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승 장석 전통기능전승자

가구 위의 꽃

 

 “전통가구나 한옥의 마무리는 장석이에요. 가구를 잘 만들어 놓아도 장석이 없으면 문을 여닫을 수가 없죠. 또 이것이 장식되어야 아름답기도 하고요.”

 전통가구나 한옥 같은 목조물이 뒤틀리는 것을 막고 문을 여닫는 역할을 하는 금속제 장석. 장석은 나무의 질감과 어우러져 목공예를 더욱 돋보이게 하지만, 건축물이나 가구에 그 매력이 감춰졌던 것도 사실이다. 양현승 장석 전통기능전승자(04-4호)는 그런 장석의 숨은 매력에 반해 50여 년 동안 장석장인으로 살아왔다. 그의 손길에 따라 경첩이 달리고 모양을 낸 장석이 하나둘 붙여진다. 그러자 곧, 소박해 보이던 가구에 환한 꽃이 핀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점 장석의 매력에 빠졌죠.” 중학교 졸업 후 외가에서 장석을 배운 그. 공방에서 ‘꼬마’로 불리며 심부름을 도맡아하던 시절이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선배들이 퇴근하면 그제야 자리에 앉아 그날 하루 동안 눈으로 익힌 기술을 연습했다. 기술이 늘수록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높아만 갔다. 그렇게 광주와 진주, 서울에서 장석을 배운지 10년이 지나자 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장석의 꽃이기도 한 투각과 조각은 그가 최고였던 것.

 “다른 분야 장인들이 기술이 좋다며 찾아오고 소개도 시켜주었어요. 그 때 자신감이 붙었지요. 내 공방도 차리게 되었고요.” 다른 곳에 제작을 맡겼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를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에겐 적당히가 없었다. 내가 만든 물건을 끝까지 책임지는 게 진정한 장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장석이 쏟아질 때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바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장석이 점점 사양화되면서 고민도 많았지요. 장석을 같이 하던 친구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자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이 일이 좋았다는 그. 대량생산 체제 흐름을 따라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장석이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수작업으로 돌아왔다. 기계는 어디까지나 기계일 뿐, 사람의 손맛을 따라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느꼈지요. 충분한 기술이 있고 장인으로서 작품을 만드는 자부심이 있는데, 왜 사업을 시작했을까 하고요. 어려웠지만 그게 저였어요. 배운 대로 거짓 없이 하는 거요.” 거짓이 없다는 건, 재료를 아끼지 않고 수작업으로 정신을 담아 만드는 것. 특히 장석은 복을 기원하는 옛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물건이다. 장석에 많이 쓰이는 물고기와 박쥐는 집안에 도둑이 들지 않도록 집을 지켜달라는 의미로, 장석의 모든 문양과 모양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담고 있었던 것. 가구의 주인에게도, 그것을 만드는 그에게도 장석은 그런 의미였다.
“물론 장석을 만드는 어려움도 있지요. 장석만으로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지 못하니까요. 금속공예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장석이 작품을 장식하고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그. 장석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그는 늘 전통을 잇는 자부심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이 갈수록 장인들이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해요. 자부심을 가지고 배우라고요. 또 학생들의 의욕도 높고요.”
후에 자신이 없더라도 작품은 오랫동안 남아 기억되는게 꿈이라는 그. 그리고 이 작품들에 주인의 손때와 세월이 더해져 대접받는 작품이 돼가기를 그는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튼튼하고 아름다움 작품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만든 작품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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