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글. 김광원

 봄부터 이어진 긴 가뭄 끝에 올여름에는 많은 지역에서 긴 장마와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장마가 끝나는가 싶더니 이젠 예년에 볼 수 없던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가히 온 나라가 찜통 속이다. 가뭄과 장마와 폭염 끝에 시 한 편이 떠오른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만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1~2행이다. 한용운의 시로서 참 많이 애송되는 작품이다. 모두 6행인 이 시의 5연까지에는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 ‘지리한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 등의 자연물이 제시된다. 이 자연물들을 통하여 만해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이 시의 창작 배경으로 여겨지는 한 문헌(십현담주해)을 통해 보면, ‘알 수 없어요’ 작품은 “고금(古今)을 초월하고 만색(萬色)이 모두 없어졌다. 다르지 아니함도 존재하지 않는데 다르다는 것은 또 무슨 물건인가. (오래도록 말이 없다 이르기를) 땅에 가득한 갈대꽃이요, 하늘에 한결같은 밝은 달이다.”라는 표현과 밀접한 상관성을 지닌다.
결국 한용운 시인이 다섯 가지 자연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우주의 대자연은 본래 같음도 없고 차별도 없는 절대 평등한 세계라는 것이다. 삼라만상을 ‘한 송이 꽃’으로 볼 때, 그 ‘한 송이 꽃’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 등은 같은 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다. 상호 꼭 필요한 존재이기에 모두 귀하고 평등한 존재일수밖에 없다.

 그러하거늘 만해 시인이 이 시를 창작한 시대는 평등 관계가 깨어진 일제강점기였고, 이에 만해는 민족 수난의 아픔을 끌어안으며 본래성 회복을 향한 절절한 심정을 사랑의 이별시집 <님의 침묵>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알 수 없어요’의 5~6연은 다음과 같다.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5연의 ‘저녁놀’을 통해 시는 장엄하게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크게 보면 우주는 ‘한 송이 꽃’과 같은 존재이지만, 또 한편 우주는 끊임없이 인과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저녁놀’은 끝없이 변화하는 인과현상을 보여주며, 6연의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표현은 이 시에 뜨거운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화자의 가슴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며, 그 등불의 마음은 불평등한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태우며 평등세계의 도래를 염원한다. 결국 모든 존재사물에는 절대 불변의 평등성와 끝없이 돌고 도는 인과율이 공존함을 알게 한다. 

 한여름의 폭염이 지속되는 현재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 집 반려견 ‘코코’와 함께 새벽과 저녁 두 차례 뒷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강아지가 점점 크더니만, 지난 초여름 어느 날부터 집 안에서는 전혀 배뇨·배변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줄 채우고 줄을 잡고 돌아다녀도 몸집이 커버린 새까만 ‘코코’를 보면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코코’에게 만나는 사람 모두가 친근한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고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또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칭찬하며 간식을 주고, 말을 안 듣고 고집 피울 때는 호되게 혼내기도 한다. 당근과 채찍의 방법이 참 잘 통한다는 것을 실감하며 요즘 티브이에서 가끔 만나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를 떠올린다. 반려견행동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아무리 억센 행동습관을 가진 개라도 순한 양처럼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지. 이런 이치로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명제도 성립할 수 있겠다 싶다. 문제는 환경인 것이다. 세상의 환경과 구조가 개선되면 세상이 좀 더 밝고 훈훈한 평등세상으로 변하지 않겠나 여겨진다. “지리한 장마 끝에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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