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벽돌
글. 이명도(가명)

이사 중임 등기를 위해서 서류를 준비해 등기소에 갔다. 그런데 몇 가지 지적사항이 있어서 사무실에 돌아가 수정한 서류를 갖추고 다시 등기소에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잘못되었다며 다시 해오라는 답을 들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 밝히기 위해 이전 관할청 공문, 법인등기부등본 말소사항을 살펴보려고 등본을 열람했다. 그 결과, 잔여임기가 두 번에 걸쳐 이어지며 혼선이 생긴 사실을 알게 됐다. 세 번째로 등기소에 가서 이를 등기소 직원에게 설명했는데, 내 불찰로 의심했다.
담당 공무원에 대한 미운 마음이 치성하게 일어났다. 고요히 법당에 앉아있지만 내 마음은 전쟁터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때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 개의 벽돌을 쌓아 절을 지은 스님이 비뚤게 놓인 두 개의 벽돌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속앓이했다. 어느 날 큰 스님이 그 잘못 놓인 벽돌이 있는 벽 앞에 서 계시기에 곁에 다가가 변명을 하려고 하니, 큰 스님이 “나는 잘못 놓인 두 개의 벽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잘 쌓인 998개의 벽돌을 보고 있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곱씹다보니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작은 역경에 상대를 원망하는 내 모습에 대한 참회가 우러나왔다.
그날 등기 접수는 네 번째 방문을 끝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담당자의 성향을 받아들이자 좀 더 넓고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다.

해생어은
글. 안철승 덕진교당

“왕대가 죽었어!”라는 전화를 받고 문상을 갔다.
‘왕대’는 옛날에 같이 근무했던 김 아무개의 별명이다. 그는 “자식은 귀족으로 키워야 한다.”면서 어려서부터 귀족의 정신을 갖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도 고급으로, 의복도 명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고, 진학도 최고의 명문대만 취급했다.
재산이 엄청난 데다가 자식으로 둔 남매를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고 키웠기 때문에 성장과정에 오직 타력만 있을 뿐 자력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 친구는 자존심이 강했고,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 자녀는 돈을 쓰는 데에만 숙달되었고, 다른 능력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가끔 토막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모든 일이 기대처럼 이루어지지 못한 모양이다.
자식농사만 생각하면 발등을 찧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단다. 자식은 주색잡기에 빠져 돈 때문에 부모와 몇 번 충돌하더니 지금은 아예 행방을 모르는 채 살고 있다는 등….
나는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너무 썰렁한 것에 놀랐다. 상주도 없고, 조문객도 옛날 동료 몇 명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지난 일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리고 인생무상을 느꼈다. 나는 장례식장을 나오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허허! 해생어은(害生於恩)이구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 윤환규 잠실교당

가게가 있는 건물의 사정상, 가게 매출이 떨어져 아르바이트생 수가 줄었다. 그러다가 결국 알바생은 나만 남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맡는 일거리가 늘었다.
일이 늘어난 건 괜찮았다. 그런데 매니저 형이 있는데도 사장님은 내게만 일을 주었다. 그게 섭섭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내가 밉보일 만한 행동을 했나?’ 등 잠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평소에 늘 나를 챙겨주시던 사장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게가 사정상 어려워졌으니 돈을 주고 고용한 알바인 내 일거리가 잠시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순간 본분을 잊은 것과, 내가 손해 보는 것만 생각하고 늘 챙겨주시던 사장님에게 불평한 것이 부끄러웠다. 평소에 감사하며 살자는 다짐을 나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챙기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
글. 김천곤 북통영교당

교무님과 자주 대면하면서 가까이 하려는 교도님이 있다.
물론 교무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교도님은 교무님과 잘 지내다가 자신의 고집이나 의도에 맞지 않으면 법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문제를 만들어 교당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또 교무님과 충돌하여 교도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 전례도 있었다. 그걸 아는 나는 ‘교무님께 귀띔을 해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이전에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라도 그것이 그분의 전부는 아니며, 또한 고정된 모습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교무님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결과가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두 분의 몫이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는 어떤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 경계에서 나타난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정 관념에 묶여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어리석은 취사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경계였다.

레시피대로
글. 오법진 교무·정읍교당

오늘 아침에는 어제 교감님께서 준비해주신 매운탕거리로 생선 지리를 만들어보았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레시피를 따라했더니 제법 먹을 만하게 끓여졌다. 매운탕을 한 번도 끓여본 적이 없는 요리 초보자가 요리법대로 따라하기만 했는데도 요리가 하나 만들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우리의 정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잘 모를 때에는 스승님의 말씀만 그대로 따라가면 분명 바른 판단과 바른 실행을 할 수 있다.
정산 종사님께서는 “큰 도력을 갖추지 못한 교역자가 재를 모셔도 천도가 되나이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큰 도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예전에 정한대로 사심 없이 정성을 다하면 천도를 받게 되나니라.”고 해주셨다. 정해진 법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는 말씀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법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요리법대로 요리를 하면 맛있는 요리가 완성이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야 요리를 시작할 수 있듯이, 우리의 법도 ‘우리 법대로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믿음이 있어야 신앙도 수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부처 만드는 시작점이다. 오늘도 진실한 믿음으로 수행 적공하는 공부인이 되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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