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원광>이달의원광
 
제목 : 배종향 원광대학교 프라임사업단장 2017년02월호

2% 덜 가지고 2% 더 노력한다
배종향 원광대학교 프라임사업단장
취재. 정은구 기자

그의 사무실을 들어가니 가득 쌓인 서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학회에서, 산업체에서, 농가에서, 학교에서…. 다양한 직함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이제는 원광대학교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배종향 프라임사업단장(기획처장, 교수, 서이리교당). “저한테 주어진 업이라고 생각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는 모습을 주변에서 인정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원광대맨
대형 정부지원사업인 프라임 사업을 수주한 원광대학교. 현재는 신산업과 지역산업을 연계한 농생명·스마트기계·소재산업의 인력 양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게다가 농식품융합대학과 창의공과대학을 신설하고 장학금을 편성해, 해당 대학 입학생 전원에게 수업료 160만원을 지급한다. 취·창업을 고려한 장기 현장실습 확대로 끝까지 인재를 책임지는 사업. 프라임사업단장으로서 최전방에 서 있는 배 기획처장은 이 사업의 핵심이 ‘탄소’와 ‘종자’라고 말한다.
“원광대 출신으로서 모교가 잘되길 바라는 일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죠.” 특히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중국 종자산업 진출이라는데…. “농업은 미래산업의 핵심이에요. 농생명은 인간 삶의 근간이고, 식량 안보가 국가적으로도 중요하잖아요.” 종자 산업의 잠재력과 중국의 시장규모, 그리고 장차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인도적 차원까지 고려했다는 것. “연변대학과 협약을 맺고 북방농업연구소를 지었어요. 작년에는 인력을 파견해 일 년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을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공급하기도 했죠.”
본래 원예산업학과 교수에 시설원예가 주전공이라는 그. 특히 수경재배를 세부적으로 연구해서, 십여 년 전 파프리카의 저변확대를 이끌기도 했다. “당시 유리온실들의 형편이 어려웠어요. 근데 마침 제가 벨기에에서 파프리카 수경재배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워온 거죠.” 당시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농민을 가르친 덕분에 네덜란드가 거의 독점하고 있던 일본시장을 점령하고, 나아가 지금은 신선농산물 수출 1위가 되었다.
농번기 때면 하교 후 호미를 들거나 나락을 베었던 학창시절. “일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힘 안들이고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대학시절에 조교 생활을 하며, 캠퍼스 구석구석을 해매고 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선연하다. 특히 나무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머릿속에 다 있단다. “‘원광대맨’이죠. 그래서 더더욱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의 아버지
‘농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한 마음으로 시작한 연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설원예가 자동화와 기계화를 통해 농사를 짓는 일이거든요. 재배기술이라던가 이런 분야에서 계속 연구를 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습니다. 현장을 가지 않아도 작물의 상태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IoT 연구를 하고 있죠.” 그러한 열의를 놓지 않고 있기에,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기획처장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3~5학점은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있으니까 제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요?” 실용적인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치고,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는 그의 성격 덕분에 몇몇 학생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제 삶의 철학은 2% 인생이에요. 2% 덜 가지고 2% 더 노력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또한 대학교당의 기도와 법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대학사랑 및 개인정진 기도이기 때문에, 보직자로서 소명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그가 불현듯 정년 무렵에는 국수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밥을 못 먹는 사람에게 국수를 한 그릇 말아주고 싶어서요.” 허허 웃는 얼굴에 이웃을 생각하는 그의 소박한 꿈이 담뿍 묻어난다.
“현재는 총장님을 모시고 학교를 성장시키는 일에  충실하고 싶어요. 현재의 상황에 맞는 인식을 가지고 구성원들과 합력해서 원광대학교를 같이 이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저 보직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는 겸손한 마무리에, 어디선가 봉황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