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바보

글. 김명규

이제 만 네 살이 된 손자.
엊그제 낳은 것 같은데 벌써 가방을 메고 유치원에 간단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못 보지만 아들 내외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주는 사진 속 손자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멀리 있지만 그 커가는 모습이 옆에 있는 듯 생생하게 보인다.
재작년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사 가는 날 기차를 탄 모습을 사진으로 봤을 때는 콧날이 찡했다. 같은 서울에 없다는 게 섭섭하다.
내 자식을 키울 땐 무심했는데, 손자는 이유 불문하고 좋다. 평소에 다리가 아파서 앓다가도 손자가 내 다리 위에 걸터앉아 TV를 보면 안 아픈 척 한다. 장난감 자동차를 거실에서 끌고 다녀서 거실 마루에 흠집이 나도 모른 척한다.
얼마 전에는 손자가 문갑 위에 올려놓은 붓을 서너 개씩 들고 다녔다. 아끼는 붓이었지만, 그 붓으로 먼지를 털어도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아이들을 키울 땐 아이가 너무 울어 헤드폰을 끼고 잤던 생각이 난다. 그 일로 아내에게 두고두고 원망을 들었다. 그런데 손자에겐 무한한 사랑을 주게 되다니, 내리 사랑은 참으로 신기하다.
작년 이맘때엔 손자도 볼 겸 지방으로 벚꽃놀이를 다녀왔다. 많이 커서, 안고 있기가 무거워 금방 내려놓았다.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해 친구도 제법 사귀었다고 하였다. 뛰어노는 모습이 귀엽고 또 낯선 곳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 고맙다. 돌아오는 날엔 무슨 배 모양 블록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자그마한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을 하였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그 모습이 떠올라서 며칠 후 장난감 가게에 갔다. 배 모양의 블록을 택배로 보내니, 얼마 후 장난감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이 돌아왔다. 이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는 손자 바보가 되나보다.
무럭무럭 크는 손자의 사진을 집 곳곳에 놓았다. 내가 늙어갈수록 아이는 커가지만 그것 또한 괜찮다 싶다. 활짝 웃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봄에는 손자와 꽃구경을 갈 참이다.
집 한쪽 벽에는 손자가 올 때마다 키를 잰 눈금이 남아 있다. 이제 얼추 허리춤이다.
올해에는 얼마큼 컸으려나. 지난번에 재어 놓은 눈금을 어림해본다.


감사하면 변화한다

글. 성숙진

저는 가야금 연주자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니 햇수로 보면 20년 넘게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라 왜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야금이 마냥 재미있었고, 가야금을 배우러 가는 날이 가장 좋았던 것만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야금이 취미가 아닌 전공이 되었을 때는 가야금 때문에 행복한 날들보다 힘들고 눈물 흘린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음악을 업으로 삼아서 참 좋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화려한데다 노동이라는 단어와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음악은 듣고 경험하는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 같이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입장에서 그런 결과물을 내기까지는 힘들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더 좋은 음악, 더 잘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매 순간 욕심내고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해 고통받으니까요.
저는 어떤 일에서든 제가 항상 제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덕분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상위권 성적을 항상 유지했고, 가야금을 연주하면서도 대회 수상, 협연, 독주회 등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제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러움과 아쉬움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자책은 점점 제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욕심과 선망만 가득했던 마음으로 연주했으니, 그 시간에 감동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지쳐갈 때 마음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아주 어렸을 때 원불교에 입교했지만, 제가 제 뜻을 가지고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는 불과 1년을 조금 넘겼을 뿐입니다. 그러자 예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욕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무조건 잘 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더 긴장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해 자책하느라 연주를 즐기지 못했지만, 요즘에는 마음에 공들이고 내 연주에 공들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연주하는 동안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실수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저를 더 다듬을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합니다. 실수에 연연하기보다는 연주를 잘 끝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 한 끗 차이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제가 연주하는 음악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 따뜻하고 감동적인 연주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작은 변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처 몰랐던 큰 은혜 

글. 지자은

어른이 되고 나서 어릴 적 기억이 불현듯 생각날 때가 있다. 그때는 그것이 감사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감사였고, 많은 분들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여섯 살 때,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불광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내 손에는 목탁이 쥐어졌으며,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어른들이 읊는 일원상서원문을 나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는 가족법회나 할머니제사 때만 교당에 나간 기억과, 청년회가 없던 불광교당을 뒤로 하고 어느 교당을 다녀야 하는지 고민을 안고 이곳저곳 헤매는 시절을 보냈다.
올해 3월 ‘북촌에서 선진님을 만나다’라는 문화기행에 여러 교도님들, 청년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30년 넘게 불광교당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하는 첫 여행.
여행 전날 나는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지각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안국역에 도착하니 어릴 적 나를 예뻐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다. 첫 사랑을 만나는 기분이었달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챙겨가며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북촌을 걸었다.
오랫동안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같은 스승님 교법 아래, 함께 원불교 마음공부 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이날 문화기행을 통해 깨달았다.
올해 불광교당은 새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5월 14일에 신축 봉불식이 열린다. 나는 지금 불광교당 청년회장과 서청톡톡(서울교구 청년 합동법회)팀장을 맡으며 원불교 신앙을 해나가고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마냥 받기만 하고, 당연한 줄 알며, 감사함을 모르다가,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서야 부모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깨닫곤 한다는 말이 있다. 불광교당의 수호신 교도님들의 은혜도 이와 같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함께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마음공부에 정진하여 제가 받은 은혜를 많은 청년들에게 보답으로 전하겠습니다.”


청년세대 마음 울리기

글. 김의찬

요즘같이 경쟁적인 사회에 사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성공을 위해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친구 관계나 연애도 잘 해나가야 하고, 새로운 관심사도 찾아야 하는 세대이다. 이런 가운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에 근무하는 여러 젊은 교무님들이 젊은 미국인들을 위해 5년째 진행하고 있는 ‘영피플 훈련’. 그 훈련에 참석하기 위해 원다르마센터로 향하던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감정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는 일에 차질이 생겨서 예정시간보다 세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착 후 시야에 들어온 드넓은 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보자 피곤함과 짜증은 일순 날아가 버렸다.
스트레스에 눌리지 않고, 그 순간에 깨어있으니 주변의 아름다움이 확연히 들어왔다. 마음을 비우고 그 순간에 마음을 두자, 나를 둘러싼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이 절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침 선(禪)을 시작할 때는 캄캄했던 창에서, 선을 마치고 눈을 뜨면 어느새 생생한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진정한 평온함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뽀드득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는다거나, 앙상한 나무들을 바라본다거나, 마지막 석양빛이 붉은 주황빛에서 어두운 자주색으로 변하며 지평선 아래로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었다. 이런 체험은 온몸에 충만한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영피플 훈련 중에는 누구나 묵언 수행(noble silence)을 해야 한다. 질의문답 시간이나 회화 시간을 제외하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규정이다. 묵언 수행은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고, 순간순간 깨어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으니 나 자신을 산란하게 하는 외경이 없게 되고, 따라서 식사를 할 때 마음을 바라보며 일심으로 먹게 되었다. 식사 후 휴식 시간에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거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대지 위에 펼쳐져 있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보냈다.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도, 식당에서 어디에 앉아야 하나 하는 어색함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하는 걱정도 없었다. 사람들과 말없이 소소한 교감을 할 때에도 아주 평화로움을 느꼈고, 끼리끼리 모이는 일이 없다 보니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와 같은 수행을 함으로써 스스로 생각이 더 깊어진 것 같고,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지게 될 이 시점에 안으로 차분하게 정리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영피플 훈련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감정의 동요, 스트레스와 자신감 부족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마음의 균형과 안정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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