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
모든 생명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합니다
취재. 장지해 기자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떠오른 건 어머니였다.
 아버지에 오빠 둘, 그리고 언니까지 먼저 보낸 어머니의 애간장이 다 녹는 듯한 울음소리…. 그 모습을 생생히 보고 들었던 선재 스님이었다. ‘출가한 나까지 먼저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병을 고치겠다는 굳고 굳은 마음을 세웠다. “부처님께서 음식이 약이라고 하셨으니, 음식으로 병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서야 제 논문이 떠오르더라고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건 논문을 쓴(1993년) 다음해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시에 청소년수련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또 여러 강의요청에까지 응하다 보니 끼니를 라면이나 빵으로 떼우거나 거르기 일쑤였다는 그. 사찰음식문화를 주제로 한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파고들기 시작한 사찰음식 연구. 그는 1년 만에 항체를 만들어냈고, 병원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경험이 있었기에 사찰음식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껏 그토록 절실하고 강경하고 과감할 수 있었을 터.
 그때 얻었던 병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병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건강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다.”고 말하는 선재 스님에게 1년으로 한정되었던 시간이 20년 이상으로 늘어난 건, 정말이지 음식문화의 힘이다.


● 조계종 최초로 ‘사찰음식 명장’이 되셨죠. 축하드립니다.
“종단에서 저에게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준 것은, 불교의 음식문화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역할을 앞으로도 잘 하라는 의미 같아요. 사실 진정한 명장은 산중에서 사찰음식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이죠. 땅과 물과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또 그렇게 맑고 깨끗한 음식을 먹고,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모든 분들이요.”
사실 불교 출가자들에게 있어 음식문화는 생활 그 자체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그러니 출가 전의 음식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으며 음식문화를 바꾸어가는 게 수행의 시작과도 다름없는 것. 하지만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을 ‘스님들의 음식’에 한정 짓지 않는다. 어떤 먹거리가 입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달라지기 때문에, 수행을 하는 스님들뿐만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음식문화로서 사찰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사회복지학 졸업논문을 사찰음식으로 쓰셨던데요.
“본래는 청소년수련원에서 아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 사회복지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심성과 음식이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걸 경험하고 스님들이 드시는 수행식으로 식단을 바꾸었더니 그게 엄청난 효과를 낸 거죠. 그때부터 음식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식습관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고민하다보니 사회복지학 졸업논문을 사찰음식문화로 쓰게 됐어요.”
집이나 학교에서 평소 산만하거나 거친 아이들이 사찰문화에 익숙해지는 건 물론 한번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음식을 거부한 채 몰래 군것질을 하던 아이들은, 점점 음식에 적응을 하면서 순해졌다. 부처님의 말씀을 말이나 글로 전하는 것보다도, 음식을 통해 전달하니 훨씬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던 것.

● 일상에서 입맛이나 식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열반경>에 보면,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께 상담을 하러 와요. 상담거리는 자녀들 문제, 돈 문제, 사업, 직장, 가족이나 이웃과의 갈등 등등 사람들마다 다 다르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부처님이 상대방에게 꼭 하는 질문이 있으세요. ‘당신은(당신의 가정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라는 질문이죠. 곱씹어볼수록 이 시대에 참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부처님께서는 그걸 짚어주셨던 거죠.”
한없이 풍요로운 시대. 하지만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특히나 실감나는 건 생활 속 식습관을 통해서다. 과식, 과음, 야식, 혼밥, 혼술…. 식습관의 형태가 현대화되고 다양화되어가면서 시기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식품의 생산은,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자연스러움’을 멀게 해 건강을 해치는 주요인이 되어가고 있는데….

● 음식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바로 할 수 있는 노하우 몇 가지를 전해주세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에 논문을 펴놓고 ‘음식이 약이라고 했으니 약을 잘 챙겨먹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잘 챙겨먹는 것보다 중요한 게 약이 아닌 걸 ‘버리는’ 것이더군요. 몸에 나쁜 걸 버리는 걸 먼저 해야 해요. 또 제철음식을 먹는 게 중요해요. 계절을 거스른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다보면 식물이 병이 들고, 그걸 먹는 우리도 병이 들겠죠. 땅과 물에게도 해를 입히는 거고요. 다 연결고리가 있죠. 정식(淨食),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해요. 그리고 ‘대충 먹는다.’는 생각을 바꿔야 해요.”
여기에 ‘음식을 다루는 사람은 지혜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이는 선재 스님. 가령 옥수수를 바라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500원을 주고 산 500원짜리 옥수수’라고 생각하지만, 옥수수가 내 손에 오기까지 농부의 손길, 땅, 물, 바람, 햇볕 등의 모든 조건을 아울러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료 하나를 보더라도 ‘500원짜리’가 아닌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면서 특성과 장단점을 알아야 진정한 약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 3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오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요?
“가장 큰 원동력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인 것 같아요. 사실 초반에 강의나 방송요청을 너무 많이 받을 땐 ‘언제 그만두지. 언제 안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주고 있는 이 일이 나의 소명이고, 수행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음식을 방편으로 교화하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음식을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먹는 음식으로써만이 아니라, 생명을 알려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각각의 고유한 생명과 특성, 그리고 또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음식을 통해 알아가길 바라는 거죠.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풀과 꽃과 생명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얻은 행복을 나는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걸 깨달아갔으면 좋겠어요.”

● 스님께서는 삼소회 활동도 하셨죠. 종교들 간에 어떻게 해야 잘 화합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종교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거잖아요. 결국,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모습, 저 사람은 저 사람의 모습, 땅은 땅의 모습, 풀은 풀의 모습, 동물은 동물의 모습, 서로 가진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게 ‘나와 똑같아야 해!’는 아니잖아요. 풀은 풀의 역할, 물은 물의 역할, 불교는 불교의 역할, 기독교는 기독교의 역할, 원불교는 원불교의 역할…. 각자의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돼요.”

● 수행자들의 식(食)에 대해서도 조언을 한 말씀 해주세요.
“출가자를 포함한 수행자들은 음식에 착(着)을 해서도 안 되지만, 음식을 외면해서도 안돼요. 주위를 보면 극단적인 경우가 많아요. 일정식을 한다고 하면 그쪽으로 쏠렸다가, 뭘 안 먹는게 좋다고 하면 또 거기에 쏠리면서 자기 몸이 원하는 것을 지나치게 거부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음식문화에도 중도(中道)가 중요해요. 물론 중도를 지키더라도 먹지 않을 건 안 먹어야죠. 또 계절이나 자연 그리고 우리 몸의 리듬을 거스르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해요. 공부를 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죠. 무궁무진해요.”
건강한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산성지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원불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선재 스님이다.

● 삶의 이정표로 삼고 있는 말씀이 있다면요?
“강의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인데, ‘모든 생명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부처님 말씀이요. ‘어떡하면 상대가 행복할 수 있을까.’가 늘 화두에요. 그 마음이 때로는 좋은 말로 표현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프고 호된 말로 표현될 때도 있죠. 좋은 말을 더 많이 해야 할 텐데 말예요. 하하.”

● 세상을 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비결을 전해주세요.
“서로 각자의 다름을 인정해야 해요. 제가 주례를 볼 일이 종종 생기면 이렇게 말해요. ‘배우자는 나의 반쪽이 아니다. 다른 하나와 하나가 만나서 인생을 성장시켜가는 게 부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나에게 끼워 맞춰야 하는 반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긴다.’고요. 살다보면 상대와 내가 다른 게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내 것을 내려놓고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야죠. 그래야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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