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문명개벽

글. 소광섭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다. 산업의 지대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산업혁명이라 하지만, 인공지능이 불러올 문명 전반의 대변혁을 고려하면 산업혁명이란 명칭으로는 오히려 부족한 측면이 있다. 왜냐면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있어온 세 차례의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대개벽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쯤 된다. 지구의 역사에서 비약적 대변화는 생물의 출현이었다. 무생물의 세계에 생태계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생물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약 38억 년 전쯤이다. 생명은 38억 년 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였는데, 이 긴 진화의 정점은 인간의 출현이었다. 겨우 7만 년 전에 나타난 호모사피엔스는 기존의 생명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력, 즉 지능을 갖춘 생명체이다. 인간의 출현 후 생태계는 되돌릴 수 없는 질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그 이전 생태계의 주요 특성이었다면, 인간은 도시 건설과 같은 인공환경 즉 문명이란 것을 지구에 가져왔다.

 이제 인공지능의 출현은 생명 진화의 긴 역사에서 인간의 출현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스스로 에너지를 얻는 기계동물과 식물로부터 먹이를 얻는 자연동물이 섞여 사는 상황이 올 뿐만 아니라 기계동물들이 주도권을 잡는 그 런 세계가 전개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지능들이 인간과 함께 달과 화성에서 어울려 사는 우주 생태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 우주 생태계는 지구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오늘날도 생화인지 조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잘 만들어진 조화를 볼 수 있지만, 앞으로는 어린이와 놀고 있는 강아지가 자연생인지 인공지능 강아지인지 구분이 안 될 수도 있고, 날아다니는 벌레가 자연의 벌레인지 인공의 드론인지 모를 수도 있다. 백화점의 판매원이 인공인간인지 정말 사람인지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생명체인지 인공생명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문제가 더 이상 수도자나 철학자들의 지적 추구에 그칠 수 없는 일상의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과만 사랑하고 어울려야 하나, 아니면 내 말을 더 잘 알아듣고 잘 놀아주는 기계인간을 사랑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현실적 문제로 인하여 ‘자연인간과 인공지능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영성시대의 도래

 그렇다면 인공지능 인간과 자연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능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같을 것이고 어쩌면 인공지능이 여러모로 우세해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언어로 하는 사고 활동이나 수학적 계산 등이 인간의 핵심 능력이라면 곧 인공지능에 뒤처질 것이고 따라서, 인류는 생태계 최고의 위치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이런 지적 능력보다 더 상위인 영성이 있다. 이 영적 특성을 계발하여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것이 종교의 중요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적 능력의 계발에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지적 능력에 대한 지나친 강조였다.
근대 사회에서 지식과 과학의 편중이 심했기 때문에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 즉 지능을 가진 생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교육 또한 지식 중심이어서 지능이 곧 인간 최고의 본성인 것처럼 보여 왔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강력한 지적 기능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지능에 있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본성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질 것이며, 따라서 영성을 계발하는 일에 모두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전의 산업혁명들을 통해서 힘쓰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지적 작업까지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되어 이른 바 물질개벽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를 맞게 되었다. 더 이상 근력이든 지능이든 노동을 주로 하는 사회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면 사람이 주로 할 일은 무엇일까? 다음의 정산 종사 법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주 활동은 정신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 오는 세상에는 사람들의 정신이 훨씬 밝아져서, 자기가 지은 죄복과 자기 성품의 내역과 전생의 모든 일들을 자기가 이생에서 살아온 젊었을 때 일 같이 잘 알 것이며,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이 쌍전 병행하는 시대가 될 것이니, 조금만 더 지내보라 참으로 좋은 세상이 오고 있나니라.” (<정산종사 법어> 도운편 21)

 이제 정신개벽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정신개벽은 지능에 바탕한 것이 아니고, 영성에 기반한 것이다. 요즘 좌선·명상 등이 서구에서 환영받고 널리 퍼져가고 있지만 동양에서도 전통문화가 아니라 중심 문화로 다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래는 불교나 원불교에 매우 좋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교화나 교도 훈련을 인공지능의 시대 상황에 맞추어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방과 협업으로 미래사회 대비하자

글. 김도훈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이미 1년여가 지났다.
 
 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기업과 관련 기관들이 이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를 논의하기 위한 각종 세미나, 토론회 등은 지난 1년여 동안 봇물 쏟아지듯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킨 것은 역시 알파고 쇼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더 큰 충격으로는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핵심이라 할 기술인 ICT에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온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은 세계 25위로, 2위인 싱가포르는 물론 일본(12위), 대만(16위), 말레이시아(22위)에도 뒤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기술 수준(23위), 기술 습득을 위한 교육 제도(19위), 인프라(20위) 등이 그런대로 평가를 받은 반면에  노동시장 유연성(83위)과 법적 보호 분야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역시 기술적 변화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실 위에서 언급한 준비와 논의들도 기술적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작년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내세운 후 이렇게 단시간에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게 만든 슈와브는 정작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초점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제도적 변화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초연결사회(ultra-connected society)가 될 것이므로 여기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 즉 사람과 사람, 정부, 기업, 단체와 개인은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을 미래사회 속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연결해서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 교단의 준비도 역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우리 교단도 우리 내부의 연결성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바깥 세계에서 오는 정보에 우리 교단을 연결시키고 그 반대급부로 우리 교단에서 생산된 정보도 바깥 세계로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개방과 협업’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다른 종교들과의 연결성, 다른 시민사회, 나아가서는 정부와 기업들과의 연결성을 높이고 이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에서 생산된 정보를 바깥 세계에 내놓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홍보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 교단과 함께 협력할 수도 있는 외부의 사람들과 단체들에게 우리 교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이 더욱 강해야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세상의 흐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른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재들이 육성되어야 할 것이다.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정확하게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 교단이 역점을 두어야 할 지역, 분야, 나아가 해외 교화 대상국가들의 변화 등을 포착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반대로 우리 교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리고 원불교의 교리, 법설, 교단 단체들의 활동 등의 정보들을 바깥 세계가 접할 수 있게 하는 ICT 정보로 만들어내는 인력들도 교단 전체 차원에서는 물론 각 교구, 지구, 개별 교당 차원에서도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측면에서의 대비와 함께 이러한 변화가 불러일으킬 사회적 변화에도 주목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더욱 구체화된다면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시간을 많이 투입해왔던 일들 즉, 간단한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사무, 경리, 분석, 그리고 많은 개인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기계와 로봇들이 대체할 만한 정신노동 영역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으면서 인간을 지배할 가능성조차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대종사님이 외치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가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예견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즉, ICT 기술과 로봇 기술이라는 물질문명이 인간의 정신능력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될 무력감, 황폐화를 덜어주고 자존감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로써 원불교 정신을 살려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래교화의 초점을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쉽게 정신의 힘을 재충전할 수 있는 선 도량을 마련하는 데 맞추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정신의 힘을 키우는 시간적 여유를 더 많이 가지는 사회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우리 교단의 두 번째 핵심 키워드는 ‘상시적인 열린 정진 도량’의 마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일주일에 한두 번 모여서 법회를 보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교도들만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매일 어느 시간에나 각자 필요한 때에 이런 정진 도량을 드나들면서 좌선, 염불 등을 통해 지치기 쉬운 정신의 힘을 다시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은 어느 사회 분야나 마찬가지로 우리 교단에도 이른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대종사님의 정신을 더욱 넓게 펼칠 기회라는 긍정적 자세를 바탕으로 ‘개방과 협업’을 준비할 인재를 양성하고 (전무출신의 양성만이 아니라 재가교도의 활용까지 포함하여), 교단의 교화 장소도 ‘상시적으로 열린 도량’의 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기회

글. 이건종

 오래전에 본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 1997)’에서는 벌레 형체의 외계 군단과 맞서 싸우던 주인공 자니 리코가 영화 중간에 공격을 받아 전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체복구 시스템에 들어가 손상된 다리를 3일간 재생하여 다시 전쟁에 나가게 된다. 이 영화와 같이 생체 조직을 재생하는 기술은 먼 이야기로만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어젠다 카운슬’에서는 2025년까지 3D 프린터인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기술로 제작된 간이 이식될 가능성을 76%로 예측하고 있고, 이미 간단한 귀 조직의 제작은 성공하였다.

 3D 프린터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공장이 아닌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발달되는 추세를 본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집집마다 3D 프린터를 통하여 마켓에 가지 않아도 물건을 직접 생산하여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2·3차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제조업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3D 프린터를 비롯한 사물인터넷, 로봇 기술, 생명과학, 인공지능, 증강현실(VR)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빠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술적 발달이 우리 삶에 빠르게 침투되어 지금까지의 윤리나 법칙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벽에 부딪히게 할 수도 있게 된다. 앞으로 10년 안에 운전자 없이 주행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10% 이상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어 이로 인해 화물운전수나 택시운전사 등의 직업은 없어질 것으로 보이며, 자율주행자동차와의 교통사고에서 그 책임범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새로운 규칙이 생길 것이다.

 인터넷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파일을 집에서 열어 작업을 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여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어 업무의 효율성이 늘어난다. 또한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자동차에 장착된 인터넷서비스를 통하여 해외 여행 중에도 내 차에 대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집에 있는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졌는지를 체크할 수도 있게 하여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Mobile)을 통하여 본인 자동차를 언제든지 택시로 운행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우버택시(Uber)’나 자동차를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비용을 내고 사용하는 ‘쏘카(Socar)’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빈 집을 빌려주는 ‘에어비엔비(Airbnb)’는 내 집이 비어 있는 시간을 사전에 등록해 놓으면 여행자들이 싼 가격에 비어 있는 내 집을 자기 집인 양 머물렀다 가는 서비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모아 좋은 집을 구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저녁 시간뿐이며, 직장에 있거나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 비싼 집은 그저 빈 집으로 있을 뿐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에어비엔비’를 통하여 비어있는 시간을 최소화하여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쏘카’를 이용하면 굳이 비싼 차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는 ‘소유’가 중요하였다면 앞으로는 ‘공유’가 중요해질 것이며, 그럼으로써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은 물건을 만드느라 ‘낭비’할 것이 아니라 함께 활용하며 사는 ‘공생’이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당은 어떤가? 일주일에 법회 몇 시간을 위하여 비싼 건축비를 들여 건물을 지어야 하고 관리운영비를 지출해야 했다. 이는 효율적이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상지도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까운 호텔의 큰 룸을 빌려 사람들과 명상을 하거나 큰 성당을 빌려 요가를 가르치기도 한다. 앞으로는 교당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사람들을 모아 교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언제 어디든지 교당이 될 수 있다. 만약 교당건물을 소유하게 된다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시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거나 대여해줄 수 있도록 활용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예측하기 어렵고 걱정이 되는 기술은 로봇과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으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것을 보며 그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서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라는 걱정이 된다.

 14세기 영국에서는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려 할 때에 사제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면 성직자는 지식을 독점할 수 없게 되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주인과 항상 함께 하면 누구보다도 주인을 잘 알고 있어서 지금 주인의 마음이 울적한지 화가 났는지 등 심리 변화에 대하여 누구보다 빠르게 알게 되며, 그에 적절한 법문이나 음악, 강연, 염불, 명상, 좌선 등 주인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유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성직자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로봇과 인공지능에게 제공할 다양한 콘텐츠와 준비된 인재를 준비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성서를 영어로 제공하면 성직자의 역할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영어 성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세의 확장과 성직자 역할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양질의 다양한 원불교 콘텐츠는 지금보다 원불교 전법을 보다 넓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낙원세계로 인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세밀하게 교리를 콘텐츠화 시키는 작업과 이를 위한 인재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 인한 실직이나 개인주의화, 인간성 상실과 같은 부정적인 면에 대처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도 원불교가 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초연결·초융합·초지능이다. 초연결은 사람·사물 등 개체 간의 실시간 데이터 공유가 증가됨을 의미하며, 초융합은 이러한 데이터 공유를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종(異種)기술 및 산업 간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산업이 출현하게 됨을 의미한다.

 원불교는 어느 종교에서도 갖고 있지 않은 ‘열린 교리’를 가지고 있다. 이 교리를 바탕으로 열린 교화구조(Open Platform)를 만들어 어느 종교나 문화, 과학, 사회, 인종, 국가와도 연결하고 융합하며 공유할 최적의 콘텐츠를 준비한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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