도 발길을 멈추고 가게 안을 본다. 어느 남자는 오전 내내 가게 바깥에 서서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대단하다.”며 커피 세 잔을 공손히 건넸다.

 일반 사람에게야 쇠가 차갑고 거칠게 느껴지겠지만 이들에게 쇠는 ‘안 좋은 거 없이 다 좋은’ 존재다. 형 류 씨가 일할 때 강조하는 것 또한 “일에서 중요하지 않은 과정은 하나도 없다.”이다. 까맣고 투박할 것만 같았던 쇠가 손길을 거칠수록 반들반들하게 빛을 내는 과정. 이 모든 과정들이 다 중요하다.

 전통을 보존하는 일에 많은 애착심을 느끼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더 열심히 쇠를 두드리는 형제대장간. 하늘을 찌를 듯한 쇳소리만큼이나 대장간 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은 꿈이 이들의 일상과 함께 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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