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 혁신으로 ‘종교개벽’의 길을 열다

글. 박윤철

원불교 100년사에서 변산시대 5년은 회상 공개를 위한 ‘준비시대’로서 비교적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그 짧은 5년간 이룩한 업적은 눈부신 바 있다.
변산시대 5년 동안 이룩한 의미 있는 성취들을 간략하게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한국 불교계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불교의 교리와 제도에 대한 심층 연구 및 불교혁신을 통한 종교개벽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둘째, 회상(會上) 공개에 필요한 인연들의 결속을 도모하는 동시에 소규모의 종교 공동체 형성이 시작되었다. 셋째, 장차 개벽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교법 곧 ‘교강(敎綱)’ 선포 및 초기교서(初期敎書)를 초안하였다. 넷째, 일찍이 영산시대에 이미 짜 두었던 단(團)을 시험적으로 조직하여 그 합리적 운영 방향을 모색했다. 다섯째, 모여든 소수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새로 제정한 ‘교강’ 중심의 교리훈련에 착수했다. 요약하자면, 변산시대 5년간 이미 회상 공개에 필요한 제반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변산시대 5년간의 업적 가운데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 것처럼, 불교계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불교 교리와 제도에 대한 심층적 연구 및 그 연구를 기반으로 한 불교혁신의 길을 찾아내고자 했다는 점이다.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 그리고 경상도로부터 이주한 훈산 이춘풍 선생 등이 주축이 된 불교 교리와 제도에 대한 연구는 ‘불법연구회창건사’에 설명되어 있듯이 <조선불교혁신론(朝鮮佛敎革新論)> 초안
으로 구체화된다.

 <조선불교혁신론> 초안의 배경과 의의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조선불교혁신론>의 핵심은 첫째 외방(外邦)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둘째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셋째 분열된 교화(敎化) 과목을 통일하기로, 넷째 등상불 숭배를 불성 일원상 숭배로 혁신하는 데 있다.이 가운데에서도 오랜 기간 불교 신앙의 중추를 이루어 온 등상불 숭배 곧 등상불 신앙을 불성일원상 숭배 곧 일원상(一圓相) 신앙으로 혁신하자는 것이 혁신론의 핵심 중에서 핵심이다.

 필자와 교분이 있는 독실한 기독교인 가운데 한 분이 현재 군산YMCA 사무총장으로 있는
유희영 씨다. 10여 년 전 필자는 유희영 씨를 비롯한 호남지역 YMCA 사무총장 10여 명과 익산에서 공부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유희영 씨는 필자에게 소태산 대종사의 불교혁신, 그 중에서도 등상불 신앙을 일원상 신앙으로 혁신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저는 소태산 대종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업적이 바로 등상불 신앙을 일원상 신앙으로 혁신한 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종사께서 등상불 신앙을 일원상 신앙으로 바꾼 것은 단순히 불교혁신을 하자는 데 그 본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500여 년 전 루터가 중세 유럽에서 종교개혁을 했던 것처럼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일원상 신앙을 통해 진정한 종교개혁을 하고자 한 데 그 참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종사님을 한국의 루터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원불교 바깥, 그것도 기독교인으로부터 대종사의 불교혁신의 본의에 대해 들으면서 필자는 유 총장이 소태산 대종사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조선불교혁신론>의 본의가 재래의 조선불교 혁신이라는 좁은 의미의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교혁신을 매개로 후천개벽 시대에 어울리는 미래 종교의 길을 여는 이른바 ‘종교개벽(宗敎開闢)’에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타자(他者)를 통해 비로소 자기 안의 보물을 확인한 셈이다.
변산시대 5년을 돌아보면, 그것은 한 마디로 불교혁신을 매개로 한 ‘종교개벽’의 길을 완정(完定) 하려는 데 있었으며, 그 개벽의 방향이 담기는 초기교서가 바로 <조선불교혁신론>인 것이다. 변산시대에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 종사, 그 외 소수 제자들의 각고의 노력에 의해 초안되는 <조선불교혁신론>이 지향하는 바가 재래의 ‘불교혁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 궁극적 지향은 ‘불교혁신’을 매개로 한 종교개벽의 길을 완정하고자 했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2세기 원불교를 사는 모든 원불교인들이 명심(銘心)하고 명심해야 할 요체이다.
지난 2015년 8월, 원로 원불교학자인 융산 송천은 종사(宋天恩 宗師)와 필자가 나눈 대담 한 대목을 소개한다.      
               
“대종사께서 초기에 불교를 핵심으로 종교를 이해하면서 그때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얘기하셨잖아요. 그것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할 일이 많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에 대해서요?”
“그래요, 그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여. 그때 필요해서 그 양반(대종사) 계실 적에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했다는 식으로 그렇게만 이해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과거 얘기로만 보지 말라 그 말씀이군요?” (<백년의 유산, 소태산 11제자의 증언>, 모시는 사람들, 2017,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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