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록 머리
글. 이도심 안암교당

앞머리를 잘랐다. 자르고 나니 주변 사람들의 온갖 평가들이 난무하다.
생각해보니 이전 머리에는 더 많은 의견들이 분분했다. 초록색 브릿지를 넣었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파격적이었던지 많은 말들이 이어졌었다. 그래서 머리를 해준 엄마에게 가서 초록 머리를 다시 염색해달라고 했다. 그때 엄마는 “네가 예쁘면 되지.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마라.”고 하시면서 염색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동안 내 머리는 놀림 대상이었다. 머리에 매생이를 달고 다닌다고 하거나, 늦바람이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언제는 학원에서 사용될 프로필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머리색을 바꾸고 찍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초록 머리로 온갖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 검정 머리로 다시 염색을 했다.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간혹이었다.
나는 내 만족을 위해 머리를 했을까? 아니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머리를 했을까? ‘어울리네.’ ‘안 어울리네.’ 하는 말들로 순간 나의 결정에 후회를 했다면, 나는 나를 위해 머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스타일도 온갖 말들을 의식하며 고민하는데,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남을 위한 나로 살아갈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면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야 교당가자
글. 최법연 서김해교당

단장·중앙훈련을 하였다. 주제 강의로 원광대학교 교수인 남중교당 교도님이 교화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교화를 하려면 염원을 가지고 교당에 잘 나올 때까지 정성을 꾸준히 들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득 작년에 입교시킨 친구가 생각이 났다. 작년 4월에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나이도 비슷하고 김해에 살고 있다. 같은 날 그 친구가 유방암 수술을 하고 다음 순서로 내가 수술을 했었다. 서로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으면서 친하게 지낸, 여러 가지로 나와 인연이 있는 친구다.
교당에서 훈련을 받을 때 교화하는 방법으로 “일단 입교원서를 쓰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인연을 걸어야 하니 먼저 입교원서를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 친구에게 “앞으로 종교생활도 하고 행복하게 살자.”고 하면서 우리 원불교를 소개하고 입교를 권유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교당에 오기로 하고, 연등도 달아 달라기에 교당에 연등도 달았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초파일에 교당을 못 온다고 했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며 직장에도 다닌다고 한다. 가끔 전화로 소식을 묻곤 했는데,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입교만 시켜놓고 그 친구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 남편의 건강이 호전되도록 기도를 하면서 교당에 같이 다닐 수 있도록 정성을 다시 들여야겠다.


과장님의 쓴소리
글. 예도철 종로교당

나는 직장생활을 한 지 6개월째 되는 사회 초년생이다. 어느 과장님과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회사 입사 후 첫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다. 상사인 과장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 항상 혼을 냈다. 결과를 제출하면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잖니?” “이런 것도 몰라?” 등의 잔소리를 계속 했다. 계속되는 업무 압박에 나는 9~10시가 돼서야 퇴근을 하곤 했다. 화도 나고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하는 원망하는 마음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난 후 차장님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를 구박하던 과장님이 내 칭찬을 하셨다는 것이다. 차장님은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과장님의 방식이 좀 거칠어도 나쁜 뜻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야.” 이 말을 듣고 나자 과장님의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혼낸 뒤에 오셔서는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며 책을 가져다주셨던 모습 등이 말이다.
과장님이 나를 힘들게 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진짜 속마음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과장님에게 좋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그들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여러 면을 고려할 줄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회사에 잘 적응해 다니며 과장님과도 잘 지내고 있다.

봉사의 의미
글. 우형찬 충경교당

동기가 외박을 나가기 전, 갑자기 번개조 근무를 대신 서달라고 했다. 어제 이미 부탁했지만 거절했고, 동기는 됐다며 나에게는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기 귀찮다며 다시 부탁을 한 것이다. 알겠다고는 하였으나 괘씸한 마음에 짜증이 일어나려 했다.
요란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려 염주를 돌리고 15초를 세어보았다.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고 책에서 읽은 문구가 떠올랐다. ‘봉사는 조건을 따지지 않는 봉사가 되어야 본인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해주자고 마음먹었다.
외박을 나가는 동기에게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시간이 지나 사이버지식정보방(사지방)을 이용하고 있는데, 동기가 SNS로 ‘고맙다.’며 돌아올 때 내게 필요했던 섬유유연제를 사다준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고마움이 배가 되었다. 사지방 이용을 종료하고 아침의 일을 반조해보았다. 흔쾌히 시작한 봉사는 아니었지만, 요란한 마음을 멈추고 봉사에 대한 마음가짐과 그에 따른 인과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고찰
글. 김혜진 안암교당

예주 간사님이 어떻게 하면 피아노 악보를 보면서 양손의 계이름을 한꺼번에 읽고 다음 음으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연습을 해서 되었던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어떤 스킬이나 연습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접하고,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각각 읽으며 반복하고 연습하다보니 저절로 훈련이 돼버린 것이다. 비교적 어린나이에 시작해서 장시간에 걸쳐서 휴식기가 없이 접하다보니 더 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꼭 특정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을 활용하여 교법대로 살아가는 것도 똑같은 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때가 덜 꼈을 때 반복하여 훈련하면 습관과 업력을 녹이기가 더 쉬울 것이다.
예주 간사님이 악보에 계이름을 미리 적고 연주하거나 조금 더딘 속도로 연주하는 것처럼, 마음공부 역시 욕속심을 버리고 유무념으로 하나하나 토를 떼며 포기하지 않고 챙기다보면 자동화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경계에 무너지지 않고 공부삼아서 역량을 더 키우는 새학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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