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범벅의 무아봉공

  글. 이지선 교무

 원다르마센터 입구에서 훈련동으로 들어오다 보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바로 텃밭이다. 그 텃밭을 관리하는 원신행(Douglas) 교도가 5월 한 달간 ‘영산선원 글로벌 스테이’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는 농부에게 가장 바쁜 농번기였다. 원다르마센터 텃밭도 예외는 아니다. 훈련객들의 밥상에 오를 유기농 작물들의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야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콩, 가지, 호박, 토마토, 고구마, 고추, 멜론 등 심어야 할 작물이 10여 가지가 넘고, 이미 파종된 작물만도 양파, 마늘, 당근, 딸기 등 15가지가 넘는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인근에 사는 로렌(Lauren)과 40분 떨어진 곳에 사는 멜리사(Melissa) 가족이 밭일을 돕겠다고 나섰다.

 5월부터 시작된 밭일은 끝이 없었다. 다행히 비가 자주 온 덕분에 물주는 일은 적었지만, 비온 뒤 쑥쑥 자란 잡초를 뽑는 일부터 시작해 밭을 일구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매주 수요일에는 로렌과 그녀의 2살 된 딸 엘시(Elsie)가, 토요일에는 멜리사와 그녀의 남편 데이비드(David), 아들 등 셋이 총출동하여 밭일에 열성을 다하여 매달렸다. 하루는 로렌에게 “농장 일도 바쁠 텐데, 너무 힘들지 않아요? 쉬엄쉬엄 하세요.”라고 말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집 일은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여기 일은 힘들지가 않아요. 오히려 즐거워요.”

 매주 토요일 10시에 센터를 방문하던 멜리사 가족에게서 어느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큰 아들의 태권도 검은 띠 승급 심사가 있어 10시에 오지 못할 것 같다며, 괜찮다면 직원 2명과 함께 아침 8시에 방문해 한 시간 정도 일을 하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마침 비도 세차게 오고 있었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신발과 옷이 흙으로 범벅이 되어 가는데도 감자밭 사이사이에 풀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건초까지 깔아주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데이비드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차에서 긴 막대기에 호미가 달린 도구를 가지고 왔다. ‘미국에도 저런 호미를 파나?’란 생각을 하는 나에게 데이비드가 호미의 상표를 보여준다. ‘Made in South Korea’라고 쓰여 있다. 내가 반가워하자 데이비드는 여기서 한국 호미를 사용하여 풀을 매니 수월하여 하나 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농기구상에서 긴 호미를 발견하자마자 구입했다고 자랑을 했다. 그리고서는 “이게 다 원다르마센터 덕분”이라면서 자기 농사일이 좀 더 수월해질 것 같다고도 했다.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며 2주간 많이 바쁘지만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연거푸 한다. 흙 범벅이 된 채로 차에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아, 사심 없이 봉공하는 무아의 삶이구나!’란 생각이 툭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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