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하다

글. 김정탁

 노자의 말씀 중에 “유무(有無)는 서로 살아가며, 난이(難易)는 서로 이루며, 장단(長短)은 서로 비교되며, 고하(高下)는 서로 기울며, 음성(音聲)은 서로 조화하며, 전후(前後)는 서로 수반하므로, 성인은 무위(無爲)로써 일을 처리하며 말 없는(不言) 행동으로써 가르침을 행한다.”는 말이 있다.(<도덕경> 2장 참조) 여기서 음(音)과 성(聲)은 어떻게 다른가? ‘음’이 인공적인 소리라면, ‘성’은 자연적인 소리를 뜻한다. 그래서 음악(音樂)은 현악이나 기악처럼 인공으로 만든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라면, 성악(聲樂)은 사람의 목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소리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언젠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갈매기 울음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벗 삼아 연주하고 싶다.’고 소개한 기사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이 때 큰 감동을 받았다. 피아노 소리가 ‘음’이라면 갈매기 울음소리는 ‘성’인데, 피아노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합쳐지면서 노자가 말한 음성의 상화(相和) 상태가 이루어져서이다. 노자와 장자에 따르면 이런 연주는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는 연주이다. 중국 고대 최고의 음악인인 소문(昭氏)과 사광(師曠)이 아무리 소리에 밝아도 이들의 연주가 재지(才智)에 그칠 뿐이라고 장자는 혹평한다.(<장자> 제물론 참조). 그러면서 장자는 황제(黃帝)가 동정의 들판(洞庭之野)에서 연주한 함지의 음악(咸池之樂)을 통해 최고의 연주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함지의 음악(咸池之樂)은 가상의 악곡인데 황제가 만든 것이라 하여 최고의 악곡이란 명성을 얻고 있다. 황제가 어느 날 이 악곡을 가상의 인물인 북문성(北門成) 앞에서 직접 연주를 했다. 황제는 처음엔 이 악곡을 사람(人)이 정한 규칙에 따라 ‘연주하고(奏)’, 그 다음엔 자연(天)의 흐름에 따라 소리를 ‘밝히고(徵)’, 그 다음엔 예의(禮義)의 질서를 갖춰 ‘행하고(行)’, 마지막으론 무위자연의 경지인 태청으로 ‘세웠다(建)’. 여기서 연주하고, 밝히고, 행하고, 세우고의 표현을 ‘~’로 에워싼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연주했다고 말해도 상관이 없지만 연주에서 밝힘으로, 또 행함으로, 그리고 세움으로의 이동은 연주의 발전 단계를 장자가 애써 구분했다고 보아서이다. 먼저 황제는 함지의 음악을 사람(人)이 정한 규율에 따라 연주했다. 그러자 사계절이 번갈아 일어나듯이 함지의 음악 소리가 순환하면서 생겨났다. 이 때의 소리는 한 번은 성하고(盛) 한 번은 쇠하는데(衰), 소리의 이런 성함과 쇠함은 문무(文武)에 의해 차례대로 잘 다스려졌다. 게다가 소리가 한 번은 맑고(淸) 한 번은 탁했는데(濁), 소리의 이런 맑음과 탁함도 음양(陰陽)에 의해 잘 조화되었다. 그 결과 황제가 연주한 함지의 음악은 흘러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또 동정의 들판에서 동면하던 벌레(蟄蟲)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황제는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로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래서 연주가 홀연히 끝나는가 하면 다시 홀연히 시작했고, 연주가 그치는가 하면 다른 연주가 다시 생겨났고, 연주가 분노해 쓰러지는가 하면 다른 연주가 다시 일어났다. 소리의 변화가 이처럼 무궁무진하자 북문성은 다음에 어떤 소리의 변화가 올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북문성은 그만 두려워진(懼) 것이다.

 다음으로 황제는 함지의 음악을 자연의 흐름에 따라 연주했다. 그러니까 음양의 조화(陰陽之和)로 소리가 이루어지고, 해와 달의 밝음(陰陽之明)으로 소리가 밝혀졌다. 그래서 소리가 짧거나 길거나, 부드러워지거나 강해지더라도 소리의 이런 다양한 변화들이 하나로 가지런히 정리될 수 있었다. 물론 정리를 위해서 황제는 낡은 규범(故常)에 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연주를 하다 골짜기를 만나면 골짜기를 자연스레 채우고,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자연스레 메웠다. 이런 식으로 황제는 마음의 빈틈을 막고 정신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연주 기량을 소리에 맞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소리는 맑게 울리고 리듬은 높게 탁 트이면서 귀신도 그윽한 제 자리를 지키고, 해와 달과 별도 제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황제는 연주를 끝낸 것처럼 소리를 그치게도 하고, 또 연주를 멈추지 않은 것처럼 소리를 흐르게도 했다. 북문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를 알 수 없고, 아무리 바라보아도 이를 볼 수 없고, 아무리 쫓아가도 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니 황제가 볼 때 북문성은 사방이 확 트인 길에 멍하니 서 있었거나 아니면 마른 오동나무에 몸을 기대어 신음하며 소리를 내는 사람 같았다. 북문성의 마음은 이처럼 아는 데서 막히고, 눈은 보는 데서 막히고, 힘은 이루는 데서 다함으로써 공허함으로 가득 차 마음이 흐물흐물해졌다(委蛇). 그리고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니 나른해진(怠) 것이다.

 다음으로 황제는 함지의 음악을 예의의 질서를 갖춰 연주했다. 그러니까 나른하지 않는(無怠) 소리가 연주되면서 자연 그대로의 리듬(自然之命)으로 조화가 이루어졌다. 그러자 만물이 뒤섞여 한 곳에 모인 것처럼 소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고조된 음악(林樂)엔 아무런 형체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 퍼져나가 소리가 끝나지 않는가 하면, 또 아득해져서 소리가 사라지기도 했다. 게다가 소리는 모든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그윽한(窈冥) 곳에 자리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소리가 죽은 거라고,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거라고,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지 않은 빈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의 평이 이렇더라도 소리는 가면서 흐르고, 흩어져 옮겨가면서 일정한 소리(常聲)에 구애받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 점을 의심하여 성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성인은 만물의 참 모습에 통달하고, 하늘의 운명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천기(天機), 즉 자신의 오관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외부의 자극에 오관이 잘 반응하고, 또 말이 없더라도 마음은 즐거워져 하늘의 즐거움, 즉 천락(天樂)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의 대표 격인 유염씨(有氏), 즉 신농씨도 함지의 음악을 듣고 이를 기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함지의 음악은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보려 해도 보이지 않지만, 그 소리와 형체는 천지에 가득 차고 세상을 감싼다.’ 이 연주를 들은 북문성은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惑) 것이다. 마지막으로 황제는 함지의 음악을 무위자연의 경지인 큰 맑음, 즉 태청(太淸)으로 세웠다(建). 어떻게 해서일까? 황제가 함지의 음악을 두려운(懼) 분위기로 연주를 시작하니까 북문성은 두려워져 연주 소리가 그의 귀에 가득 찼다(崇). 이어서 황제가 나른한(怠) 분위기로 연주하니까 북문성은 나른해져 연주 소리가 그의 귀에서 달아났다(遁). 마지막으로 황제가 혼미한(惑) 분위기로 연주를 끝내니까 북문성은 정신이 혼미해져 어리석어졌다(愚). 그렇게 북문성이 어리석어지면서 그가 도를 터득한 것이다. 북문성이 도를 몸에 지니면서 도(道)와 하나가 되었다. 즉 북문성은 도와 통한 것이다. 이것은 황제가 함지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태청으로 세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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