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화 25년, 송용원 교무
교화,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그와 대학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은 늘 그가 “개척교화를 하겠다.”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무리 그랬대도 25년이 넘는 시간이 온통 개척의 역사로 꾸려질 줄, 그땐 누가 알았을까!
교무가 된 지 5년 만에, 당시 (물론 지금도 여전히) 파격적이었던 개척교화 발령을 받았던 송용원 교무(문정교당). 자신을 개척의 길로 이끈 시작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한 작은 생각이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뭔가 콕 짚어낼 순 없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거죠.” 뭔지 모르는 질문의 답을 찾아내보고자 이리저리 대안을 찾아볼수록 ‘결국 각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것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그.
군산 창성동 개척교화를 시작으로 군산 나운교당과 현재의 문정교당까지 온통 ‘개척’의 삶을 살고 있는 송 교무. 뚜벅뚜벅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그에게 사람들은 요즘 ‘개척 전문’이라는 말을 달아 부른다. 하지만 개척을 시작할 때나 안정기에 들어선 지금이나 그저 주어진 곳이 어디든 교화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그는 천생 교화 개척자다.

● 개척교화의 아이콘이 되셨습니다.
“개척은 정말로 힘들어요. 그런데 사람이 산다는 건 어디나 다 나름의 힘듦이 있잖아요. 결국 나중에 뭔가가 남느냐 남지 않느냐가 차이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개척은 그 보람이 참 크죠.”
종교는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순박한 생각으로 조성천 교무와 함께 시작했던 군산 창성동 첫 개척교화. 빈민지역이었기에 재정해결을 위해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교당일을 병행했지만 빈민교화의 장벽은 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대도시 빈민과는 다르게 중소도시 빈민들은 포기를 해버리는 특징이 있어서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주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 결국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특수교화는 보편성 위에 존립하는 것이지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창성동을 정리하고 군산 나운동에서 두 번째 개척교화를 시작했다.

● 나운에서의 개척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지역사회에서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죠. 봉불식을 한 지 1년 만에 교당 증축을 상의해야 했을 정도니까요. 4년 만에 70명이 출석했죠.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에 못 자도 힘든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나운에서의 교화 경험은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교화상 가장 정점을 찍는 그때 정리하고 나와야 할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나운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휴무를 하며 쉬었던 기간은, 그에게도 그의 가족에게도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 가족들과 함께 역사를 이뤄낸 것도 특징인데요.
“개척교화를 하면 할수록, 개척은 복이 없으면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먼저 가정에 우환이 있으면 못해요. 경제적 압박을 받으면 일어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정토가 말리면 못해요. 옆에 와서 ‘개척 말고 다른 거 하자.’고 세 번말하면 안 넘어갈 수가 없죠. 그런 부분에서 정토에게 참 고마워요. 교무의 강한 의지를 인정하고, 그걸 후원할 방법을 찾아주니까요.”
실제로 송 교무는 세 번의 개척교화를 해오는 동안 줄곧 가족과 함께 해왔다. 현재 문정교당도 정토가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동시에 법회지원과 일요일 점심공양 등을 모두 도맡아주고 있고, 자녀(원친회원)들은 어린이·청소년들을 담당해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무출신 배출(큰 아들)까지 이어지더라는 것. 가족이 어려움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쉽게 요청할 수도 있고, 교화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원불교의 역사 자체가 ‘개척’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개척에 대한 저만의 표준이 있어요. ‘개척교화는 될 곳에서 해야 한다.’ 보편적인 교화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교화 대상은 원불교가 아니라 일반인들이잖아요. 그러면 교역자의 사고가 일반인 수준과 닿아있어야 하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정확해야 끌고 갈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가요? 외부의 까다로운 조건이나 요구를 만나면 다시 우리 안으로 쏙 들어와버려요. 이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만 일어나면 의외로 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조건을 잘 갖추고 있고, 성품들도 너무나 좋으니까요.”
개척교화를 하려면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그는 ‘놀아라.’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말에는 그가 경험에서 얻은 어떤 깨달음이 들어있다. 개척교화를 처음 나갔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던 오만 가지 교화방법들. 그러나 막상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기가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토가 “생각으로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명함이라도 주든지 전단지라도 돌려라. 개척은 그렇게 해야지, 왜 앉아서만 고민하냐.”며 답답함을 자주 토로할 정도였을까. 그런데 딱 3년이 지나자 그동안 가졌던 욕속심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그제야 손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화를 하다보면 교화대상을 기다려줘야 할 때도 많은데, 스스로 정리가 된 후에야 그게 가능하다는 걸 그는 ‘놀아라.’라는 말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성공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희생이라는 먹거리를 먹고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희생의 역할을 담당해준 이들에게 늘 감사할 뿐이라고.

● 교단의 과감한 문호 개방도 필요할 텐데요.
“관리 위주로 가겠다는 건, 어떻게 보면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돼요. 교역자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단에서는 일정 부분 과감하게 풀어주는 게 필요하죠. 물론 그러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명(곳)이 튀어나가서 해내다 보면 그 가운데 또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거든요.” 

●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네요.
“앞으로의 교당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때도, 몇 백 명을 모이게 하는 시스템은 안 될 것 같아요. 다양성이 요구되는 사회 속에서 결국은 교화 시스템도 다양하게 가야죠. 꼭 큰 대각전이 필요한가요? 선방이면 선방, 요가원이면 요가원 등 소규모이지만 다양하게 욕구를 채워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지역의 현안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교당 중심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더욱 교당은 지역의 중심지(번화가)에 있어야 해요.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위치한 교당에 내용이 충실히 채워지기만 한다면, 대종사님 정신이 가장 빨리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이 되는거죠.”

● 젊은 층 교화 고민도 많습니다.
“어른(일반교화)을 중심으로 하는 교화전략을 바꿀 필요가 분명히 있어요. 우리 교당을 보더라도 부모가 아이들을 끌고 교당에 오려면 힘든데, 아이들이 교당에 가자고 하면 안 따라오는 부모가 없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 원불교 교당들은 아이들에 대한 시설 투자를 너무 안 하고 있지요.”
이어지는 문정교당 어린이회원들의 자랑. 현재 이곳의 일요법회는 설교를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어린이들이 함께 독경과 기도를 하는 1부가 그야말로 ‘사이다(속 시원하다는 표현)’ 같단다. 법당에 울리는 아이들의 독경소리가 어찌나 청아한지 일반교도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 100년 이후의 원불교, 어떻게 보시나요?
“현재의 원불교는 상호는 종합백화점인데, 그 안은 농산물시장 같아요.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정말 멋있고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자원들도 부족한 게 없는데, 실상 안에 들어가 보면 가공이 안 되어 있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여전히 개척기라는 의미예요. 개척기인데 우리끼리 굉장한 위치에 올라왔다고 너무 빨리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곳곳에서 개척교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나, 제가 개척교화를 나왔던 이유도 사실은 우리 교단만의 개척정신을 계속 이어가보자는 거거든요.”

● 어떻게 해야 시대정신과 호흡하는 종교가 될 수 있을까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교의 기능은 바뀌겠지만, 종교의 영향력이 축소되진 않을 것 같아요. 양적인 수치는 줄겠지만 고차원적인 종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질 테고, 이에 대한 질적 대비를 해나가야죠. 삶이 풍요로울수록 자아 존중감을 찾아나서는 게 인간의 특성인 것 같아요. 종교가 꼭 모든 대안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더라고요. 옆에 다가가서 ‘그런 아픔이 있구나.’ 하고 어깨만 빌려주면 각자가 다 방법과 대안을 찾아나가는 것 같아요.”

●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비결을 알려주세요.
“승리해야 해요. 경계를 만났을 때 치열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자고 신앙생활을 하는 건데, 우린 너무 쉽게 회피하는 것 같아요. 경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변명만 하게 돼요. 작은 경계든 큰 경계든,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천만 원이 큰 빚이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천만 원에 이자까지 더 얹어 주고도 여유롭거든요. 신앙으로 그 힘을 가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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