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신의 옥추경 기도와 진리불공

글. 이정재

 김영신은 초기 교단의 선진이다. 그의 구도역정기에 실린 ‘옥추경 기도’와 관련하여 대종경 교의품 16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김영신이 여쭙기를 “사은 당처에 실지불공하는 외에 다른 불공법은 없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공하는 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은 당처에 직접 올리는 실지불공이요, 둘은 형상 없는 허공법계를 통하여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불공이라….”
여기서 말하는 진리불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형상 없는 허공법계를 통하여 법신불에게 올리는 불공법이라 풀이하고(원불교 사전), 구체적으로는 심고와 기도를 들어 설명한다. 그런데 진리불공의 결과로 큰 위력이 나타나고, 법신의 감응을 얻게 된다고 하는 건 뭔가 더 큰 범위의 영력과 관련이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를 상기시키는 사건으로는 아마도 교사에 등장하는 구인기도와 백지혈인이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진리불공이란 몸과 마음을 재계하고 법신불을 향하여 각기 소원을 세운 후 일체 사념을 제거하고 선정에 들든지, 또는 염불과 송경을 하든지 또는 주문 등을 외어 일심으로 정성을 올리는 것이다.(대종경 교의품 16장)

 진리불공의 종류는 아마도 개인이 도를 통한다든지, 개인사나 사회나 국가를 위한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소원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바로 ‘염불과 송경을 하든지 또는 주문 등을 외어….’가 그것이다.
 
 송경(誦經)은 독경(讀經), 즉 어떤 경을 소리 내어 외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반복해서 하는 것이고 날짜는 3·7, 7·7, 혹은 백일, 혹은 그 이상까지를 정하고 하는 방식이 있다. 즉, 긴 시간 동안 정신을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이르러 신통력을 득하는 지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의품 16장에서도 ‘결국 소원을 이루는 동시에 큰 위력이 나타나 악도 중생을 제도할 능력과 백천 사마라도 귀순시킬 능력까지 있을 것이니.’와 같은 감응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를 이루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기로 하면 일백 골절이 다 힘이 쓰이고 일천 정성이 다 사무쳐야 되나니라.’라며 부촉한 것이다.

 불법연구회 시기에 익산과 경성에서 두루 활용되던 옥추경 기도는 이런 진리불공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송경과 주문에 해당되는 것이 앞서 제시했던 이공주의 중앙단원으로서의 옥추경 주문이었던 것이다.
 구도역정기(원불교신서2) 김영신 편의 옥추경 기도의 일부를 옮겨보자.

 ‘구룡헌(九龍軒) 대강당-공회당-에서는 아침 좌선, 예회, 야회 외에도, 특별히 날을 잡아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기도 때는 저녁시간을 잡았고, 방 한가운데 상 위에 청수동이를 놓고 양가에는 촛불 두 개 켜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남자부와 여자부는 상호 반대 위치에서 마주보고 각자의 단별 방위를 따라 자리 잡아 앉았다. 이 기도식에는 종사주 친히 좌정하시어 기도 알리는 죽비를 딱 치면 우리는 일제히 방위별로 옥추보경을 소리 내어 외웠다.
김1. “천존님 말씀하사 천존이라 하심은 대자하심으로 대존대성이라 하시니 중생의 아비가 만령의 스승이 되며 이제 모든 하늘이 다 어질게 보나니라.” 하고 외우는 사람도 있었고,
김2. “신명한 하늘 우레 할아버지 임금이요 아홉 하늘 크게 화한 임금이라 도를 말하며 아홉 봉우리를 밟고 법을 가지고 기린을 타나니라.” 아예 첫머리부터 시작하는 방위도 있으며,
김3. “천존이 말씀하사되 도란 자는 정성으로써 지키며 부끄러움으로써 쓰나니 정성을 써매 어린 것 같고 묵묵함을 써매 굴한 거 같으니 대범이 같이 한즉 더불어 얼굴을 잊을 것이요 가히 더불어 나를 잊을 것이요.”(김1~3은 편의상 필자 부기함)

 이 암기된 경문은 옥추경 경책의 앞에 나오는 2장 재옥청천중장에서 제7장 도이성입장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맨 처음 구절은 옥추경 재옥청천중장이고, 이어 각각 뇌사계백장, 도이성입장의 일부가 암송된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부분을 불법연구회 시기 활용하던 <옥추보경>(불법연구회 한글화 자료 5번) 구절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보경1. “천존이 말삼하사 대천존이 대자함으로 천존대성하사 군생의 아비되시고 만령의 스승이 되시니 이제 모든 하날이 다 어질게 보나니라.”
보경2. “신명한 하날 우레 한아비 인군이요. 아홉 하날 크게 화하난 인군이시니라. 도를 마쌈하야 아홉봉을 밟으시고 법을 가지고 기린을 타시니라.”
보경3. “천존이 말삼하사대 도란 자난 정성으로써 들어가고 묵묵함으로써 직히며 부드러운 것이로써 쓰나니 정성을 쓰매 어린것 갓고 묵묵함을 쓰매 어룰한것 갓고 부드러운것을 쓰매 굴한것 가트니 대범 이가치 한즉 가히 더부려 얼골을 이즐것이요 가히 더부려 나를 이즐것이요 가히 더부려 이짐을 이질것이니.”(보경 1~3도 편의상 부기함. 원문을 그대로 옮겨 실감을 더하고자 했다.)

 김1~3을 보경1~3과 비교해보면 서로 매우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신은 불법연구회 소장 옥추보경의 구절을 거의 그대로 암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 두 개는(김1~2) 받침 단어적 변수를 빼고는 거의 보경1~2의 내용과 일치하며, 세 번째의 것은(김3과 보경3) 내용의 일부가 빠진 상태 정도다. 수십 년이 지나 기억해낸 그의 암기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당시의 기도가 얼마나 긴장도가 강했던 것인지를 추정케 한다. 김영신이 소태산으로부터 받았던 것은 다른 자료가 아니라 바로 불연자료 5번 <옥추보경>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이공주가 외웠던 중앙교주로서의 경문이 아니다. 이공주의 것은 옥추경의 맨 뒷부분이다. 즉 옥추경 지경과 인경의 부분에 해당된다. 김영신의 것은 천경에 해당되는 것으로, 도와 진리에 대한 원리를 설한 앞부분이다.

 단별 사방에 단원들이 외우는 경문은 각기 달랐다. 봉사 경문 외우듯 한다는 말처럼 제각기 다른 독경으로 방안은 장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외우지 않으면 다른 독경과 섞갈렸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연 일심을 가누어 독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꼭 기미년 간척사업 준공 후 백일 기도를 하던 구인선진이나 된 심경으로 이 기도에 온 정성을 들였다.(구도역정기:원불교신서2, 김영신 편)

 이들의 옥추경 기도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라 판단된다. 길룡리에서는 산상기도를, 경성에서는 창신동 작은 동산에서, 익산에서는 공회당에서 등등 장소는 사정에 따라 바뀌었지만 독경을 통한 정신통일과 정신무장의 여정, 즉 진리불공 기도는 한결같았음을 알 수 있다.

 옥추보경 중의 주요부분을 외는 이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 기도에서 많은 심력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나도 이때 어쩐지 힘을 얻은 것같이 여겨졌다. 생각하면 다 종사주 크신 위력을 입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구도역정기:원불교신서2, 김영신 편)

 위의 밑줄을 그은 두 부분은 각 단원들은 옥추경의 일부 구절을 외기도 했다는 말이다. 즉 옥추경 기도는 구인기도 때처럼 공통 송경의 부분이 있었고, 각기 별도의 해당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김영신은 바로 이 공통 주문의 부분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런 사정은 옥추경의 독경법이 원래 그러했기 때문으로, 이 역시 조선의 전통을 따라 한 방법이었다. 이런 식의 수행법은 조선 말까지 이어오던 것이고, 세기말적 혼란기에 수많은 도꾼을 양산했고, 이어 근래에 계룡산 수행의 주류를 형성했던 바이기도 하다. 이는 오늘날 단학, 국선도, 뇌호흡, 요가 같은 영성운동의 일환으로도 분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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