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봉불 과정 | 김법조

교단의 끊임없는 관심과 선진들의 정성 속에 마련한 대지 13평의 법 도량에서 25년간 교화 활동을 해왔다. 1층에 작지만, 정갈하고 신앙심이 우러나는 법당이 되도록 기도하고 공부하며 청소에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교당에서 일본인과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전통문화 알림, 한글교실, 일본어교실 등을 여는 데는 불편이 많았다. 행사 때마다 법당 물품들을 상자에 넣어 밖에 내놓아야 했다. 법회 후 교도들이 공양할 때는 계단 중간 중간에 서서 그릇을 릴레이로 전달하거나,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받치며 미끄러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어린이 법회는 공간이 좁아서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는 데다가 안전 문제와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어린이 법회를 보는 우태는 블록놀이를 할 때마다 교당을 높고 넓게 짓고, 교무님 방도 크게 만들어 준다. 이런 과정 속에 자연히 교도들의 마음에도 교당 확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는 부임 당시 좌산 상사님께 받든 숙제이기도 했다.
2006년부터 기도의 정성을 올리게 되었다. 10년 후 원기 100년까지는 이루리
라는 생각으로 교도들과 동전 모으기를 함께 시작하는 가운데, 김성인 교도는 하루
에 17시간씩 일을 하며 1억 희사를 서원했다. 2015년 일본 순방을 하러 오신 좌산 상
사님은 오사카 법회에 참석한 교도들에게 “이렇게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법을
알아보고 공부하고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 일본 교화의 희망을 본다. 넓은 곳을 찾아
보아라. 합력하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힘입어 건축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교도
대표인 박명음 교도는 예전부터 교당 확장 이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보 수집을 하면서 방향에 대하여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다방면에서 큰 힘이 되었다.
상생의 법 도량 만나기를 염원하는 기도를 하며 건물을 찾던 중, 30년 된 건물이지만 마당이 넓어 ‘이곳이다!’라고 생각되는 곳을 만나게 되었다. 교도들은 ‘부담이 되는 금액이지만 교화지로 적합하다.’는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교단에 보고를 한 후 돌아와 보니 건물주가 “외국인이고 종교라 매매하지 않겠다.”고 한다는 연락이 왔다. 잘 모르는 해외 종교가 들어옴으로 인하여 이웃으로 살던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마음이 아팠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건물주에게 원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홍보 자료를 보내는 한편, 그 건물 관련 서류를 불단에 놓고 “이곳이어야 합니다.”라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교당이 들어설 수 있도록 주위 영가들이라도 합력해 달라는 특별 천도재도 올렸다. 10일 후 ‘매매승낙서’가 부동산을 통해 전해왔고, 10월 10일 계약을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살얼음 밟듯 끝까지 마음 챙기게 하는 과정을 겪어보니, 해외에 교당 하나 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가를 절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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