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 한복연구가
한국전통모자 난모, 현대와 만나다

휘항, 아얌, 남바위, 풍차…. 그리고 이를 통틀어 표현하는 난모(暖帽).
이제는 이름마저 낯선 한국 전통 방한모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모자의 나라였어요. 종류도 많고 모양도 아름다웠죠.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거예요.” 강영숙 씨(한복 우수숙련기술자, (사)우리옷우리색연구회 회장)가 남바위, 볼끼, 아얌 등 고운 빛깔의 난모를 하나씩 꺼내 놓자 사라진 그곳에 징검다리가 놓인다.
“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어머니에게서 구전으로 기술을 습득했어요. 문헌을 보고, 들은 걸 재현하는 게 어려웠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한복제작에 입문해 이미 한복디자이너로서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던 그. 하지만 사라진 난모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거기에 맞는 바느질을 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한복과는 다른 재미와 도전이었다.  
“처네라는 난모를 재현할 때는 여기에 왜 이런 주름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완성하고 나서야 무릎을 탁 쳤지요.” 비녀가 있는 부분을 감싸기 위해 풍성한 주름이 필요했던 것. ‘우리 전통 방한모는 왜 정수리부분이 뚫려있는 형태일까’란 의문도 풀렸다. 상투와 첩지, 또 머리를 맑히기 위해 그런 형태를 띠었던 것이다. 재현을 거듭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형태에 한 번, 기능성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어느덧 난모는 그에게 꼭 지켜내야 할 전통이 되었다.
“대부분 전통이 그렇듯 어려움이 많지요. 더욱이 난모는 대중적이지 않아서 상품성이 적어요. 한복으로 돈을 벌면 ‘이걸로 난모의 재료를 사야지.’ 하고 생각하죠. 하하. 그만큼 지키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렇기에 더더욱 난모의 전승과 현대화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데…. 작년에 연 ‘난모 기획전’은 난모를 한복의 소품으로써가 아닌 주인공으로 한 첫 전시회이자 도전이었다.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도 이어졌다.
“전통 난모 외에도 손뜨개로 만든 ‘조바위’를 전시했어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지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시대에 맞게 소재와 형태를 변화한다면 한복 뿐 아니라 청바지와 스키복에도 착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다가올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전통 방한모인 난모가 쓰여져,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뽀로로 캐릭터가 쓰고 있는 모자도 남바위 형태인 걸요. 전통을 현대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함께 고민한다면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표는 제도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수치를 정립해 난모 작업서를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난모를 계속 재현해 그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치수를 찾는 방법밖에 없지만, 이런 반복적인 작업 또한 그에게는 행복이란다.
“한복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나를 대표하는 의상이 무얼까 항상 고민했어요. 그래서 출품 유물을 복원하고 천연염색을 하며 나만의 것을 찾으려 했죠. 하지만 앞으로는 ‘강영숙’ 하면 난모, ‘난모’ 하면 강영숙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몇 십 년 동안 제가 갖고 있던 갈증이 해소된 거죠.”
좋아하는 난모와 한복을 지켜나갈 수 있고, 그것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그. 한복패션쇼, 난모전시회, 청소년 한복수업 등 우리의 전통이야기에 그의 얼굴이 밝아진다. “일을 한 지 3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이야기는 해도 해도 재미있어요. 좋아하는 걸 하니까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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