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모든 현상은 양면성… 욕심 내려놓는 만큼 행복감 느껴

글. 박정원  월간<산>부장·전 조선일보 기자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느 때 가장 행복할까?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다. 그 행복감은 삶의 만족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 있다. 대법원장과 함께 산행하는데, 그는 “내 인생의 황금기(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대법관을 퇴직한 후 대법원장에 임명될 줄 모르던 6개월가량 공백기에 히말라야, 존뮤어 트레일을 트레킹 할 때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법원장이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한 나라의 대법원장이면 가문의 영광이라, 속내는 그렇지 않았을 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런지 어떤지는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몇 번 만나본 바로는 진정성이 느껴졌던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삶의 만족도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높다.’는 의미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삶의 만족도까지 높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하는 생애주기를 누구나 거친다. 이 과정에서 어느 단계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낄까? 얼마 전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2017년 한국리서치 조사) 생애주기를 13단계로 나눠 어느 때 가장 행복도가 높은지를 조사한 결과였다.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도 조사에서 갓 결혼한 신혼부부와 갓난아이나 어린이 자녀를 둔 부모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다고 나왔다. 특히 갓난아이를 둔 부모는 인덱스 116(전체 응답자의 응답을 100으로 했을 때의 상대적인 값)으로 가장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시니어(노년) 싱글의 경우, 갓난아이를 둔 부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7 인덱스를 기록, 가장 불행하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중년 싱글(mature single)로서, 인덱스 77을 기록했다. 네 번째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류는 갓 성인이 된 청년 싱글들이었다. 이들은 인덱스 103으로, 결혼했는데도 아이들이 없는 사람들 다음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젊어서나 늙어서나 싱글은 대체로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이가 없는 부부들도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갓난아이를 둔 부부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아이가 집안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가족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존재로 입증하는 셈이었다. 결론적으로 행복의 유무는 결혼여부와 자녀 유무가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조사에서 생애주기별 고민거리가 뭔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미성년자나 결혼 전까지는 본인의 학업 성적이나 진학, 취직 걱정이 단연 상위에 랭크됐다. 신혼 초에는 재산 증식에 대한 관심을 쏟다가, 갓난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자식 교육에 대한 걱정이 단연 1위였다. 중년 이후부터는 건강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자식들이 잘 자라면서 공부도 잘 하고, 좋은 짝을 찾아 결혼을 제때 하고, 노년 건강도 좋으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싶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두 가지의 고민과 말 못 할 고충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고민과 고충을 어떻게 극복하고 행복도를 높일 것인가. 쉽지 않다. 50대 중반을 넘어가는 필자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본다. ‘한국 최고의 신문 조선일보, 영향력 1위 신문 조선일보’라고 한창 자랑하며 신문산업의 전성기를 구가할 당시 조선일보 기자라고 내세우던 그 때 ‘과연 나는 행복했던가?’라고. 그 때는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갓난아이가 있었고,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시기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서 어디든 가면 대접을 잘 받았다. 월급도 많았다. 신문·방송 포함한 기자 월급으로서 최고 대우를 받았다. 맥주 500cc 한 잔을 마시고 음주운전에 적발됐을 때도 그냥 넘어갔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곰곰이 돌아봤다.

 매일 매일 신문 만드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독자들 반응은 하루 단위로 돌아왔다. 지면을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 순식간에 평가 받았다. 그 평가에 따라 일희일비했다. 그 평가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술뿐이었다. 일을 마친 후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었다. 혹시 몸이 안 좋아 며칠 쉬면, 술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주변에 누군가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을까 하며 두리번거렸다. 젊었을 때 몸을 혹사했고, 건강은 악화됐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면 자연 돈을 쓰게 된다. 아내는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느냐고 다그쳤다. 부부싸움의 발단이었다.

 모든 현상은 양면성을 지닌다. 하나의 현상에 좋은 면이 있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면도 있다. 최고 신문의 기자로서 최고 월급을 받았지만, 그만큼 받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부정적 현상도 만만찮았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조선일보를 떠나 계열사에 있는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행복감을 느낀다.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해서 한다. 과거와 비교해서 월급은 조금 줄었지만 행복감은 훨씬 높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족하면서 하는 일이 조금 줄어든 월급과 훨씬 줄어든 스트레스를 상충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욕심도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듯하다. 물론 나이탓도 있겠지만. ‘아, 세상이치가 내려놓는 만큼 내가 커지는구나.’라고 절로 깨달아진다.

 인간은 결코 모든 걸 다 손에 쥘 수 없다. 욕심을 부리는 만큼 스트레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분명하다. 그 스트레스는 결국 주변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이든지 악영향을 미친다.

 결론은 분명하다.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선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만족하기 위해선 욕심을 내려놓는 게 우선이다. 남에게 말 못 할 고민과 고충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욕심이다. 그 고민과 고충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면 행복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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