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옥추경으로
- 천·지·인의 통합경 -

글. 이정재

옥추경의 온전한 이해에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세계사와 사상사 그 둘의 역학관계를 살펴야 하는 거시적 지평이 필요했다. 그만큼 옥추경은 다면적 의의를 가진 책이었다.
먼저 옥추경의 생성시기와 사상사적 배경을 알아봤다. 옥추경은 몽골에 의해 건국된 원대(元代)에 만들어져 칭기스칸이 건설한 제국 내 세계종교의 차이를 관용적으로 수용하는데 일조했다. 마침 삼교합일을 주창했던 중국의 도교 특히 정일교의 수장 장춘진인과 깊은 친교를 맺으면서 친 무속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 그것이었다. 교리에 대한 선악 관념이 절대적이었던 중세의 엄격한 상황에서 나타난 유불선의 통합적 사상의 발현도 그렇지만, 절대신 신봉의 서양 종교를 수용한 칸들의 사상은 태생이 포용적이었던 샤머니즘이 아니었으면 불가했고, 이를 따른 카톨릭과 이슬람도 오늘에 와서 볼 때 놀라울 뿐이다(대명천지의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목적인 기독교와 무슬림, 무속을 보면 납득이 간다). 당대 사상적 승리의 쾌거란 평가가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몽골의 통치 사상은 다양성을 존중할 뿐 어떤 전일한 하나의 지향이 없었다. 즉 종교사상적 구심점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화두만을 던져두었던 흔적이 옥추경의 산출이었다.
옥추경은 단순한 경이 아니었다. 신화적 사상과 로고스적 사상의 한판 대결을 배태하고 있었
다. 사상의 원초성과 체계성의 대립이었으나 한계를 드러내었던 결과물이었다. 동서양 사상의 한판 대결이었으며, 이후의 판도를 바꿔놓은 계기이기도 했
다. 미분적 신화적 원초성, 즉 일원성의 승리를 보여주었던 사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원성은 전근
대적 일원이었다. 후근대적인 것은 변화된 세계적 패러다임을 기다려 또 다른 변신을 해야 함과 관련이 있다.
동일한 사상을 담은 옥추경은 약 1000년의 숙성을 거치며 한반도의 신종교로 이어졌고, 중국에서와 달리 한국에 와서 환영을 받게 된다. 무속적 전통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옥추경은 고려를 넘어 조선대 내내 민중에게 수지독송되는 주요 경으로 안착되다가 근대에 이르러 신종교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 소태산이 옥추경을 읽은 것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제의적이었던 전통과 교의·교조적 문화 간의 갈
등이 다시 재현되며 나온 결과였던 것이다. 그 매개가 옥추경으로 회귀된 현상은 쉽게 간과할 일이 아니다.
삼교합일과 무속의 상관성은 이를 지향했던 신라의 풍류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특히 정산의 말씀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풍류로 세상을 건지리라….’ 때문에 최치원이 지은 난랑비서를 살폈고 풍류와 원불교 및 미륵불교의 연구 논문을 읽어야 했다. 불교와 무속의 혼유적 현상이었던 풍류도가 한반도의 핵심문화로 지속과 단절의 역사과정을 겪다가, 근래에 다시 미륵불인 원불교가 과거 풍류도의 재현으로 재등장하였다는 유병덕의 글을 살폈었다.
진정한 풍류란 무엇인가? 결국은 ‘인간의 변치 않는 본성을 회복시키는 데’에 있다. 다만 현대는 과거와 다른 환경에 처해있음이 다르다.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전환을, 나아가 그 융합을 지향한다. 달리 표현하면 ‘주체적 공동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공동체는 과거의 것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 문제다. 풍류란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것을 상황에 따라 달리 설정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규범이나 격식이나 조직 및 억압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발적 신화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계인은 바야흐로 한 지구적 운명공동체로 이동하고 있고,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는 데서 오는 환경문제와 핵, 생명, 인공지능 등으로도 불리는 디지털 개벽의 대재앙과 위험에 직면한 현대를 놓고 일컫는 생각들이다. 어둠과 그늘에 가려있고, 억압과 부조리로 핍박받고, 갖가지 욕망의 각축장이 되어왔던 수천 년간의 인류역사는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식하여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 상극이 아닌 상생의 문화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이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에서 ‘정신을 개벽하자’ 함은 어찌할 수 없이 공동체성이 우선되어야 할 때 좌절되어야만 하는 주체성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은 인류신앙사에서 줄곧 지속되었던 인류의 정신적 가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종교적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는 바, 교리나 교의가 아닌 당연한 사회현상임을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있었던 인간의 본성을 찾고 회복하고 포괄적으로 활용해야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념과 규정과 억압을 버리게 되면 자연히 본성이 회복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신개벽은 후근대적이며 후합리적인 절대적 공동체성이다. 근대까지는 집단별 무리지음의 각축장이 자행되었고 또 허용되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불가하다는 의미다. 상대 집단적 가치에 따른 선악의 구분이 가능했던 시기가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증후는 사회적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비가시적 인간 내면에도 적용된다.
성·속(聖·俗)의 구분은 사실 상대적 가치의 기준에서 오는 것이다. 상대라는 집단과 개념이 무용해진 현재는 더 이상 성속의 구분이 필요 없게 된다. 주체적 자아의 의미도 공동체적 무리지음 속에서 더 유의미해 진다. 이미 이는 과거의 상대적 집단의 그것이 아니다. 절대 집단은 여럿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에 완성이자 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각 종교별로 지향했던 상대적 완전은 여전히 미흡했으나, 하나됨의 지향에선 여한이 없는 것이 된다. 인류의 신앙사나 사상사는 인간 본성의 규정 여하를 두고 입장을 달리 한 역사이기도 했다. 미래의 정신개벽은 상대적이지 않고 오로지 하나로 전일함을 의미한다. 획일화는 여럿 중에 어느 하나를 강요하는 것이지만 전일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귀결이다.
지구 공동체적 인식은 주변적 환경에 의해서만 구속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변화된 인지능력도 관여한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과 정보 및 지식의 발달은 어두웠던 시대의 온갖 장애와 제약을 걷어냈고, 이에 따른 인류의 전반적인 인지도는 고도화되어 간다. 다른 차원의 문명,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 요소다.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은 서로 같은 수순을 밟아 간다. 이런 차원에서 볼때 하루하루는 변화의 현장일 뿐이다. 나와 내 정신 또한 변화와 같은 여정에 놓여야 하는 것이다. 주변은 이제 여럿에서 하나로 진화하였으니 둘은 하나가 되어간다.
성(聖)·속(俗) 구분 없이, 신(神)·인(人) 구분 없이, 신화(神話)·합리(合理)의 구분 없이, 이성·감성 구분 없이…. 종국에는 물질과 비물질의 구분이 없는, 유(有)와 무(無)의 구분이 없는 지경에 다다르는 것이다.
원불교 게송의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다.’나, 천 년 전 정리된 옥추경의 다음 구절이 모두 이를 전제했던 것으로 새삼 새로워지는 대목이다.
‘유정과 무정이 오직 하나요 둘이 아니다.’(지도심요장)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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