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선 전통야철도검 기능전승자
왕의 검을 만들다

“그 검을 보는 순간 인생이 변했죠. 꼭 만들어 갖고 싶었어요.”
검을 처음 본 건 16살, 영친왕 제사 때였다. 어떤 검인지도 몰랐지만 보는 순간 눈과 마음을 빼앗겼다는 그. 검의 이름은 사인검, 이상선 전통야철도검 기능전승자(07-01호, 고려왕검연구소 소장)의 인생을 모두 바치게 한 왕의 검이었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죠. 그 이후 검에 푹 빠져 대장간과 목공소를 쫓아다녔어요.” 그때만 해도 천한 직업이라 천대를 받던 대장간 일. 양녕대군 15대손이란 이유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큰형은 “망치질을 하며 사는 인생은 두 가지”라며, 판사를 의미하는 나무망치와 대장장이를 가리키는 쇠망치를 보여주곤 둘 중 선택하라고 했다.
“고민은 없었어요. 쇠망치를 선택하며 ‘전통 검을 만들겠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전통 검 제작기술이 단절된 것. 이 때문에 대장간에서 쇠 다루는 법을 배우고, 목공소에서 칼집 만드는 법을, 함석집에서 칼장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가죽을 알기 위해 구두 짓는 일을 배우기도 했다. 전통 검을 전수해 줄 스승이 없어, 부분 부분 배운 기술을 합쳐 검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일도 힘들었지만 그렇게라도 배우는 게 좋았어요. 여기가 끝이 아니라 전통 검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기술을 합쳐 만든 칼날과 칼등, 칼집은 조립할 수가 없었다. 도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이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이 되어서야 허가증을 받았지요. 눈물이 날만큼 기뻤습니다. 검을 만들기 시작한지 15년 만에 공식적으로 검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사인검을 만들 때였다. 호랑이해(寅年) 호랑이달(寅月) 호랑이날(寅日) 호랑이시(寅時)에만 제작이 가능한 특별한 검. 범의 기운이 4번 겹치기 때문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해서 영물로 불리던 검이었다. 12년 만에 돌아온 경인년(2010년) 정월 8일 새벽 3시, 그가 붉게 달궈진 장작더미에 칼의 몸통을 집어넣었다. 16살 소년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참 신기하지 않아요? 어느 나라에서 길일을 잡아 검을 만들고, 그 검 중심에 28개의 별자리와 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문양을 새기겠어요? 우주의 기운을 다 모아 만든 거예요. 검에 정신을 담은 것이죠.”
전통 검을 만들면 만들수록 느낄 수 있는 그것. 한국의 전통 검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검의 칼등을 하늘, 칼날을 땅, 칼끝은 내 마음이라 불렀어요.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생김새도 달라요.” 전통 검의 날은 검의 끝에서 30cm만이 날카롭고 나머지 부분은 둔탁해 방어용으로 사용했던 것. 사람을 살리는 검, 그것이 그가 발견한 우리나라 전통 검이었다. “검은 곧 사람의 정신이에요. 정신을 맑고 바르게 가져야 제대로 된 검을 만들고 바르게 쓸 수 있지요. 검에 그 정신을 담고 싶었습니다.”
40여 년간 한 길만 걸어온 그. 그 사이 16살 소년은 머리 희끗한 장인이 되었고, 소년이 꿈꾸던 검은 비로소 그의 것이 되었다. 그는 만족하지는 않지만 욕심은 없다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욕심을 버렸어요. 즐겁게 충실하게 지금껏 했듯이 그렇게 검을 만들고 싶어요. 한 가지 꿈이 있다면, 전통 검을 알릴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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