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를 지내주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영가

“옆에서 안내를 한다는 건 좋은 데로 가라고 인도하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혼자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취재. 정은구 객원기자

 “재를 지내주면 영가가 좋은 곳으로 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김도진 원로교무 역시 이러한 사람을 만났던 적이 있다.
 그가 일선 교당에 근무하던 시절, 교당 근방에 살던 사람이 열반하게 된다. 그와는 평소 인사를 하며 알고 지내던 사이.
 김 원로교무는 경종을 들고 추모를 위해 찾아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았는데, 가는 길을 혼자 보내면 되겠느냐?”며 넌지시 가족들에게 천도재 의사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몇 번의 번복 끝에 천도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옆에서 안내를 한다는 건 좋은 데로 가라고 인도하기 위한 거예요.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혼자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날 이후, 그 집안이 시끄럽고 자녀들이 아프게 되는 등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죽은 사람의 부인이 교당을 찾아왔다.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요?” 집안 근황을 들은 이 원로교무는 죽은 남편이 좋은 곳을 못 갔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갈 데가 없으면 어딜 가겠어요? 살던 데로 돌아오겠죠.” 산 사람이 가는 길과 죽은 사람이 가는 길은 엄연히 다른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곁에 있으니 그 가정이 계속 안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 부인은 곧 재를 지내기로 결정했고, 그제야 집안의 시끄러움이 가라앉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백 년 넘은 재를 지냈던 적이 있어요.” 이 원로교무가 서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다른 교당 교무의 연락을 받고 재를 지내러 간 적이 있었다. 재의 주인공은 무려 백 년 전 사람. “유명한 변호사 교도가 교당 설립에 기여를 했대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후로 잠을 자면 하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꿈에 나타나더라는 거예요.” 주변에 열반한 사람이 있나 싶어서 확인해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군청에 찾아가 조상들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 것.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열녀였던 새색시의 사연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새색시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부모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낳지 못한 채 독수공방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터. 결국 어느 날, 부모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주고 난 새색시가 집 앞 감나무에 목을 매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열녀가 되었지만 백 년이 넘도록 몸을 받지 못했던 거죠. 그러다 신심이 좋은 조카를 통해 몸을 받으려고 왔더라고요.”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그 과보로 몸을 빨리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가들도 자기 재를 지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요. 그래서 평소에 인연을 잘 지어놔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예요.”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